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을 붙든 손
Canva_ai로 만든사진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이 두 동아줄은 그냥 육아 이론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캐슬린 맥긴 교수팀이 24개국 워킹맘과 자녀들을 분석한 결과, 일하는 엄마를 둔 딸들은 전업주부의 딸보다 평균 4% 높은 임금을 받았고 30% 이상이 관리자급으로 승진했다.
아들의 경우도 여성 동료에 대한 편견이 낮고, 결혼 후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나는 이 연구를 알고 나서, 내가 붙잡고 있던 믿음이 그냥 위안거리가 아니라 근거 있는 믿음이었다는 걸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렇게 애쓰는 게, 언젠가 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다."
이 한 문장이 워킹맘으로서의 자존감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 믿음 하나로 많은 날을 버텼다.
그런데 최근에, 이 두 동아줄이 딛고 서 있던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두 믿음이 성립하려면 공통적으로 하나가 보장돼야 한다. 아이가 자라서 실제로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회생활 선배'라는 유산도, 물려줄 후배가 사회에 들어와야 의미를 갖는 말이다. '경제적 투자'도, 학원비를 들이면 성적이 오르고,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곳에 취업을 한다는 마지막 단계가 열려 있어야 성립하는 계산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그 마지막 단계가 오히려 좁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18일 'BOK 이슈노트'에서 인공지능(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지난 4년간 청년일자리가 26만 8000개 줄고 50대 일자리는 17만 3000개 늘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리더스인덱스 조사에서도 500대 기업 신규채용 중 30세 이하 비중은 2년 새 56.4%에서 51.1%로 줄고, 50세 이상은 8.3%에서 11.2%로 늘었다. 부모 세대는 계속 일하고, 미래 세대는 일자리 밖으로 밀려나는 그림이다. 요즘 생긴 '전업자녀'-취업 대신 부모와 살며 집안일을 돕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청년-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전영수 한양대 교수, <전업자녀).
이 뉴스들 앞에서 나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두 동아줄이, 사실은 아이의 미래 경제활동이라는 같은 못에 걸려 있었다는 걸 깨달아서다. 그 못이 흔들리면, 두 줄이 다 함께 흔들린다.
이 줄은 한 번 잡고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 유치원에 보낼 때, 학교에 입학시킬 때, 입시전쟁 한복판에 아이를 밀어넣을 때,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사회에 나가야 할 그 순간까지, 고비마다 다시 붙잡아야 하는 줄이다. 그런데 그 줄의 힘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건, 사실 나 혼자의 몫이 아니다. 대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개인이 줄을 굳게 붙잡는다고 줄이 끊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사회가 그 대전제를 다시 세워줘야 하지 않을까.
버틴다고 끝이 아니기에
▲한국은행은 지난 8월 18일 'BOK 이슈노트'에서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지난 4년간 청년일자리가 26만 8000개 줄고 50대 일자리는 17만 3000개 늘었다고 밝혔다.
pixabay
미래의 청사진 없이 그저 오늘을 버티고, 그 버팀 끝에 또 다음 세대를 낳고 키우라는 말. 이건 마치 현실은 잊은 채로 일단 힘내라고 등 떠미는 말과 다르지 않다. 버티는 힘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어도, 그 힘이 닿는 곳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근 한 조사가 이 의문점을 일면 보여준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광복 100주년을 향한 대한민국의 지향 및 미래전략' 보고서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렇게 밝혔다. 저출생·고령화 대응 방향을 물었더니 3040세대의 과반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 확대 등 사회·경제체제를 바꾸는 방식"을, 6070세대의 상당수는 "출산 및 육아 지원 강화 등 출생률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당사자와 관찰자의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며, "출산장려 정책이 수십 년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인식 단절에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목소리는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셈이다. 동아줄을 다시 세워달라는 요청이, 정작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일하러 나간다. 그런데 내 아이가 미래에 일하러 나갈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어쩌면 워킹맘으로서의 기억과 기록은 내 세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내 손에 꽉 쥔 동아줄이 아이 손에 쥐어지지 않는 미래가 온다면? 그건 이미 내 손의 동아줄이 동아줄이 아님을 말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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