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을 기리며 수영으로 독도를 33바퀴 돈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2009년 1월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에서 열린 제10회 서귀포 겨울바다 펭귄수영대회에 참가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해남 출신인 조오련은 10대 후반부터 국제 수영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8세 때인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미터·1500미터 2관왕이 된 그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두 종목을 다시 제패하고 자유형 200미터 은메달을 추가했다. 1978년 방콕 대회 때는 접영 200미터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70년대의 한국 수영을 대표했던 그는 1980년에는 수영장이 아닌 바다로 무대를 옮겼다. 이때부터는 수영선수라기보다는 해양 모험가에 가까웠다. 또 그의 새로운 목표는 금메달 획득이 아닌 인간 한계 극복이었다. 28세 나이로 성취한 대한해협 횡단은 그의 변신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했다. 이는 그가 한국 사회에서 모험과 도전정신의 모범적 인물로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1982년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9시간 35분간 헤엄친 그는 한일 월드컵 축구가 있었던 2002년에는 50세 나이로 대한해협을 다시 건넜다. 2003년에는 약 240킬로미터를 헤엄치는 '한강 700리 종주'를 10일 만에 마쳤다.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 의회는 러일전쟁을 틈타 일본이 독도를 강탈한 날인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의결했다. 이로 인해 한일 긴장이 고조되는 속에서 그는 독도가 대한민국 바다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해에 그는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두 아들 조성모·조성웅과 함께 울릉도-독도 구간을 3교대 수영으로 횡단하는 모험을 벌였다. 그는 56세가 된 2008년에는 3·1절을 기념해 독도 주변을 33바퀴 돌았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독도 수호에 애착을 보인다. 조오련은 그의 특유한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시지가 동해 바다에서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인간 한계에 대한 그의 도전은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민족적 열망, 제국주의 침략의 흔적을 청산하고자 하는 세계인들의 열망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수행됐다. 1980년대에 모험과 도전정신의 상징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줬던 조오련이 인생 후반에는 한국사와 세계사의 과제를 대중적으로 상기시키는 데도 기여했던 것이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고 극한 모험에 나서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의 하나다. 전직 수영선수인 조오련은 바다 횡단이라는 과감한 방법으로 그 가치를 추구하고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인들에게 힘과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 수영의 저변 확산에도 기여했다. 1989년부터 조오련 수영교실을 운영해 생활수영 보급과 어린이 조기교육에 도움이 됐다. 또 엘리트 수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가대표팀을 이끈 노민상(1956년생) 전 감독도 조오련을 보면서 꿈을 키웠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조오련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태환 선수에 대해 "나는 왜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질투심도 느꼈다.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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