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이글스의 버팀목, 한상훈안정된 수비와 허슬플레이가 한상훈의 특징이었다. 타석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출루하는 집중력도 좋았다. 하지만 타격센스와 파워를 갖추지 못했고, 팀이 승리하는 장면과 연관된 기억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한화 이글스
덜 지게 만드는 선수
체면이 좀 깎였을 뿐이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한화는 그 무렵부터 부랴부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흐름을 바꾸려 과감한 투자를 여러 차례 감행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어난 태풍이 한상훈 같은 '보이지 않는 살림꾼'에게 유리하긴 어려웠다. 2013년 일본에서 김태균이 복귀해 주장 완장을 가져갔고, 2014년에는 FA로 리그 최강의 2루수 정근우가 영입되며 유격수로 옮겨야 했다.
물론 유격수 자리 역시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그해 함께 유격수 한 자리를 나눠 맡았던 것은 공격력이 좀 더 낫고 나이도 어린 강경학이었고, 수비의 완성도와 노련함마저 그에 못지않은 베테랑 권용관마저 영입되자 백업요원 자리도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의 경쟁은 상무 팀에 머물던 하주석이 돌아올 때까지로 한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한상훈의 전망은 더욱 어두웠다.
2013년 시즌 후 4년간 총액 13억 원의 FA 계약을 맺은 것은, 어려웠던 시절 그가 팀에 해준 공헌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후보로도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에게 그런 계약이 보호막을 쳐줄 수는 없었다. 불과 2년 뒤, 그러니까 계약 기간을 2년이나 남긴 2015년 시즌 후, 그는 심지어 육성선수 전환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마저 외면 당한 채 방출되며 선수경력을 마쳐야 했다.
과감한 투자에 쓸려나간 암흑기의 버팀목
한상훈은 성실하고 좋은 선수였지만, 특별한 강점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다. 어쩌면 흔했다고도 할 수 있는 수비형 내야수였고, 오히려 백업요원으로 머물 때 가장 빛나는 선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가 팀의 중심에 놓였던 시기가 하필 그 팀 최악의 암흑기였기에, 그는 팬들에게 고마운 이름이긴 하지만 접어둔 페이지에 적혀 무심하게 흘러가버린 이름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는 암흑기의 팀이었기에 그만큼 부각될 수 있었고, 나름 거액의 FA 계약도 경험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잘 드러나고 기억되지는 못하는 방식으로, 많은 팬들이 애써 잊고 지워버린 시간동안 추가실점을 막아냈던 그가 아니었다면 이글스는 안타까움을 넘어 팬들의 비웃음을 사는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랬다면 결국 더 많은 팬들이 아픈 가슴을 참지 못하고 떠나야 했을 지도 모른다.
아픈 기억은 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애써 잊어야 하는 기억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그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일도 나름 의미가 있다. 이기는 경기도 보고 지는 경기도 보는 것이 팬이며, 이길 때의 기쁨은 지는 경기를 견뎌낸 기억만큼 더 커지기 때문이다. 뻗어나갈 때 오만해지지 않고 곤궁해질 때 무너지지 않는 의연함을 갖기 위해서도, 쓴 약을 참고 먹듯 그 아픈 기억을 곱씹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상훈은 이글스 팬들에게 그렇게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시간을 가리키는 책갈피와 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이견의 여지없이 암흑기를 완전히 벗어난 언젠가, 혹은 그 시간으로부터 충분히 멀찍이 떨어진 언젠가 더 이상 가슴 아프지 않게 그 시간을 곱씹어보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다시 들춰보게 될 페이지 속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이름이기도 하다.
▲이글스 한상훈어렵던 시절의 살림꾼.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덕에 그는 적지 않은 규모의 FA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웅크렸던 팀이 뻗어나가야 할 때 힘을 보태지 못했기에 FA계약기간 내에 방출된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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