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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이른 아침에 마을 방송이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뿌리고 있어서 그렇잖아도 예정대로 마을 일을 할 것인지 확인을 해야겠다 싶어 이장네 집으로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아아. 알려 드리겠는디유. 오늘 예정대로 동네 일 할팅 게 다 나와유 이? 아침 밥 먹고 각자 맡은 구역으로 나와유 이? 낼도 오고 모래도 오고 비가 온대니께 하는 말이유 잉."

우리 이장님은 '다시 한번 알려 드린다'는 말을 덧붙여서 서너 번이나 방송을 했다. 비옷을 꺼내 입고 내가 맡은 구역으로 가서 동네일을 하면서 정말 놀랐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동네에 버리고 간 도시인들의 쓰레기들이 정도를 넘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쓰레기 버리기

먼저 개울로 내려가서 쓰레기를 주웠다. 깔개로 쓴 스티로폼이 여기저기 있었다. 돌 틈새에는 비닐도 끼어 있었고 놓치고 간 병 뚜껑, 유아용 수영튜브, 터진 풍선도 있었다. 담배꽁초는 기본이고 음식그릇을 설거지를 했는지 음식 찌꺼기도 버려진 게 보였다. 요즘도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앞 정자 아래서 면사무소에서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아랫마을 노인 한분이 종일 나와서 쓰레기 버리지 말 것과 식수원이므로 물에 들어가지 말 것 그리고 고성방가를 삼가라고 이 계곡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데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한결 같이 차창만 내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쪽만 바라보고 고개만 끄덕인다. 고개만 끄덕이는 게 아니라 등받이에 상체를 더 기대고 턱만 치켜드는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놀러 온 사람들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게 너무 까다롭게 하지 마시라는 말 한마디를 그 노인 분에게 하기 위해 나는 장계 읍내에 나가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리기도 했었다.

다음은 예취기를 짊어지고 우리 집에서 아랫집까지 500미터 남짓 되는 길을 따라 양쪽으로 무성한 풀을 베었다. 개망초가 애들 키만큼 자라있었고 고마리나 쑥대도 장맛비에 얼마나 빨리 자랐는지 양쪽에서 길을 많이 잠식 해 있었다. 바로 아랫집에 할머니 한 분이 사시지만 연로하셔서 동네일에는 못 나오신다.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 풀 섶에 버려진 물건이 보였다. 버린 지 하루 이틀 되었을까. 소주병 하나, 맥주병 두 개. 은박지 접시 서너 개와 먹다 남은 통닭 튀김이 들어 있었다.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종이컵도 여럿 있었다. 버려진 곳은 자리 깔고 노는 장소가 아니고 약간 내리막길이라 돌아가는 길에 차창을 열고 밖으로 내던진 것으로 보였다. 흘러나온 쓰레기들을 주워 담아 길가에 내 놓았다.

예취기 작업을 근 한 시간여 하는 동안 아랫집 할머니 댁에 피서 온 20여 명이나 되는 아들딸, 손자, 사위, 며느리들이 마당에 쳐 놓은 천막 아래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 뭘 끓여내고 밥상을 차리느라 왁자지껄하고 있었다.

마을길에서 누르는 경적

그 집 앞 풀을 베는데 애들이 먹고 버린 것으로 보이는 초콜릿 겉포장과 아이스크림 비닐이 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꽁초는 물론 빈 담배갑도 버려져 있었고 플라스틱 노끈, 드링크류 빈병 등도 있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지 커피 흔적이 있는 일회용 컵이 여러 개 나왔다.

나는 예취기 엔진을 끄고 집에 가서 쓰레기봉투를 가져왔다. 다시 구부려 일을 하는데 자동차 경적소리가 "빽" 하고 울려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시커멓게 선팅을 한 승용차가 내 엉덩이에 앞 범퍼를 대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서 음식을 먹다 뭔가가 부족해 급히 읍내로 뭘 사러 가는 모양이다.

속옷 차림에 가까운 얇은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운전을 하고 그 옆에 남자가 타고 있었다. 비는 오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여서 창문을 꼭 닫은 채 정면만 응시하고 내가 비키기만 침묵으로 종용하는 듯이 보였다.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기는 좀 미안하고 그렇다고 인사라도 하기에는 어색해서 그러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순간 나는 내 아이가 자라서 운전을 할 때면 꼭 이런 상황에서는 차에서 내려 인사부터 건네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 차를 운전하도록 일러주리라 마음먹었다.

고향집이라고 온 도시 사람들은 낮에는 동네 길 가운데 둘러서서 술이 취한 채 큰 목소리로 쌍 소리까지 해 가며 어찌나 떠드는지 옆 사람과 대화가 안 될 정도였다. 밤에는 더 했다. 아이들이 매일 밤 장난감 폭죽놀이를 하는데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어젯밤에는 잠을 자는데 갑자기 굉음이 나면서 불꽃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이었다.

야밤의 폭죽놀이

시계를 봤더니 밤 10시 반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속 정적만 있는 시골마을에 갑자기 폭죽을 쏘아대니 어머니까지 놀라서 불났다고 야단이었다. 앞마당에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와르르 웃는 어른들의 술판은 끝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내 아이가 장성하여 늙은 내 집에 여름휴가 때나 명절에 다니러 오면 나에게 맛있는 것 하나 더 먹이려 애쓰기보다는 옆집에 사는 젊은이를 찾아 뵙고 음식 한 접시 나누게 하리라.

마을길 청소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 하고 돌아 갈 수 있도록 당부하리라.

자식들이야 며칠 유원지처럼 고향집을 다녀가지만 늙은 부모는 일 년 내내 동네사람들 틈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며칠 흥청거리다 가는 것보다는 동네에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큰 효도가 아니겠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도시인들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며 소비와 유흥에서 벗어나는 출로를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효도하러 시골집에 오는 게 아닐 터이니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시골에 와서는 자연을 느끼고 가슴에 담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태그:#도시인, #쓰레기, #휴가, #고성방가,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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