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전형적인 임대주택. 지은지 150년이 지난 오래 된 건물이지만 최근 리모델링을 헤서 말끔하다. 시에서 정한 임대료인상보호지역에 속한다.
고정희
1948~1949년, 기본법을 만들던 입법자들 사이에서 독일의 경제 질서를 어떻게 구성할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보수 정당과 사회민주당의 생각이 달랐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들도 불과 몇 년 전 나치의 집권을 도운 거대 산업 자본가들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치게 커진 사적 경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도구를 헌법에 넣었다. 그리고 앞으로 자본주의로 갈지 공동 경제로 갈지는 시민들이 선거로 정하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지난 77년 동안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 악보에 적어만 두고 아무도 치지 않은 장단인 셈이다. 베를린 좌파당이 그 악보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제 그 장단을 처음으로 쳐 보려 한다.
당연히 논쟁은 뜨겁다. 주 정부가 세운 전문가위원회는 '사회화'가 헌법에 합치한다고 보았다. 반면 헌법학자들 중에는 '비례의 원칙'을 들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규 건설처럼 덜 과격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돈 문제는 더 복잡하다. 보상액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계산이 완전히 달라진다. 시민단체는 시장가의 40~60%인 80억~180억 유로(12조 3000억~27조 7000억 원)를, 노조 계열 한스뵈클러재단의 연구원들은 135억 유로(20조 8000억 원)를 제시한다. 만약 현 시장가로 보상해야 한다면 최대 360억 유로(55조 3000억 원)에 이른다. 이 숫자의 폭이 곧 논쟁의 폭이다.
반대하는 쪽의 논리도 분명하다. 어느 부동산 경제학자는 사회화로 새집이 한 채도 생기지 않으며 오히려 투자자들을 쫓아내 신규 건설을 더 어렵게 만들 거라고 말한다. 찬성 쪽의 경제학자는 신규 건설만으로 문제를 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답한다.
여기에 연방정부까지 끼어들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연립정부는 연방법으로 주 차원의 사회화를 아예 금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미 오직 주의 입법을 막기 위한 목적의 법률은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바이에른주는 베를린이 실행에 옮기면 헌법재판소로 가겠다고 벼른다. 결국 이 장단을 칠 수 있는지는 연방헌법재판관들이 정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시민들의 마음이다. 선거 당일 조사에서 베를린 시민 51%는 사회화에 반대했고 찬성은 37%에 그쳤다. 그런데도 그 공약을 내건 정당을 1위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뽑은 건 특정한 수단이라기보다 월세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당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베를린 지하철역 벽에 붙은 좌파당 홍보물에 '베를린을 다시 지불 가능한 도시로 만들자'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고정희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 땅을 차지하고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불편했다. 신이 그에게 그 땅을 주었나? 이 질문 자체는 사실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성경의 <레위기>에는 땅을 영원히 팔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그 위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도,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보수 정부였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는 경제민주화 조항도 있다. 우리 헌법에도 아직 제대로 쳐 보지 않은 장단이 적혀 있는 셈이다.
다만 한 가지는 구분해 두고 싶다. 땅과 집은 같지 않다. 땅은 태초부터 있었기에 아무도 만들어내지 않았으나 집은 누군가 짓고 가꾼 것이다. 땅이 공공의 것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모든 주택의 사회화가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유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땅과 집을 아끼게 된다는 반론도 가볍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이 법정에서 다투어진다는 사실이 반갑다. 거리가 아니라 법정에서, 헌법의 언어로.
저녁 무렵 마침내 북소리가 멈췄다. 뉴스를 보니 에티오피아의 여성 선수가 40킬로미터까지 세계 기록 페이스로 달리다가 마지막 2킬로미터에서 속도가 떨어져 기록을 68초 차이로 놓쳤다고 한다. 아쉽다. 그 마지막 2킬로미터에서 우리 사물놀이패가 기다렸다가 자진모리로 몰아쳤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결승선 직전에 휘모리로 장단을 바꿔 냅다 질렀다면? 68초쯤이야 거뜬하지 않았을까?
사회를 이끌 때 흔들리지 않는 리듬은 믿음을 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장단이 바뀌어야 한다. 77년 동안 적어만 두었던 장단을 베를린이 칠 수 있을지, 쳐도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마라톤 선수들은 모두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레이스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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