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1 14:14최종 업데이트 26.08.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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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오!' 하는 탄성이 입 밖으로 나왔다. 지난 8월 1일, 유튜브 채널 '뜬뜬'에 '풍향중' 영상이 올라왔다.

'풍향중'은 '풍향고' 세계관을 국내 여행으로 확장한 프로그램. '풍향고2'에서 호흡을 맞췄던 지석진, 유재석, 이성민, 양세찬이 그대로 참여했다. '풍향고'의 NO어플, NO 예약 규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NO 내비게이션, NO 고속도로 규칙을 추가했다. 그들의 여행에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 보기 전부터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소통이 폭발했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유재석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유재석운전자는 한 명이지만 모두 전방을 주시하며 가는 길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다.뜬뜬

이번에는 1박 2일 국내 여행인데, 여행지는 돌림판을 돌린 결과 '전라북도 익산'으로 정해졌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야 하는 여행이라, 모두 서둘러 차에 탑승했다. 운전은 유재석이 하고, 이성민은 그 옆자리에서 축척이 다른 지도를 번갈아 봤다. 이성민이 가는 방법을 알려주면 유재석뿐 아니라 뒷자리의 지석진과 양세찬도 도로의 표지판에 집중했다.

"과천에서 47번 국도 타고 가다가 화성에서 39번을 갈아타야 해."라는 이성민의 말에 차에 탄 모두가 잊지 않으려 47번, 39번을 소리 내어 말했다. 운전하는 사람은 한 명인데 네 명이 모두 함께 운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길을 걷다 보면, 차의 창문을 내리고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릴 적 아빠 차를 타고 갈 때, 아빠가 길이 헷갈리면, 나에게 가게에 가서 길을 물어보라고 했던 생각이 났다. 쭈뼛거리며 가게에 들어가 말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기억, 대부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던 어른들에 대한 기억이 덩달아 떠올랐다.

그들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없으니, 현재의 위치도, 걸리는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가야 하는 도로의 번호가 표지판에 두 개가 나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나침반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서 아예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불편하지만 재미있고, 긴장되지만, 대화 거리가 넘친다. 긴장하다 길을 제대로 찾았을 땐 모두 기쁨의 박수를 쳤다. 편리하게 사용하던 기계 하나가 없어진 것뿐인데 소통이 폭발했다.

우연히 표지판을 보고 간 '공세리 성당'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였고,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간 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또 갈 만한 장소를 물어서 간 신정호에서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아산인데,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표지판을 보고 우연히 가게 된 공세리 성당뜬뜬

겨우 다시 차를 타고 익산을 가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그러나 유재석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약속 있어요?" 그러자 다른 멤버들이 "아니오" 하고 답했다. "만날 사람 있어요?" 하니, 또 "아니오" 하는 대답. 그 대답 끝에는 여지없이 하하, 하는 웃음이 따라 나왔다. 화면 아래로 '바람 따라가는 여행자들의 마인드 세팅법'이라는 자막이 떴다.

3화에 걸친 이들의 여행은 한 마디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예상치 못한 도시, 예상치 못한 만남, 예상치 못한 먹거리. 이 여행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었는데, 익산에서 부여로 가겠다는 전날 밤의 계획이 무색하게 그들은 다음 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의 '짬뽕'이 유명하다는 이유였는데, 그렇게 군산에 와서는 '간짜장'을 시켰다. 아무렴 어떤가.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데.

짬뽕을 찾아 군산으로 왔으나...
짬뽕을 찾아 군산으로 왔으나...짬뽕을 먹으러 군산까지 왔지만, 짜장 맛집이란 말에 짬뽕 대신 간짜장을 주문하는 멤버들.뜬뜬

중요한 건 계획이 아니다

지난달 우리 가족의 제주도 여행을 떠올려 보았다. 난 여행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가는 제주도 여행이라 그런지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이 그득그득해서 덜어내지지가 않았다.

여행 기간과 장마 기간이 겹쳐 인스타에서 장마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보니 엄청난 정보가 쏟아졌다. 막상 검색한 곳을 가면 생각보다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인스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인데 시간표가 있는 듯했다. 남편과 아이는 한 곳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다음은 어디야?"

나는 좋은 곳에서도 가족들이 만족하는지 살피느라 그곳을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웠다. 밤에는 다음 날 가려고 계획했던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곳이 있는지 검색을 이어갔다.

비오는 날 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간 서귀포 치유의 숲
비오는 날 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간 서귀포 치유의 숲과연 아름다웠으나 난 사진이 담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사정이 궁금해졌다.김지은

인스타에서 극찬한 풀 내음이 가득한 숲길에서 '오래 차를 타고 왔으니, 충분히 즐겨야 해. 저 뿌연 안개와 나뭇잎의 조화를 봐. 이런 풍경을 보면 감탄해야지!' 하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런 생각이 날 더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를 맞으며 걷는 가족들이 불편하지는 않을지도 신경이 쓰였다. 겉으로는 "멋지지? 잘 왔지?" 하고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진을 찍으니 과연 아름답게 나왔다.

여행을 돌이켜보면 엄청난 검색으로 호기롭게 예약했던 둘째 날 비싼 식당보다 그 전날 호텔 직원에게 물어 찾아간 식당이 훨씬 좋았고, 비 오는 날 가면 좋다는 유명한 숲길보다 밤 산책을 하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갔던 바다와 골목들이 더 좋았다. 우연히 마주한 상황에서는 기대가 없어서인지 즐거움이 더 컸다. 그럴 땐 나도 온전히 그곳에서 가족들과 깔깔 웃으며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다음 여행은 모든 걸 계획해 떠나는 여행보다 '풍향중'처럼 바람 가는 대로 가는 '풍향가(家)'의 여행법을 해봐도 좋겠다. 정말 중요한 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 "좀 돌아가지 뭐", "예상치 못한 게 있을 거야" 하고 서로 토닥여 줄 사람, 생각지 못한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깔깔 웃어줄 사람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풍향고’로 시작한 연재가 ‘풍향중’으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글로 나눌 수 있어 행복했어요. '풍향중' 멤버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조금은 관망하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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