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7 16:46최종 업데이트 26.07.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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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4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청사를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대통령실 제공

국가정보원이 12·3 내란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권창영 종합특검팀이 밝혔다. 6일 특검은 국정원이 이른바 '안보 위해 세력' 수백 명의 명단을 준비하고 대공수사권 행사 가능성을 검토했으며 계엄사령부에 연락관·조사관 파견을 준비한 정황이 확인했다고 브리핑했다.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을 '대공수사'라는 명분으로 합리화시키려 했던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 시절인 2012년에도 대형 사건을 일으켰다. 문재인·박근혜 등이 대선에 출마한 그해에 국정원 대북심리전단은 인터넷 댓글 작성, 찬반 클릭, 트위터 리트윗 등을 통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 환경을 조성했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국내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에 이 사건을 담당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 겸 여주지청장은 상부의 승인 없이 심리전단 직원 3명을 체포했다가 수사팀장직에서 배제됐다. 그 뒤 그는 대구고검 및 대전고검 검사로 밀려났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응징하겠다며 전격 체포라는 극적 상황까지 연출했던 윤석열이 그로부터 11년 뒤에 국정원을 12·3 내란에 끌어들인 정황이 이번에 포착됐다.

전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 과정에 연루된 일이 있었듯이,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동원되는 일은 외국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그렇지만 한국 국가정보원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반공 정치'에 활용된 국정원

국정원이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로 불렸던 반공 정권 시절에, 이곳 조사실에서 울려 퍼진 비명소리는 거의 다 남한 억양이었다. 외국인이나 이북 사람이 그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일은 적었다. 한국 정보기관들처럼 거의 국내 문제에만 신경을 쓰는 곳도 드물 것이다.

1961년 6월 10일 제정된 중앙정보부법 제1조는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국내외 정보사항 및 범죄 수사와 군을 포함한 정부 각부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감독하기 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하에 중앙정보부를 둔다"고 규정했다.

"국내외 정보사항"을 수집하라고 했지만, 중앙정보부는 주로 국내 정보에만 치중했다. 이 점은 중앙정보부가 공안 사건 및 간첩 조작에서 대공경찰이나 보안사에 뒤지지 않은 데서도 확인된다. 이런 분야에서까지 경찰과 보안사를 앞선 사실은 중앙정보부의 정체성을 의심케 만드는 일이었다. 정부 기관들의 정보 활동을 조정·감독할 권한을 중앙정보부에 맡긴 위 법률 제1조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중앙정보부가 국내 문제에 얼마나 과도하게 휩쓸렸는지는, 김종필을 앞세워 이 기관을 창설한 박정희가 바로 이 기관의 핵심 인물들에 의해 살해된 사실에서도 상징적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국정원이 국내 문제에 휩쓸리도록 만드는 본질적 원인은 국정원 자체보다는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에 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반공이 곧 안보이고 반공이 곧 대외관계인 나라였다. 이는 국정원이 국제정보전보다 국내정치에 주력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배경이 됐다. 반공을 빌미로 거둔 실적은 안보상의 실적, 대외관계상의 실적으로 평가됐다.

역대 정권이 외친 반공의 '공'은 실제로는 윤석열이 말한 '반국가세력'과 다름없었다. 2024년 12월 3일 발포된 계엄포고령 제1호는 야당·언론사·노동조합뿐 아니라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인들도 윤석열이 생각하는 반국가세력에 포함돼 있음을 보여줬다.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은 박정희 정권은 1975년 4월 8일 긴급조치 제7호에서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고 선언했다. 긴급조치는 헌법에 규정된 것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초헌법적인 것이었다. 그런 초헌법적 조치에 고려대학교를 집어넣은 것은 박 정권의 반국가세력 설정도 윤석열의 전공의 운운만큼이나 자의적이고 옹졸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뿐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도 정권 반대 세력을 반공의 '공'으로 인식했다. 반공정권들은 말로는 북한과 대적할 듯이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냉전 기간 내내 상대방을 군사적으로 압박한 쪽은 주로 북한이었다. 남한 정권이 각종 공격을 가하는 북한에 대해 실제로 보여준 태도는 참을 인(忍)으로 압축된다.

반공 정책이 실상은 국내정치용으로 활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중앙정보부 이래의 국가정보원은 '반국가세력' 혹은 '안보 위해 세력'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일을 마치 본연의 임무인 양 수행했다. 이런 세력을 겨냥한 엉터리 반공이 안보 및 대외관계와 등치되는 시절이었으니, 정보기관은 국내 비판세력을 잡아 가두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풍토가 이번 특검 발표로도 재차 확인됐다.

국가보안법 폐지, 왜 중요한가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 김지미 특검보가 6일 과천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수사 진행 상황과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국정원이 국내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그 같은 관행을 청산하는 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다. 이 법은 정권 비판 세력과 북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악법이다. 이는 국정원이 실제로는 국내 비판세력을 탄압하면서도 겉으로는 대북 안보활동에서 성과를 거둔 것처럼 포장하는 데 악용돼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김대중 집권기의 국가보안법 운용 사례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김대중만큼 중앙정보부에 한이 많이 맺힌 인물은 없다. 그는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동해 바다에 수장될 뻔했던 대표적인 국가폭력 피해자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정보기관의 악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의 집권기에도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선량한 국민들을 탄압하고 이를 안보상의 업적으로 포장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로 제출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김대중 집권 기간인 1998년 2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4일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기무사·경찰·검찰에 구속된 사람은 1058명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그 1058명의 과반수는 학생이거나 아니면 갓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보고서는 그중 53.6%인 567명이 한총련 대의원이었다고 알려준다. 1058명 중에서 국가기밀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8명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권하의 이 같은 수치는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한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구속하고 이를 안보상의 실적으로 평가받는 풍조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견고하게 고착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대통령 김대중도 어찌하기 힘들 정도로 그것은 공고했다.

그런 풍토 속에서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국내 정치에 상시적으로 관여하고 각종 부조리를 낳았다. 국정원이 12·3 내란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특검 발표는 그같은 국정원의 과거를 다시 상기시킨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국정원이 그런 일을 하는 데 활용했던 유력한 도구를 박탈하는 일이 된다. 이는 국정원이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진짜 주범들을 대한민국 밖에서 찾도록 만드는 출발점이다. 정보기관들이 진짜 안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보안법부터 신속히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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