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비틀스의 멤버들(왼쪽부터 조지 해리슨, 존 레논, 링고 스타, 폴 매카트니)의 첫 미국 투어 중 모습.
AP/연합뉴스
10여 년 전 미얀마의 궁벽한 시골에 갔을 때 처음 든 생각이다. 택시 기사가 한국 아이돌 그룹 이름을 줄줄이 꿰기 시작했다. 백미러로 내 표정을 살피며 은근히 뽐내는 품이, 어지간히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작 나는 그가 대는 이름의 절반도 알지 못했다. 머쓱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때 문득 K팝이 도대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방탄소년단을 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비틀스와 비교를 하는 것일까. 아주 유치한 발상인 줄 안다. 지금과 비틀스 전성기였던 1960년대는 시대가 다르고 녹음 기술이 다르고 음악을 듣는 방식도 다르다. 음악이란 결국 각자의 취향이기도 하다. 많이 팔린 것과 잘 만든 것과 오래 남는 것은 서로 다른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찾아봤다. 그러다 뜻밖의 이야기를 만났다.
비틀스가 미국에 들어간 과정부터가 그랬다. 1963년의 비틀스는 영국 차트를 잇달아 석권하던 최고의 밴드였다. 그런데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소속사 EMI의 미국 자회사인 캐피톨 레코드가 음반 내기를 번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담당자는 훗날 비틀스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영국에서 1위를 한 노래들은 이름 없는 작은 회사를 통해 나왔고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벽을 뚫은 것은 메릴랜드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녀였다. 마샤 앨버트는 뉴스에서 영국의 비틀스 열풍을 보고 워싱턴의 한 라디오 디제이에게 그 노래를 틀어달라는 편지를 썼다. 디제이는 승무원을 통해 런던에서 음반을 구해와 1963년 12월 17일 방송에 걸었다. 전화가 폭주했다. 캐피톨 레코드는 방송국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며칠 만에 말을 바꿔 발매를 3주 앞당겼다.
비틀스는 그래미와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다. 미국을 완전히 휩쓴 1964년을 심사한 이듬해 시상식에서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는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브라질 보사노바 곡에 내줬다. 최우수 로큰롤 레코딩 부문에서도 떨어졌다. 손에 쥔 것은 신인상 등 둘뿐이었다. 시상식에는 가지 않았다. 런던 촬영장에서 트로피 받는 장면을 찍어 보냈고, 그것은 '그랜마 어워드'라고 불렸다. 이듬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올해의 앨범' 부문 수상은 프랭크 시내트라 몫이었다.
비틀스만 그런 것도 아니다. 1989년 그래미가 랩 부문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수상 발표가 아예 중계에서 빠졌다. 수상자와 후보들이 그해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윌 스미스다. 당시 그는 학교를 12년 다니게 하고 졸업장은 주면서 단상에 오르는 건 막는 격이라고 그래미를 비판했다.
굳이 그런 상이 없어도 좋은 노래는 남는다. 방탄소년단의 길도 이들과 닮았다.
백범 김구 선생을 랩으로 불러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컴백 공연 ‘비티에스 컴백 라이브 : 아리랑’에서 신곡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방탄소년단 쪽의 변화는 더 뚜렷하다. 리더 RM은 2020년 11월 한 미국 잡지 인터뷰에서 그래미가 미국 여정 전체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상이 곧 마지막 인정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6년 뒤에는 지역과 언어로 차별하지 말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히며 상 받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일곱 사람 모두 2019년부터 레코딩 아카데미의 투표 회원인데도 말이다. 이를 '당당함'이라고 밖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그 당당함이 앨범 하나에 그대로 들어 있다.
<아리랑>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속사는 세계 각지의 작곡가들을 불러 모아 대규모 합숙 작업을 벌였고, 이것을 승부수로 꼽았다. 성덕대왕신종 타종 소리가 짧게 들어가 있고, 컴백 무대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물론 다 풀린 숙제는 아니다. BBC는 지난 4월 이들이 세계에 구애하려다 K팝에서 너무 멀어진 것 아니냐고 물었다. 영어가 너무 많이 쓰였다는 비판도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내세웠다면서 정작 곡을 만든 손은 상당수가 외국 사람들이었다.
이번 일이 알려진 뒤 팬들이 다시 차트 위로 밀어 올린 곡이 있다. 발매된 지 반년이 지난 <에일리언스>(Aliens)다. 서양에서 이방인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말이고, 외계인이라는 뜻도 함께 있다. 그 말을 이들은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 너희 눈에 우리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 부르라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이 흠이 아니라 힘이라고, 그렇게 되돌려 주고 있다.
곡 안에는 우리 것이 그대로 굴러다닌다. 판소리 장단인 중모리가 트랩 비트 위에 얹히고, 알파벳 대신 한글 자모의 처음과 끝이 세상의 기준처럼 놓인다. 내 집에 오려거든 신발을 벗으라는 대목도 있다. 신을 신은 채 집 안을 오가는 서양 사람들에게, 들어오려면 한국의 법도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리고 김구 선생을 호출한다. 궂은 일이 도리어 큰 복이 된다는 옛말을 앞세운 뒤다.
"흉즉대길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영어는 또 나밖에 못 해 but that is how we kill
눈만 또 허벌나게 큰 너희가 말하길"
김구 선생이 바라던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였다. 그 소원을 증손자뻘 되는 청년들이 랩으로 녹여냈다. 영어가 서툰 것을 두고는, 그래서 오히려 시장을 휘어잡았다고 받아친다. 동양인의 작은 눈을 놀리던 시선은, 저쪽 눈이 크다는 말로 되돌려 준다. 어디에도 주눅 든 구석이 없다.
가사를 온전히 알아듣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노래는 세계 곳곳에서 불린다. 한국 것을 덜어내지 않고도 통한다는 뜻이다.
탁월함은 비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난 1일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아리랑 월드투어 콘서트 모습.
연합뉴스
비틀스와 방탄소년단 중 누가 더 나은가, 누가 더 인기가 있나. 유치한 질문이다.
지금은 듣는 방식이 다르다. 반복해 듣고, 찾아보고, 자막을 켜고, 뜻도 모른 채 따라 부른다. 처음에 못 알아들어도 괜찮다. 한 번의 방송으로 끝내야 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제 나라말과 문화를 덜어내야 세계에 닿던 시대가 지나갔다.
그러니 인정을 구걸할 이유가 없다. 미국 시상식의 트로피 하나로 매겨질 음악의 값이란 애초에 없다.
이건 음악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이 매긴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살았다. 몇 등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그 표를 아예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그 선택 덕에 더 멀리, 더 크게 날아오를지도 모른다. 순위 대신 세계인이 함께 공감할 음악 그 자체에 온전히 매달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군 복무로 멈추고 쉰 것처럼 보이던 사이에 이들은 훌쩍 자란 것 같다. 남보다 앞서는 일과 좋은 것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 그걸 일찌감치 깨달은 모양이다. 남과 견주지 않기로 한 사람만이 자기 것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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