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2 14:04최종 업데이트 24.05.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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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 재의요구권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채상병 특검법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았다. 정식 명칭이 '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인 이 특검법에 대해 21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 의결이 있었고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뒤따랐다.

채상병 특검법은 작년 집중호우 때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안타깝게 희생된 채 상병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런 법을 비정하게 거부한 것은 윤 정권이 이를 채 상병이 아닌 윤 대통령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증표다. 정략적 발상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채 상병과 유족의 관점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 사유의 하나로 삼권분립 침해를 내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21일 정진석 비서실장은 "이번 특검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삼권분립은 우리 헌법의 골간을 이루는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삼권분립 원칙하에서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속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라며 "특검제도는 그 중대한 예외로서 행정부 수반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는 게 비서실장의 발언이다. 행정부의 수사와 공소제기를 신뢰하기 힘든 예외적인 상황에서 작동하는 특검제도의 취지를 무시하는 억지 주장이다.

윤 정권은 삼권분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해 왔다. 출범 2개월 만인 2022년 7월 26일에는 강제징용 문제에 관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보내 재판 중인 사건에 개입했다. 또 식민지배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수시로 내보냄으로써 강제징용과 위안부 재판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 사법부에서 진행되는 강제징용 재판 문제를 놓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과도 협상했다. 한국 행정부가 한국 사법부를 압박하는 형국을 뛰어넘어 한일 행정부가 한국 사법부를 압박하는 형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외국까지 끌어들여 사법부를 압박하는 이런 형국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례적이다.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측면에서 윤 정권은 가히 기념비적이다. 이런 윤 정권이 삼권분립 침해를 이유로 하필이면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할 면목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합리적 사유 없이 법률안 거부권을 남용하는 것 역시 입법권 침해이므로, 삼권분립을 내세운 윤 정권의 거부권 행사 역시 삼권분립을 침해하는 또 다른 방식에 불과하다.

삼권분립을 구실로 한 이승만의 거부권 행사
 

1949년 9월 20일 자 <경향신문> 기사 "제1차본회의 작일 개막 - 법원조직법안 재의코 반송"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정권 자신이 삼권분립을 크게 침해하고도 삼권분립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은 윤 정권의 3대 모델(이승만·박정희·전두환)인 이승만 때도 있었다. 일례로,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7월 30일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원조직법이 통과되자, 이승만 정권은 법원행정처장이 국무회의에 출석해 법원 행정에 관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한 제22조가 위헌이라며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그해 8월 13일에 이승만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사유를 권승렬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근거로 보도한 9월 20일 자 <경향신문>은 권승렬 장관이 제22조를 두고 "삼권분제(分制)의 정신으로나 국가기밀 보지(保持)상의 견지로서도 불가하다고 지적"한 사실을 보도했다.

삼권분립을 구실로 하는 이승만의 거부권 행사 중에 정말로 면목 없는 것이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2월 16일에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해 7월 4일,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국회 기반이 취약해 국회에 의한 대통령 선거로는 연임을 보장하기 힘들었던 이승만이 전쟁 중에 직선제 개헌을 강행한 발췌개헌이 이날 있었다.

이승만이 직선제 개헌을 국회에 제안한 것은 전년도인 1951년 11월 30일이다. 이 개헌안은 두 달 뒤인 1952년 1월 18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뒤이어 4월 17일 내각책임제를 담은 별도의 개헌안이 반대 진영에서 제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자신이 제출한 개헌안 일부와 반대편이 제출한 개헌안 일부를 각각 발췌한 직선제 개헌안을 5월 14일 제출했다. 국회가 부결시킨 직선제 개헌안을 내용 일부를 약간 수정해 다시 제출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삼권분립 침해이지만, 그 뒤의 후속 행동은 삼권분립 침해의 압권이라 할 만했다.

이승만이 개헌안을 다시 제출한 다음 날인 5월 15일부터 국회를 압박하는 전방위적 공세가 펼쳐졌다. 백골단 같은 폭력조직들이 국회 해산 등을 촉구하는 관제 시위에 동원됐고, 신익희 국회의장의 자택도 이런 시위대에 포위됐다. 5월 26일에는 국회의원 50여 명이 탑승한 통근버스가 헌병대에 강제 연행됐다. 국회의원 10명이 빨갱이 혐의로 붙들리는 일도 일어났다.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뒤이어 8월 5일 이승만이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당선됐다. 이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으니, 그의 연임은 삼권분립 침해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가 그해 12월 16일 다른 사유도 아닌 삼권분립 침해를 이유로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임기 2년 만에 10건의 법률 거부한 윤 대통령
 

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이 놓여있다. ⓒ 연합뉴스

 
그해 11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장을 상임위 내에서 호선하던 방식을 본회의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조항과 더불어 국회 예비금을 국회의장이 관리하도록 하는 조항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이승만 정권이 예비금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거부 사유는 삼권분립 저촉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공식적인 재의요구서에 예비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거부 사유 중 하나는 그것이었다. 12월 6일 자 <조선일보>는 "정부에서는 국회 예비비를 의장이 관리함은 헌법 및 재정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말로 이승만 정권의 실질적 거부 사유를 보도했다.

법제처가 발간한 2008년 3월호 <법제>에 실린 김승열 법제처 법제심의관의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에 관한 고찰'은 이승만 정부가 "예비금의 관리는 원래 순전한 재무행정이므로 정부의 권한에 속하여야 할 것은 당연"하다며 "그 관리를 국회의장이 하도록 하는 것은 3권 분립의 근본 정신에 위반"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설명한다.

입법부라고 해서 오로지 입법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부 내의 사무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인사나 재정 같은 행정사무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개시하기 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한 일이 있듯이, 국회는 사법 기능도 수행한다.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는 현행 헌법 제64조 제2항은 국회가 예외적이나마 사법적 권한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법률은 의원이 아닌 행정부 공무원들의 손에서 실질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심판제도의 존재로도 증명되듯이 행정부는 사법 기능도 수행한다. 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법원도 사법부에 관한 법률의 제·개정에 개입하고, 법원 직원과 법관에 대한 인사행정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삼권분립 원리를 내세워 '국회는 오로지 입법만 하고 법원은 오로지 재판만 해야 한다'며 입법부와 사법부를 제약하는 것은 행정부 독재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다른 사유도 아니고 삼권분립을 이유로 하는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억지 거부가 되기 쉽다.

국회 예비비를 국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1952년 당시 국회의원들의 판단 역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예산 집행은 행정부 소관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회 예산집행의 세부적인 데까지 개입하려 했다. 그런 논리를 앞세워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했던 것이다.

요즘 많이 보도되고 있듯이 이승만은 12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45건의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임기 2년이 되는 시점에서 벌써 10건의 법률을 거부했다. 행여라도 그에게 12년 임기가 주어질 경우, 이 속도로 가면 60건 정도가 된다.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희생된 채 상병과 관련된 특검법까지 거부한 데서도 증명되듯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인정사정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비정하고 가혹하게 행사한다면, 임기 12년이 아니라 임기 5년 내에도 얼마든지 이승만의 '거부왕' 타이틀을 빼앗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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