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경기를 보고 난 후 관전평을 공모합니다. 경기 상보가 아니라 경기를 보고 난 후 '어제 그 경기 봤어?'하고 수다를 떨듯하는 수필 형식의 글을 써주시면 됩니다. 한국팀 경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인상적인 경기를 본 후 자유롭게 글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계는 가히 ‘고등학생 전성시대’다. 2006도하아시아경기대회 ‘별중의 별’ 삼성어워드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박태환(17, 경기고)부터 허리통증과 짝짝이 스케이트화의 악조건을 견뎌내고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한 ‘피겨요정’ 김연아(16, 군포 수리고)까지.

네티즌들은 ‘박태환과 바다거북이가 수영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라며 자못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또 김연아는 문근영을 잇는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랐다.

도하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 내가 주목해서 본 선수들은 바로 고등학생 선수들. 얼굴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지만 내로라 하는 언니, 오빠들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꿰찬 출중한 실력과 10대 특유의 겁 없는 패기가 맘에 쏙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중계방송을 챙겨서 봤다.

@BRI@이번 대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선수들을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면 박태환, 진채린(18, 리라컴퓨터고, 태권도), 배유나(17, 한일전산여고, 배구), 이용대(18, 화순실고, 배드민턴), 이특영(17, 전남체고, 양궁), 유소연(16, 대원외고, 골프), 진소연(15, 위례정산고, 축구) 등 7명 정도.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명확하게 엇갈렸다. 박태환은 최윤희(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4년 만에 수영 3관왕에 올랐고, 유소연은 여자골프 개인, 단체전을 휩쓸며 ‘골프 강국’ 한국의 위상을 널리 떨쳤다. ‘제2의 박주봉’ 이라는 찬사를 듣는 이용대는 성에는 안 차겠지만 은1, 동 1개를 따냈다.

반면 패배의 아픔을 곱씹은 선수들도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양궁 국내 대표선발전을 1위로 통과해 대표로 선발된 이특영은, 개인전 예선에서 3위를 하고도 ‘한 국가에서 2명까지만 32강에 나갈 수 있다’는 규정에 발목이 잡혀 본선에선 활을 쏴보지도 못했다.

보는 사람들이야 ‘아무나 금메달 따라!’라고 하겠지만 어렵게 태극마크를 달고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를 잡은 선수들 맘이 어디 그렇겠나. 그래서 단체전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손으로 살짝 눈물을 훔쳐내던 이특영의 모습이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가장 아쉬운 선수는 태권도 여자 라이트급에 출전한 진채린. 태권도 경기 첫날 경기에 나선 진채린은 8강에서 탈락했다. 시합날 새벽 조마조마하게 진채린 선수의 경기결과를 기다렸던 난 8강 탈락 소식을 듣고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진채린 선수의 시원한 돌개차기를 보고 싶었는데…’

게다가 우려했던(?) 일까지 발생했다. 태권도 출전 선수(남 6, 여6체급) 중 진 선수만 노메달에 그친 것. 대회 전 “상대가 누구라도 절대 기죽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당찬 소녀가 혹여 낙심하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그리고 “경기 때마다 따라 다니면서 딸이 이기면 ‘으악’ 소리 지르면서 좋아한다”는 진 선수의 아빠가 상심하지나 않을까 맘이 아팠다.

하지만 고작 10대인걸.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라. 저 나이 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모든 정열과 노력을 한 곳에 쏟아 부은 사람? 저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거 자체가 대단한 거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좌절해야 하지 않을까.

박태환 같은 경우만 봐도 2년 전 아테네올림픽 땐 부정출발로 실격하는 바람에 물에 발도 적셔보지 못하고 짐을 쌌다. 이번 대회 태권도 웰터급 금메달리스트 황경선(20)도 고교생 시절 출전한 아테네 올림픽 땐 긴장한 나머지 첫 판에서 져서 패자전을 거쳐 가까스로 동메달을 땄다.

그러나 ‘아테네의 한’은 오히려 약이 됐고, 그후 세계선수권, 아시아경기대회를 잇달아 제패했다. 황경선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 금메달을 땄다면 지금쯤 은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대회 양궁 2관왕 임동현(20)도 비슷한 케이스. 아테네올림픽 개인전에서 노메달에 머문 '막내' 임동현은 이번 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남자양궁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이미 정상에 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어린 유망주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욱 신난다. 앞으로 2년 후 북경올림픽에서 이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 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흐뭇해진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땄건, 못 땄건 상관없다. 이 선수들은 앞으로 10년간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경기 보면서 새벽잠 설치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눈물, 콧물 다 쏟게 만들 선수들이니까.

2년 후가 더 기다려지는 대표팀 막내들. 얘들아, 북경에서 대형사고 한 번 쳐주면 안 되겠니?

덧붙이는 글 | 이 경기, 난 이렇게 봤다 응모

2006-12-20 15:29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경기, 난 이렇게 봤다 응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