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집이라 불리는 베를린 시청사.
고정희
확인된 사실 관계를 보면, 사고 당일 첫 업무 통화는 오전 8시가 아니라 12시 45분, 경제부 장관과 단 3분 통화했다. 그리고 테니스장으로 직행했고 동반자는 시장의 연인으로 밝혀진 교육부 장관이었다.
정전 16시간 후인 오후 10시 30분에야 비로소 베를린 전력회사와 한 번 통화했고 그가 거듭 주장한 바와 달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는 통화한 사실이 없었다. 시장 비서실에선 거짓 증언을 했지만, 법원 판결문을 제출하자 연방 총리실에서 문서로 사실 확인을 해 주었다.
이 시점에선 총리도 당도 베그너를 버리기로 결정한 듯했다. 연합정부를 이루고 있는 사회민주당(사민당)에서 베그너가 있는 한 연정 유지는 불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연정을 지키기 위해선 베그너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타게스슈피겔> 보도를 모든 언론이 받아썼고 야당들은 들끓었다. 소속당에서도 5인의 당원과 청년 조직(Junge Union Berlin)이 공개서한을 통해 "테니스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감추고, 말을 바꾸고, 위협하고, 부인하는 그대의 정치 패턴이 문제다. 차기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혀라"고 종용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끄집어낸 일등 공신은 <타게스슈피겔>의 요스트 뮐러노이호프 법률 정책 전문기자였다. 법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지난 십수 년간 '언론법상 정보청구권'이라는 차가운 무기를 벼려왔다. 일찍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실의 비공개 간담회 명단을 얻기 위해, 또 연방정보국(BND)을 상대로 최고법원까지 가며 "정보청구권은 개별 기자에게 귀속되는 개인적 권리"라는 원칙을 판례로 얻어낸 베테랑이다.
베그너 사건에서 그는 고발장을 내고 검찰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원고가 되어 베를린 행정 법원에 섰다. 베를린 시정부가 정보를 6개월간 틀어막자 그는 가처분 신청을 거듭 제기해 "정전 당일 오전에 공식 통화가 없었다"는 관청 기록을 토해내게 만든 것이다. 시정부가 "그래도 메르츠 총리와는 통화했다"는 방어선을 치자 이번엔 표적을 연방총리실로 옮겨 "그런 통화는 없었다"고 이실직고하게 했다.
거짓말을 유지하려면 연방 정부와 베를린 주정부 두 기관이 동시에 거짓을 말해야 하는 구조로 몰아간 것이다. 법리적 논리는 명백하다. 기자가 아무리 열심히 취재해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개인의 해석'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 법원이 강제한 관청 기록은 반박이 불가하고 사건의 증거가 된다. 뮐러노이호프는 분노를 반박 불가능한 증거로 차갑게 응고시켰고, 바로 그 순간 베그너의 6개월짜리 철면피 방어벽이 무너져 내렸다.
후계자로 나선 "두 얼굴의 남자"
▲2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주의회 선거 기독교민주연합 유력 후보인 슈테판 에버스 상원의원이 나치 폭정에 저항하다 살해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연설을 마친 후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두 달 후인 오는 9월 20일에 베를린 주의원 선거가 있다. 최신 여론 조사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베그너가 사퇴하기 직전 기민련은 지지율 17%로 4위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베그너를 버리고 젊은 슈테판 에버스를 후보로 내세우자, 7월 중순 조사에서 3%포인트를 회복하면서 20%로 다시 2위에 올라섰다.
한편 "세 번 거짓말하는 자는 뽑지 않는다"던 좌파당은 22%로 선두를 지켰고, 현 '흑적'(기민련-사민당) 연정은 과반을 잃었다. 좌파당·녹색당·사민당의 '적록적' 연합이 다음 선거의 다수를 노리는 구도가 되었다.
나는 사라진 이보다 남겨진 이가 더 두렵다. 베그너의 후계자로 나선 슈테판 에버스는 "두 얼굴의 남자"라 불린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관용과 다양성을 선거의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한때 좌파 활동가들을 "역겨운 무리", 폭동의 무리는 해충처럼 "연기로 그을려서 몰아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사람이다.
나치의 언어를 교묘하게 적용한 - 가스를 연기로 바꾼 - 적신호 대상이다. 그동안 재무장관으로서 자전거 도로를 걷어내고 기후 정책 예산을 지워 버린 긴축의 집행자이면서, 부드러운 미소로 현대적 보수주의를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냉소적인 베를린 시민들은 그의 웃는 얼굴에 속지 않고, 언론은 그의 실체를 정확히 분석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베그너가 사퇴한 즉시, 언론은 일제히 후계자 에버스 분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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