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 출연한 배우 윤경호
tvN
그런데 윤경호의 수다가 오래 남는 이유는 단지 말을 많이 해서만은 아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 만난 윤경호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보통 예능의 등장은 밝게, 텐션을 끌어올리며 시작한다. 그의 등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자신의 소개 멘트를 들으며 자리에 앉은 윤경호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촉촉하게 고여 있었다. 등장하자마자 눈시울을 붉힌 윤경호를 보며 눈물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감정을 꾸며내지 않는다. 웃기면 크게 웃고, 고마우면 길게 말하고, 감동하면 울고, 미안하면 또 말을 보탠다.
<유퀴즈>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던 윤경호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수다는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습관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순간을 오래 붙잡아 두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고.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슬픔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울증을 겪고 있을 사람들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을 향한 배려의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경호의 수다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고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수다를 '무해한 수다'라고 표현한다. 나 역시 그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핑계고> 100회 특집에서 김남길이 스쳐지나가듯 한 말, "나랑 라면 먹으러 다니는 유튜브 할래?" 이 말은 결국 7월 11일 공개된 유튜브 뜬뜬의 <아니 근데(중략) 라면 먹고 올래? >라는 여름특집 스핀오프로 이어졌다.
윤경호는 지난 방송에서 스쳐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핑계고 덕분에 광고를 찍게 됐다며 약속했던 대로 지갑을 열어 보이겠다고 했다. '활짝' 대신 '메롱' 하는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제작진은 윤경호를 배려해 법인카드를 내밀었지만 주변에서는 "개카(개인카드) 써야지!"라는 농담이 이어졌다.
정작 지갑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그는 끝내 분식집 사장님에게 직접 계좌이체를 했다. 계산을 해야 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배려해준 제작진의 마음을 받았으니,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윤경호가 살아낼 인물들이 기다려진다
요즘의 윤경호를 보고 있으면, 그를 시청자의 기억에 각인시킨 tvN 드라마 <도깨비>(2016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1화에서 고려시대 자신이 섬기던 장군 김신의 마지막 명을 받들었던 충신. 윤경호는 "상장군의 명을 받듭니다. 곧 따라가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는 몇 번의 생을 지나 현생의 면접장에서 다시 김신을 만난다.
▲윤경호는 <도깨비>에서 가난한 가장으로 환생한 김신의 충신을 연기해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tvN 화면 캡처
자신을 바라보는 김신을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김신의 뒤늦은 고백을 들으며 면접장에 들어간다.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아이처럼 기뻐하고, 회사가 마련해 준 집과 차량,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까지 선물받은 그는 자신이 이런 것들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때 김 비서 역의 조우진이 건네는 한 마디.
"전생에 나라를 구하셔서요."
"제가요?"
"네."
배우 조우진은 이 장면을 찍을 당시, 윤경호의 진심 어린 표정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밝은 톤의 "네에!" 대신 담백한 톤으로 연기를 바꿨다고 말했다(유퀴즈 출연 방송 내용). 예능에서뿐 아니라 본업에서도 그의 진심은 상대 배우의 연기까지 바꾸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의 윤경호를 보고 있으면, 그 대사가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지금의 그에게 주어지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더 많은 역할의 기회는 전생의 공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인물을 하나씩 묵묵히 살아낸 배우 윤경호의 시간.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들이 이제야 오늘의 윤경호에게 선물처럼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윤경호가 살아낼 인물들이 더욱 기다려진다. 작품 속에서는 또 어떤 사람의 삶을 살아낼지, 작품 밖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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