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가자,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 혐오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지난 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청소년기부터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나는 '나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이 낙인이 찍힌 이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이 사회는 그걸 얼마나 깔끔하게 무시하는지 끔찍하게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몰리는 인생은 전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의지로 동성애자가 된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나의 타고난 정체성이었다. 태어나서 살다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나를 포함하여 이건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도 아니었고, 동성애자라는 게 그걸 물을 성격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추궁하고 죄라도 지은 것처럼 멸시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부정했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하기 싫어서. 그리고 이건 상당히 비참한 감정이 드는 일이다.
바꿀 수 없는 정체성으로 인해 낙인찍히는 고통은, 본질적으로 결국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이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소위 '배재고 사태'가 벌어진 이후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야구 경기를 하던 도중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쳤다.
이 말은 해당 커피 프랜차이즈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탱크데이'로 지칭한 소위 '스타벅스 사태'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배재고 선수들의 구호도 같은 맥락의 혐오와 멸시였다. 어떻게 변명해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거대한 갑론을박의 장이 되었다. 다루려는 주제가 이것이 아니기에 깊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른이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수준 이하의 저질인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게 이 사태를 갈무리하려고 노력하거나 상처받은 학생들을 위로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사태에 투영하거나, 혐오표현을 옹호하거나, 5.18과 호남 멸시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런 소리나 할 거면 그냥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이슈 하나가 발생한다고 고위공직자에 정치인까지 모두가 나서 말을 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게 자기 역할이 아니라면.
그 깊은 상처를 헤아리는 건 어렵다, 다만...
어쨌든 이 사태를 목격하고 나는 반사적인 궁금증이 들었다. 당시 경기장에 있던 광주일고 선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운드와 포수석과 내·외야에 서서 각자의자리를 지켰던 그 선수들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조롱을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덕아웃이나 혹은 경기장 어딘가에서 저런 외침을 하는 걸 목격한 광주일고 구성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단순히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과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사람의 출생지는 바꿀 수 없다. 그건 태어나는 순간 그냥 결정되는 것이다. 속일 수는 있어도 그걸 아예 다른 곳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저 나고 자라 배우다 보면 자기가 태어난 곳이 어딘지 알게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못난 세상은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단지 그 이유만으로 멸시한다. 한국에선 특히 호남과 광주가 그런 부당한 취급을 받는 지역이다. '이었다'라고 쓸 수 없는 이유는 이 혐오가 과거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끔찍하게도 '유희'나 '하위문화'처럼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결국 호남과 광주 사람에 대한 비하와 혐오로 이어진다.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외침을 듣는 건 순간이지만 그 발언으로 인해 받게 되는 상처는 평생의 막막함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그런 식의 모욕과 멸시에서 자유로우려면 결국 호남과 광주, 5.18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이 자기 출생지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거대해 보이는 군중은 혐오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고 세상은 그걸 보고도 꿈쩍하지 않는 것만 같다. 실제로 그렇기만 한지와 상관없이 당사자 개개인들은 그런 막막함이 들 수밖에 없다. 모욕감과 수치심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나는 광주일고 학생들이 아마도 그런 마음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기에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안타까움과 비참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과 구성원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이들이 당시에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알고 이해한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를 당사자가 아닌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당시의 마음과 상처에 대해 말을 하고 싶다면 나는 언제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란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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