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1 06:44최종 업데이트 26.07.01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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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 파시즘의 경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려스럽다. 극우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단지 정치, 경제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문학예술, 문화에서도 관철된다.

널리 알려진 사례지만, 1930년대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집권 후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게르만 인종주의에 어긋나는 사상과 예술을 말살하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3년 정권 장악 직후, 나치 학생동맹을 주축으로 벌어진 전국적인 불온서적 소각 운동이다.


그 결과 마르크스(맑스), 프로이트, 하이네 등 유대인, 공산주의자, 자유주의 성향 작가가 쓴 책 수만 권을 불태웠다. 나치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조롱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토마스 만(Thomas Mann) 등 반나치 성향의 작가, 예술가들이 국적을 박탈당하고 망명했다.

옛날얘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자유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여겨진 미국에서도 트럼프 집권기에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 2017년 트럼프의 첫 번째 집권 이후 미국 국립예술기금(NEA), 국립인문학기금(NEH), 공영방송(PBS, NPR)에 대한 연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전면 폐지하려고 했다. 트럼프 2기에 들어서는 대학의 특정 주제 연구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노골적으로 제한하려는 일이 벌어졌다.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립보건원(NIH) 등의 연방 정부 지원금 지급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 성 정체성, 비판적 인종 이론, 기후 변화 등의 연구를 하는 과제 지원금을 금지했다.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거나 학내에 DEI 관련 부서를 유지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연방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한다. 연방 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트럼프주의에 동조하는 일부 주(State) 정부에서는 교수들이 자신의 강의계획서를 온라인으로 의무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투명한 정보 공개이지만, 속내는 보수 정치인과 학부모 단체가 교수들이 인종, 젠더, 성 소수자 내용을 가르치는지를 검열하기 위함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헝가리 오르반 정권의 학문·예술 탄압

지난 2월 16일, 당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모습.AP/연합뉴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은 아니지만,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26년 4월 선거로 권좌에서 물러난 극우주의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정부는 2010년부터의 장기집권 기간 헌법 및 사법부 개편, 언론 통제를 통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체제를 구축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를 검열하고 통제했다. 오르반 총리는 예산 삭감, 법률 개정, 재단 민영화 등 합법적인 수단으로 포장해서 비판적 학문과 예술을 질식시키려 했다.

예컨대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적 지식인을 배출해 온 중앙유럽대학교(CEU)를 해체하려고 2017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CEU는 2019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전했다. 2018년 헝가리 내 대학에서 젠더학(Gender Studies) 석사 과정의 인가를 취소하고 자금 지원을 중단하여 학문적 다양성을 법으로 차단했다. 정부 비판적인 독립 극단에 대한 국가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여 문화예술계를 권력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헝가리의 정치 상황을 적는 이유가 있다. 연구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비슷하겠지만, 문학 연구자이자 비평가인 나에게도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든 책을 통해 배웠든 공부 길을 인도해 준 스승이 몇 명 있다. 헝가리 출신 사상가이자 20세기 문학연구와 비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루카치(György Lukács)도 그중 한명이다.

포스트미메시스의 시각을 갖게 된 지금의 내 문학적 입장과 루카치가 강력히 주장한 리얼리즘 문학론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졌지만, 지금도 작품을 읽는 관점과 방법에 있어서 그에게 많이 기댄다. 그만한 시야와 깊이로 유럽 문학사를 조감하면서, 설득력 있는 작가론, 작품론을 통해 (맑스주의) 문예비평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는 거의 찾기 힘들다. 실로 20세기 문예비평의 거장이라 할 만하며, "미학의 맑스"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에 대해서는 독보적인 루카치 연구서인 김경식의 <루카치 소설론 연구> 참조) 더불어 루카치의 철학적 저작은 소위 '정통 맑스주의'와는 구별되는 서구 맑스주의와 비판 이론의 뼈대를 형성했다.

