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복을 착용하고 주차 안내 중인 경비원
PhotoAC
근래 들어 이 같은 현장을 지날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부들의 옷차림이다. 예전에는 한 여름에는 상의를 입지 않고 수건 하나를 머리에 두르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래에는 반대로 겨울에나 입을 것 같은 두툼한 조끼를 입고 작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 여름에 왜 저런 두꺼운 옷을 입나 싶어 가까이서 살펴보니, 조끼 양쪽에 작은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 외부 공기를 옷 안으로 순환시켜 땀의 증발을 돕는 '공조복'이라 불리는 작업복이다. 2004년 소니 엔지니어 출신의 시가야 히로시(79)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후 지금은 실외 노동자의 여름철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다.
집 근처 대형 슈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어르신도 얼마 전부터 이 공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인사를 건네며 "그거 입으면 좀 시원하세요?"라고 물으니 "입고 안 입고는 천지 차이"라며 "이거 없으면 밖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라고 덧붙였다.
냉각팩에, 냉각판초까지... 이거 없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이 같은 공조복 외에도 폭염을 대비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품 회사 팬클(FANCL)과 인쇄업체 토판(TOPPAN)이 공동 개발한 '시온(示温) 스티커'다. 체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스티커 속에 그려진 사람 얼굴 그림에 땀이 맺힌다. 체온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고령자에게 위험 신호를 알리기 위해 고안된 제품으로,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실증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두드리면 즉시 차가워지는 휴대용 냉각팩도 인기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얼마 전 휴대용 냉각팩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최고기온이 39도에 달했던 날, 아이는 냉각팩을 사용하며 하교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인데, 아이는 "오늘은 이거 덕분에 시원하게 왔어"라고 말하며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 냉각팩을 꺼내 놓았다.
지난해 오사카 엑스포를 계기로 관심을 모았던 '냉각판초'도 올해부터 시중에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비옷처럼 생긴 이 판초는, 물에 적신 뒤 가볍게 짜 입으면 수분이 증발하며 열을 빼앗아 체온 상승을 억제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상반신을 다 덮을 수 있어, 야외 공연이나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폭염에 대비한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지자체도 다양한 폭염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내가 거주하는 도쿄의 경우, 6월부터 수도요금의 기본요금이 4개월간 면제된다. 생활비 부담을 덜어 시민들이 전기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유락초역에 설치된 무료 급수기. 도쿄 전역 1000여 곳에 이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도쿄도 수도국
무료 급수기 설치 사업인 '도쿄 워터 드링킹 스테이션(Tokyowater Drinking Station)'도 확대되고 있다. 우에노공원, 아사쿠사, 오다이바 등 주요 관광지를 포함해 도쿄 전역 약 1000곳에 무료 급수기가 설치돼 있다. 물병만 있으면 누구나 차가운 식수를 채울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전용 지도에 접속하면 가장 가까운 급수기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폭염 속 시민과 관광객의 탈수를 예방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정책이다.
18년 전 내가 처음 일본에서 겪었던 여름은 덥고 습하긴 했지만, 선풍기 한 대로 견딜 만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일본의 여름은 양산은 기본이고 냉각 링, 냉각팩까지 챙겨야 안심하고 집을 나설 수 있을 정도다. 매미 소리와 풍경(風鈴, 작은 종) 소리를 들으며 한낮의 산책을 즐기기에는 일본의 여름은 이미 너무 뜨거워져 버렸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이번 여름은 아이들과 어떻게 이 폭염을 견뎌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전에는 "여름은 원래 더운 계절"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조차 망설여진다. 이제 일본의 여름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비가 필요한 '재난급으로 위험한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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