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0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첫째, 균형발전의 철학을 '영토적 연대'로 전환해야 한다. 성장의 이익 일부가 소멸 위험 지대의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로 수평 환류되도록 세제와 재정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메트로폴(Métropole) 제도나 독일의 지방재정조정제도(Finanzausgleich)처럼 세수와 편익을 공유하는 구조적 결단이 그것이다.
비록 이 제도들이 부유한 지역의 반발이나, 그래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땅끝 주변부의 소외 저항 같은 내재적 갈등을 유발할지라도, 야만적인 각자도생의 제로섬 경쟁을 공적인 법적 기준과 수리적 조율의 장 안으로 유인한다는 점에서 국가 신뢰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둘째, 결과의 기계적 균등이 아닌 절차적 정의를 강화해야 한다. 모든 지역에 똑같은 시설을 배치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대중은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결정일지라도 과정이 투명하고 중립적이면 기꺼이 결과에 순응한다는 갈등관리 연구자들의 통찰을 받아들여야 한다(김춘석 한국리서치 부문장). 이를 위해 국가사업의 기획 시점부터 평가 기준과 가중치를 완전히 공개하고, 사후에 과학적인 탈락 사유를 밝히는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근의 신규 원자력 발전소 영덕 입지가 그나마 해당 지역과 주변 지역의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설 입지의 절차적 투명성에 대한 신뢰와 추후 입지 선정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시민배심원 등 정교한 숙의민주주의 기제를 입체적으로 직조해 시설 입지 선정 전에 특정 지역이 왜 특정 시설을 보유해야 하는지 주민들 스스로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제시할 수 있게 한다면 최상의 해법이 될 것이다.
셋째, 국가의 책무를 자원의 산술적 배분자에서 '예방적 갈등관리자'와 '영토적 연대'의 촉진자로 근본적인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지역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 예산을 조금 더 얹어주고 입을 막는 임시방편의 행정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 대전환의 시작은 정책 입안의 최초 시점부터 공간적 비대칭성이 야기할 심리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구조적으로 추적하고 통제하는 과학적 예방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갈등 조기진단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지자체별 실업률이나 재정자립도 같은 정량적 경제 지표를 넘어 청년 유출 속도, 문화·의료 인프라 접근성 격차, 중앙정부 신뢰도 등 대중의 심리적 상태를 계량화하고 정기적으로 실사하는 게 그것이다.
사업을 강행하는 중앙 부처가 동시에 집단 민원의 심판까지 도맡는 모순적인 구조를 깨고, 국무총리실 직속 또는 독립적인 국가갈등조정기구를 상설화해 갈등 영향 평가와 제3자 조정, 그리고 숙의 절차 설계를 전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균형발전 통한 국민통합의 과제
오늘날의 지역 갈등은 더 이상 영호남이라는 고전적 지역주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축 사회에서 모든 지역이 서로를 비교하며 생존을 경쟁하는 '다차선 터널효과'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균형발전을 통해 이뤄야 할 국민통합의 과제는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경쟁이 적대와 배제로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것은 공정한 게임 규칙과 권력을 공유하는 협치 구조, 그리고 성장의 편익을 환류시키는 재정적 연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제도적 생태계를 구축할 때 가능하다.
허쉬먼과 로스차일드는 터널 속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단순히 옆 차선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차선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의 붕괴' 즉, 낙심과 불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한국의 지역 갈등도 마찬가지다.
균형발전을 통한 국민통합의 과제는 모든 차선을 동시에 똑같은 속도로 달리게 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단지 어느 차선도 영원히 정체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균형발전의 본질이며,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공간적 정의의 출발점이다.
▲은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EU융합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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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은재호는 국무총리 소속 한국행정연구원에 재직하며 한국갈등학회장과 다수 정부 부처의 갈등관리심의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EU융합전공 겸임교수로 일하며 연구 현장과 정책 현장을 이어주는 정책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를 민주주의 디자이너로 '참칭'하며,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국민통합 전략과 실행방안 연구>(2017), <혁신적 포용국가의 국가론적 지위와 이행전략>(공저, 2019), <공론화의 이론과 실제>(2022), <경세제민의 공공리더십>(공저, 2024), <여론 속의 여론>(공저, 2025)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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