26.06.26 12:14최종 업데이트 26.06.2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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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결승전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한 명은 처음 보는 조리법으로 새로운 요리를 한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명은 익숙한 요리법에 익숙한 재료를 사용한다. 어떤 맛일지 요리하는 과정만 봐도 알 것 같다.

예상 가능한 결과에 시청자는 지레 실망하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다. 어떤 때는 새로운 맛보다 익숙한 맛이 더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지난주에 첫 화가 방영된 <콩콩팜팜: 콩 심은데 콩 나는 가고팜 하고팜 동물농장>이 꼭 그런 익숙한 맛일 거라고 예상했다. 아는 맛이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맛.

콩콩팜팜의 메인 포스터<콩 심은데 콩 나는 가고팜 하고팜 동물 농장>의 메인 포스터tvN

내 시선을 사로 잡은 '카우 브러쉬'

'콩콩' 예능 시리즈는 2023년부터 매년 새로운 시즌을 선보이고 있다. 2023년에는 농사에 도전한 <콩콩팥팥>, 2024년엔 사내구내식당을 운영한 <콩콩밥밥>, 2025년에는 멕시코의 식문화를 경험한 <콩콩팡팡>까지, 비슷한 멤버로 다른 콘셉트를 구성했다. 올해 2026년에는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가 제주 목장에서 기술 연수를 받는 <콩콩팜팜>으로 돌아왔다.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는 에그이즈커밍과 MOU를 체결한 제주도 목장 두 곳(젖소농장, 말농장)에서 노하우를 전수받게 될 거라는 고중석 대표의 설명을 듣고 제주도에 도착한다. 젖소농장에 방문해 태어난 지 일주일 남짓 된 송아지들이 있는 축사부터 둘러보는데 크고 맑은 눈망울의 송아지가 서로 핥아주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이어서 젖소들이 머무는 축사와 육성우(젖을 뗀 후부터 비육우로 기르기 전까지의 소)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는 방목장까지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젖소 축사에 있던 '카우 브러쉬'였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큰 브러쉬에 소들은 간지러운 부분을 갖다 대었다. 브러쉬가 시원하게 긁어주는 모습을 보는데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카우 브러쉬소가 간지러운 부분을 카우 브러쉬에 가져다 대고 있다.tvN

문득 6년 전쯤 호주의 말 농장에서 이틀간 머물렀던 기억이 났다. 그곳에서 말은 모기에 물려도 스스로 긁을 수 없어 고통스러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제야 말들이 해충을 쫓으려 계속 꼬리를 흔들어대는 게 보였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클까 싶어 안타까웠는데 카우 브러쉬라는 게 있다니. 저곳의 소들은 스트레스가 조금 덜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출연자들은 목장을 둘러본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목장 대표님은 이들을 이끄시며 "마음이 거시기해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출연자들은 우리가 할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거 아니냐며 되물었지만, 대표님은 그저 웃으셨다.

우분(소똥)이 가득한 축사 바닥흡사 흙이 가득한 것 같지만, 사실은 우분과 톱밥이 섞인 모습.tvN

조금 뒤, 도착한 축사 바닥에는 진흙이 가득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진흙이 아니라 우분(소똥)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목장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업무는 바로 우분을 치우는 일이었다. 트랙터로 우분을 한 차례 밀어낸 후에, 트랙터가 치울 수 없는 가장자리의 우분을 갈퀴로 깨서 끝으로 미는 작업이었다.

쌓여있는 우분을 갈퀴로 긁어낼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올라오는지 이광수는 '살면서 처음 맡는 냄새'라며 힘들어했다. 게다가 우분이 무거워서 일이 빨리 진행되지도 않았다. 화면 가득 우분을 치우는 장면이 계속됐다. 도경수는 "우리 프로그램 밥친구 아니었어요?"라며 이렇게 하루종일 똥만 치우는데 밥친구로 괜찮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마침 우리 가족도 저녁 식사를 하며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우분을 치우는 장면이 프로그램 중반부에 나온 덕분에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려던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똥벼락 맞은 김우빈, 분노한 이광수

한 손에 하나씩 밀대 두 개로 청소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우분이 생각보다 무거워 한 번에 밀대 두 개를 밀 수 없어 실망하고 있다.tvN

냄새도 나지 않고, 우분의 무게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반응만으로도 쉽게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힘들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김우빈은 도경수가 뒤로 던지는 똥을 지나가다 맞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똥벼락이다. 이광수는 치워도 치워도 줄어들지 않는 똥에 화가 나 "어차피 쌀 거 왜 치우냐고!"하고 말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부모가 청소하라고 하면, 자녀들은 "또 어지를 건데 왜 치워야 하나요"라고 하고 부모가 씻으라고 하면, 자녀들은 "어차피 또 더러워질 몸, 왜 씻어야 하나요"라고 한다. 그러면 부모는 "어차피 그럴 거 먹지도 말고 싸지도 말아라"라는 말로 응수한다.

아무리 치워도 줄어들지 않는 우분(소똥)에 힘들어하는 이광수힘들게 치워도 또 더러워질 거란 생각에 마음이 심난하다.tvN

가끔 반복되는 일상 앞에서 멍해질 때가 있다. 본격적인 집안일은 저녁에 하는 편이다.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고 차리고 먹으면 설거지, 청소, 빨래, 다음 날 아침 준비가 줄줄이 이어진다. 가끔 다 끝난 줄 알고 돌아서다 건조기 속 빨래를 발견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화장실 청소까지 겹치는 날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인생 자체가 반복의 연속이다. 출퇴근, 평일과 주말, 학기와 방학, 연말과 연초, 기획과 마감, 일 년 열두 달과 사계절…….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집안일 같은 반복도, 시간의 흐름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반복도, 스스로 원해서 하는 운동이나 글 연재 같은 반복도 있다. 사람마다 반복되는 일도, 문제도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이 반복이 쌓여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는 매일 먹는 밥과 매일 자는 잠과 매일 싸는 똥 사이에서 자란다. 큰 성취와 좋은 결과도 지루한 반복에서 온다. 반복은 자라기 위한 것, 잘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일을 마음을 다해 반복하며 잘 쌓이게 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잊었다.

이광수는 "또 똥 쌀 거 왜 치우냐는 말"이 무색하게 열심히 우분을 치웠다. 바닥에 톱밥까지 깔아 깨끗해진 축사를 보며 감격했다. 도경수는 살면서 하기 힘든 일이라 오히려 재미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훈훈함도 잠시, 이광수가 이 프로그램은 <콩콩팜팜>이 아니라 <똥똥팜팜> 아니냐며 딴지를 걸었다. 작업실 일정표에 적힌 '축사 환경 관리'와 '방목장 정비'라는 문구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똥을 치워야 한다는 뜻임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우분이 사라지고 폭신한 톱밥이 깔린 축사의 모습열심히 청소를 완료한 출연진을 칭찬하는 대표님tvN

이튿날 출근하는 장면에서 첫화가 마무리됐다. 시청자들에게 예의를 차린다며 하얀 옷을 입은 김우빈의 옷에 우분이 묻지 않을 것인지, 인턴으로 합류하는 문상훈이 잘 적응할 것인지, 다음 화가 기대된다.

아는 맛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콩콩팜팜>에는 익숙한 맛과 새로운 맛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세 명의 여전한 케미는 중간중간에 웃음을 주고, 목장의 낯선 풍경들은 새로운 재미와 사유를 선물해주었다. 프로그램을 보고 나자, 반복되는 나의 여러 일상에 조금 더 마음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비록 금세 또 잊고 한숨을 쉴지도 모르지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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