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30 11:52최종 업데이트 26.07.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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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 대통령관저에서 소인수회담을 진행하고 있다.청와대

한국 외교의 지도에서 남반구는 오랫동안 주변부였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간 사실상 '북반구 국가'로 사고하고 행동해 왔다. 우리의 외교와 경제는 미·중·일·러 4강을 비롯해 미국, 유럽, 동북아라는 북반구 축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7월 이재명 대통령의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ABC 3개국 순방은 한국 외교의 정신적 지도가 북반구를 넘어 지구 전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2010년대 초반,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에 머물던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한국 미디어가 담아내던 중남미는 두 갈래였다.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 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끊이지 않는 '지구 대척점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크 광장에서, 그리고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의 열기 속에서 직접 목도한 라틴아메리카는 달랐다. 선진국들이 그어놓은 고정관념의 틀보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빚어내는 거대한 '하이브리드 문명'의 현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남미로 향한 것은 비행기의 항로만 바뀐 것이 아니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의미는 몇 건의 양해각서(MOU) 체결이나 당장 손에 쥐어질 경제적 셈법에 있지 않다. 한국 외교가 비로소 세계를 '북반구'가 아닌 '지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21세기 후반부의 세계 질서는 서구 및 동북아의 선진국 50여 개를 뜻하는 '글로벌 노스'에 대한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의 길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도의 남반구를 중시하는 시각의 대전환이야말로 이번 순방이 남긴 최고의 외교적 자산이다.

김영삼의 '시장', 노무현의 '자원', 그리고 이재명의 '글로벌 사우스'

한국 정상의 남미 방문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역대 정부의 남미 외교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진화해 왔다. 1996년 9월 김영삼 대통령은 최초로 중남미 5개국을 순방하며 세계화와 신시장 개척의 물꼬를 텄다. 당시 브라질의 카르도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김 대통령은 귀국 직후 외무부에 중남미 전담국을 신설했다. 기존의 미주국에서 분리해 전담 '중남미국'을 신설한 이 조치는, 중남미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분기점이다.

이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만나 자수성가형 리더로서 깊은 동지 의식을 나누며 자원 외교와 경제 협력을 본격화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2008년 룰라와 정상회담을 갖고 주요 20개국(G20) 무대 등에서 금융위기 극복과 실질 협력을 논의했다. 2026년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순방은 맥락이 다르다. 김영삼 대통령은 남미의 '시장'을 보러 갔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원'을 보러 갔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질서 속의 '글로벌 사우스'를 만나러 갔다.

오늘날의 남미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리튬·구리·희토류 같은 핵심 광물과 식량 안보, 공급망 재편의 핵심 요충지다. 나아가 브릭스(BRICS)의 확대와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이라는 국제정치학적 대변혁의 중심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명분보다 실리를,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시해 온 실용주의 정치인으로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 시점에 남미로 향한 포석은 명확하다. 미·중 대립으로 인한 진영 선택의 압박 속에서 남미 ABC 3국은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줄 최적의 우군이다.

브라질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27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 대통령관저 앞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부부와 의장대 분열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혜경 여사, 이재명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호잔젤라 다시우바 여사.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브라질의 카운터파트인 룰라 대통령과의 인연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2010년 재선 임기가 끝난 이후 룰라는 브라질 정치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법 리스크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의 궤적은 가난한 소년공 출신의 역경을 딛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재명 대통령의 삶과 강렬하게 공명한다. 그가 만난 한국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세 번째다. 소년공 출신이라는 특별한 성장 배경을 공유하는 두 정상의 유대감은, 4대강 중심의 외교 프레임을 벗어나 '한국형 글로벌 사우스 전략'을 가동하는 단단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실리와 소프트 파워의 '입체적 교류 외교'는 명분이 아닌 데이터와 실리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위성락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이 발표했듯, 남미 ABC 3국과의 협력은 한국 경제와 안보에 지대한 실리적 가치를 제공한다. 시장 개척과 공급망 다변화, 자원 안보 파트너십, 그리고 국제무대에서의 우군 확보라는 세 가지 축이 입체적으로 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단순한 자원 수입국을 넘어 기술 공유와 상생을 도모하는 전략적 연대가 핵심이다.

