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23-03-16
대통령실 제공
대한민국에서 산업단지를 지정할 땐 지켜야 하는 지침이 있다. 그 지침의 이름은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이다. 통합지침이라고 하는 이유는 국토교통부(산업단지 지정 담당 부처)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동으로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 지침은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두23822)에 의해 법규로서의 효력이 인정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지침에 따라 검토했다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지정이 불가능했다.
'용수, 전력 등 기반시설 확보의 용이성'을 충족해야 하는데, 용인은 물도 없고 전력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통합지침
제7조(검토기준) ①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은 산업단지를 지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적정입지를 선정하여야 한다.
2. 공업용수·도로·철도·항만·전력·통신·폐기물처리시설 및 하·폐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 확보의 용이성
이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력공급이나 용수공급의 용이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발표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정보공개 전문가인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전력·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들(정부, 발전회사,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2023년 3월 15일을 시작점으로 하고 있다. 그 이전에 제대로 된 검토를 거쳤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은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지적되고 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원전 10기 분량(10GW)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뒤늦게 수립된 대책은 원전 3기 분량은 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건설해서 공급하고, 원전 7기 분량은 주로 호남의 풍력, 태양광으로 발전한 전력을 34만 5천볼트 송전선을 건설해서 공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남에서 용인까지 초고압 송전선을 대규모로 건설할 경우, 이는 비수도권 지역을 송전탑으로 뒤덮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5년 8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서 용인의 좁은 지역에 원전 15기 분량(SK가 추진하는 일반산업단지에 필요한 원전 5기 분량 포함)의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리적 가능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력공급이 매우 어렵고 불안정성이 크다는 것이다. 산업단지 지정요건인 '전력공급의 용이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용수공급도 어렵다. 팔당에서 한강물을 끌어오고도 모자라서 화천댐 물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용수공급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최소한 용수공급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전면 재검토 되어야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윤석열 정권 하에서 추진된 것은 '속도를 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촉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것이나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각종 영향평가는 패스스트랙 적용) 등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더 황당한 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산업단지하는데, 절차도 뒤죽박죽이었단 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표한 것은 2023년 3월 15일인데, 정작 국가특화산업단지로 지정된 것은 2023년 7월 20일이다. 먼저 대통령이 지르고, 나중에 끼워 맞춘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정권 당시의 정책브리핑 자료
화면캡처
따라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대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산단과 전력망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전면 재검토를 해야 마땅하다.
삼성이라는 기업 입장에서 보더라도, 전력과 용수공급이 어려운 용인에 반도체 산단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아직도 평택시 고덕캠퍼스에 반도체 팹을 짓고 있다(5호기를 짓고 있고, 6호기는 터파기 공사를 하고 있다). 이걸 다 지어야 용인을 착공할 수 있다. 그리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부지 조성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시행자이고, 아직 착공도 하지 않았다. 삼성은 국가산단 조성이 끝난 후에 부지를 매수하는 것이다. 그러니 전력과 용수공급의 용이성을 따져서 다시 입지를 정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기업이익의 측면에서나 타당한 것이다.
지산지소를 공염불로 만들지 말아야
부디 이재명 정권은 윤석열 정권이 저지른 잘못을 떠안지 말기 바란다. 지금 이대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강행하면서 '그 다음은 호남'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악수'를 두는 것이다.
지금 용인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전력 때문에 34만 5천볼트 송전선이 2038년까지 2배로 늘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용인반도체 국가산단을 강행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지산지소'를 공염불로 만드는 것이다. 송전탑으로 뒤덮인 국토를 보면서 '지산지소'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전남·광주·전북·충남·대전·충북을 관통하는 수많은 초고압 송전선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일부 정치인들이나 주류 언론의 반발이 무섭다고 해서 전면 재검토해야 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강행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아니라 '일부 수도권이기주의자들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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