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루카치의 묘소
오길영
얼마 전 오르반 정권이 물러난 뒤 이제 폐쇄됐던 루카치 자료실의 역할을 했던 그의 옛 아파트가, 빅토르 오르반 총리 실각 이후 새로운 지자체의 주도하에 기록 보관소 및 연구 센터로 복원돼 재개관한다는 미국 매체의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루카치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기획에는 헝가리 최대 우파 성향 일간지 <머저르 넴제트>(Magyar Nemzet)의 공격, 그에 동조한 오르반 정부가 16년의 재임 동안 좌파-자유주의 반대파들을 향해 벌인 끈질긴 공세가 배후 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오르반이 이끄는 우파 피데스(Fidesz) 당이 헝가리 사회당을 꺾고 압도적인 의석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지 불과 8개월 된 시점이었다. 견제 없는 권력을 쥔 오르반은 좌파-자유주의 성향의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지를 구축했다. 그 결과 루카치 아카이브는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당시 우파 진영에서는 루카치가 끔찍한 공산주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아카이브 폐쇄를 자신들의 승리로 포장하며 크게 반겼다. 기사에 따르면 루카치 아카이브 및 도서관 폐쇄는 독일 정부가 맑스주의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나 나치 동조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의 학문적 유산을 보존하는 기관을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강제 폐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우파 언론의 집요한 공격은 루카치의 제자이자 뉴욕 뉴스쿨에서 한나 아렌트 석좌교수를 지낸 82세의 아그네스 헬러(Ágnes Heller) 등 정부 비판적인 철학자들에게 집중됐다. 오르반 정권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는 이유였다. 모든 권력은 비판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증거다. 오르반은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를 권력에 복속시키기 위해 지원금 삭감 카드로 압박했다. 2016년 과학 아카데미는 높은 운영비를 핑계로 루카치의 아파트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르반의 측근들이 장악한 부다페스트시 당국 역시 중앙 공원에 있던 루카치 동상을 철거해 박물관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하버마스, 낸시 프레이저 등 전 세계 2천여 명의 학자가 항의 서한에 서명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이 직접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루카치의 유산을 옹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2018년 5월, 과학 아카데미는 아파트의 자물쇠를 교체하며 아카이브를 전면 폐쇄했다. 방대한 문서와 서신들은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으로 옮겨졌고, 메모가 빼곡히 적힌 장서가 남겨진 루카치의 아파트는 먼지만 쌓인 채 굳게 닫혔다. 이제 그 문이 다시 열리려고 한다. 반갑다.
극우 독재를 꿈꾼, 지금 재판 중인 내란의 수괴는 입만 열면 '자유 민주주의'를 떠들었다. 그가 이 개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이때 자유의 의미는 '나' 혹은 '우리'가 남들은 개의치 않고 떠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적으로 몰아 마음 내키는 대로 탄압하고 제거하라는 게 아니다. 야무진 착각이다. 정반대로 자유란 '우리'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의 견해가 자유롭게 표명되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지루하지만 중요한 과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기사의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정부는 오르반 정권처럼 연구자들을 억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구절을 읽자니, 내란 수괴 집권 시절 대전의 한 대학에서 벌어졌던 '입틀막' 사건이 떠오른다. 나는 그 장면 하나로 저들이 떠드는 '자유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확인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도 여기에 있다. 루카치의 복권 소식을 들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인정받는다는 걸 다시 새긴다. 역사가 두려운 이유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부다페스트의 루카치 묘소를 찾아보고 어려움 끝에 문을 여는 루카치 자료실도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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