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결정요인 무지개(Dahlgren & Whitehead, 2007)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과 함께 가장 흔히 인용되는 모형이다. 저자들은 30년 뒤[2], 그 의도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이 모형은 인구 건강의 주요 결정요인을 그린 것으로, 요인들 다수가 사회적이며 상호 연결된 층위를 이루고, 따라서 사회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 말했다. 하지만 이 모형은 여전히 건강의 단위로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속성, 그리고 개인을 둘러싼 조건을 나열한다는 점에서 사회를 외부 환경으로 납작하게 이해하는 듯 보인다.
Dahlgren & Whitehead
'건강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이 명제는 보건학이 목적 지향적 학문이라는 공동의 이해 위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학문이 대상(무엇을 다루는가)이나 방법(어떻게 아는가)으로 자기를 규정한다면, 보건학은 주로 목표(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가)를 중심으로 자기규정을 해 왔다. 앎 그 자체보다는 인구 집단의 건강이라는 현실의 '결과'를 향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과 인구 집단 건강을 증진하거나 약화시키는 사회적 요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도 깊고 너른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 조건들이 불평등한 위치에 선 집단 사이에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적 과정이자,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국제-국가-지역적 자원과 돈, 그리고 권력을 아우르는 거대한 개념이라는 데 대한 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접근이 분절적으로 다르게 분화하고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어느 쪽으로 이해하든, "건강에 나쁜 정책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변경한다"는 하나의 도그마를 내세우고 있고, 이 원칙 역시 보건학의 목적 지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두의 건강'(Health for all)은 그 목적 지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호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었던 할프단 말레르가 말했듯, 이 구호는 모든 질병을 근절하겠다는 불가능을 선언하기보다는, 세계의 주의를 건강 불평등에 집중시키고,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건강을 전 세계에 형평에 맞게 분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배제되고 불리한 곳에 선 사람들도 건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 선언이 사람들의 건강이 불평등하다는 현실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지식을 책임의 자리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연구하는 이들은 이 현실을 자주 박제된 한 장의 사진이나 사파리 풍경처럼 그저 대상화한다. 예를 들어, 격차나 기울기, 지수를 더 정교하게 보여주지만,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질문을 자주 깜빡한다. 그 질문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이 현실은 누구의 어떤 현실인가?", "이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우리'는 또 누구인가?", "그럼으로써 이러저러한 해결의 필요와 그 방법을 고하는 자격이 따로 있는 것인가?"
건강을 악화시키거나 증진시키는 일련의 '조건'으로 사회적 결정요인을 일별하는 작업은 가장 익숙한 접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을 '변수'나 '개념'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측정하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측정 가능하거나 이름 붙이기 용이한 것이 연구되고, 연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산출된 결과가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사회적으로 승인되면서 이 조건들이 현실과 멀어진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 단절이 연구자들이 현실을 숫자나 언어로 온전히 포착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아닐 것이다. 건강이 악화되거나 증진되는 과정이 '체계적이고 구조적'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엇이 측정 가능하고, 무엇이 어려운지, 조작화 과정에서 소거되는 조건은 무엇이고 또 누구의 조건이 쉽게 누락되는지 물어야 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장시간 노동, 연차 미사용, 사대보험 미가입을 건강의 악조건으로 정의하고, 제도적 변화를 촉구하지만, 이러한 악조건이 누군가에게는 생계 앞에 놓인 유일한 선택지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려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지식을 수단 삼는 이들이 유독 이 질문은 일부 활동가나 당사자의 몫으로 책임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8월 5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서울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무원들의 연차 사용 금지한 서울 성북승무사업소장과 부산승무사업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각각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 질문들이 누락될 때, 소득이 낮은 사람,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쉽게 대상화되고, 그들의 구조적 불리함은 재현된다. 한편에서 취약한 사람들은 설명되어야 하거나 관리되어야 할 문제로 낙인찍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서사에 주목하며 낭만화되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연구하는 이의 사회적 위치에서 기인한다. 타고난 계급이 뒷받침하든, 또는 스스로 획득했든 높은 교육 수준이 담보하는 전문가 지위는 적어도 보건의료계 안에서 곧 사회경제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이 안정된 자리에서, 사람들의 필요를 망각하기 쉽다. 숫자와 글, 찰나의 관찰로 포착한 삶의 단편은 내가 처한 '조건'이 아니라는 안심 위에 연구할 '대상' 또는 '바꿔야 할 조건'으로 상정할 뿐이다.
그 결과, 각종 전문 용어로 이들의 삶을 설명하면서, 마치 "보통 사람들이 가진 정도의 전문적 식견을 넘어서는 일인 듯" 논의가 이루어진다[3].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를 상상하지 못하거나, 내원한 환자 스스로 내리는 상태에 대한 진단을 무시하는 진료실에서부터, 자유라는 명목으로 행동과 지위를 개인의 선호나 선택으로 두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선택이자 결정이다. 실제 사회를 체현하는 몸으로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이들의 주체성과 힘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누락하는 결정 말이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아니라, 건강의 결정요인이면 충분하지 않냐는 말은 나쁘지만, 이 맥락에서 '관행'으로 지식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를 수식어로 위치시키는 것 역시 우리다. 이론은 측정 가능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다루어질 뿐, 세상을 설명하는 틀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게 되는 일이 대표적이다.
또다시,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아서 건강이 나쁘다는 명제가 대표적이다. '낮은 소득'이라는 지표가 '나쁜 건강'을 만드는 것처럼 확정적으로 사용되지만, 이 지표가 애초에 고민된 데에는 사람들이 처한 물질적 조건, 계급 위치, 권력관계를 포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연구들은 불평등한 분포의 원인보다 그 결과로써 소득 수준을 등분 위로 나누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교육행정 단위를 지표로 끌어들이면서 이 기술적 설명이 건강의 전부인 양 말한다. 이때 사회는 없고 개인의 형편만이 남는다.
보건학은 건강을 개별 신체의 생물학적 문제로 환원하는 생의학적 접근에 대한 비판을 자기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아 왔다. 사회와 분리된 건강만을 주제 삼거나, 사회적인 것을 개인화하는 데 열심인 지금의 보건학은 이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지울지 규정하는 우리의 위치와, 이를 가능토록 하는 안정된 삶, 그리고 그 안정이 사람들의 필요를 개인의 책임과 선택으로 오독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해 인지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듣지 않는지,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는지 성찰하는 것은 지식을 책임의 자리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참고문헌
[1] Buxbaum, J. D., Chernew, M. E., Fendrick, A. M., & Cutler, D. M. (2020). Contributions Of Public Health, Pharmaceuticals, And Other Medical Care To US Life Expectancy Changes, 1990-2015: Study examines the conditions most responsible for changing US life expectancy and how public health, pharmaceuticals, other medical care, and other factors may have contributed to the changes. <em>Health Affairs, <em>39(9), 1546-1556.
[2] Dahlgren, G., & Whitehead, M. (2021). The Dahlgren-Whitehead model of health determinants: 30 years on and still chasing rainbows. <em>Public health, <em>199, 20-24.
[3] 대런 맥가비. (2020). <가난 사파리: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김영선 역). 돌베개. (원서 출판 201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