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이후 남은 의혹을 수사하는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계엄 관여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을 압수수색 중인 지난 4월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대검 공공수사부장 컴퓨터에서 발견된 파일만으로는 명단 작성 시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 포렌식 과정에서도 관련 전자정보가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법원이 비상계엄 해제 이후 생성된 전자기록물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허용했다면, 포렌식을 통해 명단 작성 시점이 명확히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압수수색 제한으로 더 이상의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해도 당시 압수수색 범위가 계엄 종료 시점까지로 제한된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계엄 해제 이후에 작성됐다는 추론이 무리는 아니다.
다만 종합특검팀이 자체 압수수색을 통해 명단 작성 일시가 기록된 전자정보를 확보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단 성격을 두고 논란이 있는 만큼, 명단이 비상계엄 해제 이전에 작성된 사실을 확인했다면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게 상식적이다. 딱 떨어지는 물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 전 총장을 기소한 후에도 종합특검이 명단 작성 시점을 확인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명단 내용도 계엄에 가담하는 합수부 파견용이 아니라 계엄을 수사하는 특수본 구성용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A4 2장짜리인 이 명단에 적힌 검사들은 '본부장급' '차장검사급' '부장검사급' '검사급'으로 분류됐다. 앞장에는 본부장급, 차장검사급, 부장검사급이, 뒷장에는 부부장급 이하 검사 명단이 적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간부진 명단은 몇 배수의 복수로 구성돼 있다. 본부장급에는 박세현 서울고등검찰청장을 비롯한 고검장 3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차장검사급은 김종우 서울남부지방검찰청 2차장을 비롯한 4명, 부장검사급 후보자는 7명이고, 부부장급 이하 검사는 18명이다.
후보군에 포함됐던 박세현 서울고검장과 김종우 서울남부지검 2차장은 실제로 특수본 지휘부를 형성했다. 부장검사가 맡는 팀장 보직에는 역시 명단에 있던 이찬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장과 최순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이 발탁됐다. 명단에 적힌 일반검사 상당수도 특수본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후보'인가?
명단이 적힌 문서의 파일명이 '241203 계엄수사팀(후보)'이고, 문서 제목이 '수사팀 구성안'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합수부 파견용이라면, '계엄수사팀'이라는 명칭도 어색하고 '후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종합특검 설명대로라면, 대검이 일단 파견 검사 후보군을 정해놓고 대기하다가 비상계엄이 해제되니까 이를 특수본 명단인 것처럼 꾸몄다는 건데,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후보'는 미확정을 전제로 한다. 촌각을 다투는 비상 상황에서 장관 지시로 검사 파견을 결정했다면 곧바로 대상자를 선정해 법무부 인사 명령을 거쳐 합수부에 통보하는 게 정상이지, 복수의 후보자 명단을 작성했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상계엄 당일 합수부에 파견할 명단을 조기에 확정하고 실제로 병력을 출동시켰던 국방부 조사본부(군사경찰)와 비교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합수부 파견 경찰관들을 선정해 사무실에 대기시키고 여차하면 현장에 투입할 태세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법(7조)에 따라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따라서 검찰,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은 계엄사 합수부의 지휘·통제를 받게 되고, 법원의 주요 재판권도 군사법원으로 넘어간다.
2024년 상반기에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합수부 권한을 강화하는 '신 합동수사본부 운영 계획'을 세우고 수사기관 간 연락망 공유 체제를 대규모 수사 인력 파견 체제로 바꿨다. 비상계엄 당일, 방첩사는 이를 근거로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각각 100명의 수사 인력을 요청했다.
여인형 전 사령관 휴대전화 메모를 보면, 방첩사가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반국가세력 수사본부'와 '부정선거·여론조작 수사본부'를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특검 주장대로라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본부 규모의 수사팀을 꾸렸다는 건데, 법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내란 수사에 공식 착수한 날은 계엄 종료 이틀 뒤인 2024년 12월 6일이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12월 4일, 개혁신당과 진보 3당(정의당·노동당·녹색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와 직권남용죄로 고발했고, 이튿날 검찰총장은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그에 따라 특수본이 구성됐는데, 박세현 본부장과 김종우 차장의 지휘 아래 부장검사 2명이 이끄는 2개 팀이 가동됐다. 수사 인력은 검사 20명, 검찰수사관 30여 명으로 구성됐다. 거기에 군검사와 군 수사관도 합류했다. 특수본은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한 시비를 의식해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김용현에게 내란 책임 돌리자"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윤석열씨 내란우두머리 사건 39차 공판에서 증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조계에 따르면, 특수본 명단이 검찰 안팎에서 거론된 것은 12월 4일 밤이고, 인선과 조직 구성이 완료된 것은 5일이다. 검찰이 발 빠르게 수사본부를 출범시킨 데 대해서는 경찰과 공수처를 겨냥한 수사 주도권 확보와 특검 출범 견제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4일 오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당·정·대 회의(오후 2시~3시 30분)와 안가 모임(오후 6시 32분~8시 26분)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당·정·대 회의에는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주요 당직자와 한덕수 총리, 박성재 장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홍철호 정무수석비서관, 김주현 민정수석비서관 등 대통령실 핵심 인사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군 주요 지휘관, 경찰 고위직 인사 등에게 내란 책임을 돌리면서 대통령은 특검 수사를 받지 않게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을 빼앗긴 점을 거론하며 "대통령의 하야, 탄핵 등 임기 중단은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주현 민정수석이 주도한 안가 모임에는 박성재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한정화 법률비서관이 동석했다. 박 전 장관 1심 재판부는 "안가 모임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와 내란 범죄 혐의 수사에 대한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라고 판시했다.
공교롭게도 특수본이 가장 먼저 수사한 사람은 김용현 전 장관이다. 출범 이틀 만인 12월 8일 김 전 장관을 긴급체포한 특수본은 10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윤석열을 '내란수괴'로 기재했다.
'계엄수사팀' 명단과 관련해 종합특검팀 담당 특검보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문자메시지로 두 차례 질문 내용을 보냈다. ▲명단 작성 시점이 언제인지 ▲검찰 특수본 명단과 일치하는지 ▲명단은 내란특검에서 넘겨받은 건지, 아니면 별도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건지 ▲혹시 별도의 전자기록물 압수수색을 통해 명단 작성 일시나 작성자 등을 확인했는지 ▲'절차 정리'와 '비상계엄하 재판관할 등'의 문서도 별도 압수수색으로 확보했는지 등에 관해 물어봤으나, 그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편, 종합특검은 심 전 총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도 기소했다. 지난 3월 법원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에 대해 즉시항고 포기를 지휘함으로써 특수본 검사들의 즉시항고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다.
이에 대해 심 전 총장은 "대검 부장회의, 특수본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정상적 협의 과정을 직권남용으로 오도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지귀연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의 구속 기간 산정이 위법적이었기에 즉시항고 포기의 법적 타당성이 부족한 데다, 수사팀의 거듭된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강행한 점에 비춰 직권남용 혐의를 피해 가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법조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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