첫째, 거대 시장 개척과 공급망의 다변화다. 인구 2억 8천만 명, 국내총생산(GDP) 3.7조 달러에 달하는 남미 거대 시장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이끄는 브라질·아르헨티나와의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재개, 그리고 첫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칠레와의 FTA 현대화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이는 중남미 최대 방산 시장인 브라질, 유망 인프라 시장인 칠레로의 우리 기업 진출을 본격 지원하는 발판이 된다. 이 대통령이 브라질 도착 직후 엠브라에르의 C-390 수송기를 둘러본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둘째, 인공지능(AI) 시대의 자원 안보 파트너십 구축이다. AI에는 반도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브라질의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 및 식량 수출 역량, 칠레의 구리·리튬 매장량 세계 1위, 아르헨티나의 셰일가스 매장량 세계 2위와 리튬 염호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충하는 최선의 자원 안전지대다. AI가 남미의 전략적 가치를 크게 높이고 있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수조 원을 투입해 리튬 상업화 공장을 가동한 현실은 중남미가 한국 첨단 산업의 생명줄로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현지 투자와 기술 이전을 병행하는 한국의 상생 모델은 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다.

셋째, 소프트 파워와 문화교류다. 2011년 MBC 중남미지사가 주최했던 K팝 아이돌 엠블랙의 공연 당시, 남미 최초의 K팝 무대에 몰려든 현지 청소년들의 함성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낯설게 시작되었던 열기는 현지 한류 동호회 회원 수가 20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데이터에 따르면, K팝 아티스트의 월간 청취자 수 상위 5개 도시에 상파울루, 산티아고, 멕시코시티가 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제 남미의 한류는 'K팝의 침공'을 넘어 현지 문화와 접목된 '쌍방향 문화 융합'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욱 깊은 연대의 틀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상흔과 극복'에 있다. 한국과 남미 3국은 20세기 후반 혹독한 군사독재의 아픔을 겪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공통된 자부심을 공유한다.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 회복,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극복, 브라질의 민주화 이행 역사는 한국의 4·19, 5·18, 6월 항쟁의 역사와 깊게 공명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적 가치 공유와 1963년 브라질 농업이민으로 시작해 60년 역사를 지닌 중남미 교민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는 경제 협력을 받쳐주는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다.

지속 가능한 중남미 전략을 위하여

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 대통령관저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남미 ABC 3국 순방은 외교 지평을 넓히고 거대한 경제적·전략적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관건은 귀국 이후의 실천이다. 1996년 중남미국 신설이라는 획기적인 결단이 있었듯, 일회성 이벤트형 외교에 그치지 않기 위한 실질적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 순방 역시 단단한 후속 조치로 착근되어야 한다. 정상회담의 외교적 수사가 실체 있는 정책과 국가적 인프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중남미 전략이 완성된다. 세 가지를 방식을 들어보려 한다.

첫째, 합의 사항의 속도감 있는 제도화다.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재개, 한-칠레 FTA 현대화, 핵심 광물 공급망 MOU 등은 실무 협의체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 '브라질 코스트' 등 중남미 특유의 복잡한 관료주의적 관성을 고려할 때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논의가 시작된지 20년 넘게 답보상태인 한-메르코수르 FTA 협상 또한 마찬가지다.

둘째, '민간·학술 네트워크'의 두터운 구축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기조 변동성이 존재하는 중남미 정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은 대학 간 학술 교류, 문화 교류, 그리고 민간 비즈니스 채널이다. 국내 주요 대학의 중남미 연구소 지원을 늘리고, 현지 한국학 및 지역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국내 '중남미 시각 전환'과 전문 인재 양성이다. 여전히 우리 언론과 대중은 중남미를 치안 뉴스나 축구, 삼바의 나라로만 단편적으로 소비하곤 한다. 이에서 벗어나 남미의 산업적 잠재력과 첨단 기술 역량을 깊이 있게 조명해야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능통하고 현지 사정에 밝은 중남미 지역 전문가를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대로의 한국문화원 앞에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유영호 작가의 조형물 '그리팅맨(Greeting man)'이 서 있고, 한인타운 봉헤치로 입구에는 양국의 우호와 연대를 뜻하는 조형물 '우리(Uri)'가 서 있다. 이 두 조형물은 함께 "Muito Obrigado, Vamos Juntos(고맙습니다, 함께 갑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외교의 시야를 북반구에서 지구 전체로 넓힌 이번 남미 3국 순방을 계기로, 쌍방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함께 걸어가는 진정한 파트너십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93

필자 정길화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이다. MBC에서 <인간시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이후 중남미 지사장 겸 특파원을 역임했다. 브라질 등 중남미 K팝 팬덤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고(한국외대 대학원), 이후 문체부의 국제문화교류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으로 재직했다. 저서에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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