김경식 <루카치 소설론 연구> 겉표지 오길영

몇 년 전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잠시 동유럽 여행을 했다.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도 다녀왔는데, 내가 그곳을 가보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프라하에서는 카프카, 부다페스트에서는 루카치의 자취를 찾고 싶어서였다. 약간의 어려움 끝에 두 사람의 묘지 앞에 섰던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루카치가 묻힌,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구공산주의 시절 인사들이 안장된 공동묘지에 가니, 막상 루카치의 묘소는 주요 인물 묘소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에서 찾을 수 없었다. 안내 창구에 문의하니 비로소 지도에 묘소 위치를 표시해 줬다. 의도적으로 국가에서 홀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묘소에는 추모하는 꽃 한 송이 없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오르반의 우파정당이 집권하면서 극우-반유대주의가 득세했다. 그 결과 2017년에는 루카치의 동상이 철거되고 그의 글들을 모아두었던 아카이브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다시 묘소를 방문해 헌화를 했다.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루카치의 묘소오길영

얼마 전 오르반 정권이 물러난 뒤 이제 폐쇄됐던 루카치 자료실의 역할을 했던 그의 옛 아파트가, 빅토르 오르반 총리 실각 이후 새로운 지자체의 주도하에 기록 보관소 및 연구 센터로 복원돼 재개관한다는 미국 매체의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루카치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기획에는 헝가리 최대 우파 성향 일간지 <머저르 넴제트>(Magyar Nemzet)의 공격, 그에 동조한 오르반 정부가 16년의 재임 동안 좌파-자유주의 반대파들을 향해 벌인 끈질긴 공세가 배후 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오르반이 이끄는 우파 피데스(Fidesz) 당이 헝가리 사회당을 꺾고 압도적인 의석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지 불과 8개월 된 시점이었다. 견제 없는 권력을 쥔 오르반은 좌파-자유주의 성향의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지를 구축했다. 그 결과 루카치 아카이브는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당시 우파 진영에서는 루카치가 끔찍한 공산주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아카이브 폐쇄를 자신들의 승리로 포장하며 크게 반겼다. 기사에 따르면 루카치 아카이브 및 도서관 폐쇄는 독일 정부가 맑스주의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나 나치 동조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의 학문적 유산을 보존하는 기관을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강제 폐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우파 언론의 집요한 공격은 루카치의 제자이자 뉴욕 뉴스쿨에서 한나 아렌트 석좌교수를 지낸 82세의 아그네스 헬러(Ágnes Heller) 등 정부 비판적인 철학자들에게 집중됐다. 오르반 정권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는 이유였다. 모든 권력은 비판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증거다. 오르반은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를 권력에 복속시키기 위해 지원금 삭감 카드로 압박했다. 2016년 과학 아카데미는 높은 운영비를 핑계로 루카치의 아파트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르반의 측근들이 장악한 부다페스트시 당국 역시 중앙 공원에 있던 루카치 동상을 철거해 박물관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하버마스, 낸시 프레이저 등 전 세계 2천여 명의 학자가 항의 서한에 서명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이 직접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루카치의 유산을 옹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2018년 5월, 과학 아카데미는 아파트의 자물쇠를 교체하며 아카이브를 전면 폐쇄했다. 방대한 문서와 서신들은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으로 옮겨졌고, 메모가 빼곡히 적힌 장서가 남겨진 루카치의 아파트는 먼지만 쌓인 채 굳게 닫혔다. 이제 그 문이 다시 열리려고 한다. 반갑다.

극우 독재를 꿈꾼, 지금 재판 중인 내란의 수괴는 입만 열면 '자유 민주주의'를 떠들었다. 그가 이 개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이때 자유의 의미는 '나' 혹은 '우리'가 남들은 개의치 않고 떠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적으로 몰아 마음 내키는 대로 탄압하고 제거하라는 게 아니다. 야무진 착각이다. 정반대로 자유란 '우리'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의 견해가 자유롭게 표명되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지루하지만 중요한 과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기사의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정부는 오르반 정권처럼 연구자들을 억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구절을 읽자니, 내란 수괴 집권 시절 대전의 한 대학에서 벌어졌던 '입틀막' 사건이 떠오른다. 나는 그 장면 하나로 저들이 떠드는 '자유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확인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도 여기에 있다. 루카치의 복권 소식을 들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인정받는다는 걸 다시 새긴다. 역사가 두려운 이유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부다페스트의 루카치 묘소를 찾아보고 어려움 끝에 문을 여는 루카치 자료실도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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