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엄마, 우리 여행 가자> 표지
 <엄마, 우리 여행 가자> 표지
ⓒ 앨리스

관련사진보기

한창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투로 "재밌겠네"라고 하셨다. 그 말에 무심코 같이 보러 가자고 말했는데 그때 엄마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 잊혀 지지 않는다. 아들과 영화 하나 보러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걸까? 극장을 나오면서 다짐했었다.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고.

여행 작가 박상준의 <엄마, 우리 여행 가자>를 읽다보니 그때의 다짐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다짐은 다짐으로 끝난 것 같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극장에 간 건 단 한 번 뿐이었다. 왜 그랬던 걸까? 엄마가 "바쁘다"고 하셔서? "귀찮다"고 하셔서? "피곤하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믿었다. '엄마는 이해해 주실 테니까 나중에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꾸 미루고 미뤘던 것 같다. 엄마도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일부러 피곤하다거나 바쁘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아닐까?

여행이라는 것은 어떨까? 이 세상의 수많은 아들 중 한명으로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꽤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 또한 미루고 있다. 함께 극장가는 것도 좋아하시는 분이니 여행을 가자고 하면 더 좋아하시고 행복해하실 것을 알면서도 몸은 그렇게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 세상의 또 다른 아들들, 그리고 딸들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그저 생각으로만 남겨두고 있지 않을까?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책을 읽을 때는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엄마는 이해해 줄 테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인가. <엄마, 우리 여행 가자>는 제목부터 '뜨금'하게 만든다. 머릿속으로 내내 생각했지만 막상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작가 박상준은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떤 사건으로 갑자기 효도를 하겠다는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박상준도 이 세상의 수많은 아들, 딸들과 비슷했다. 명색이 여행 작가임에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눈물을 보고 용기를 내게 된다. 엄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잘 하는 일이 '여행'이니 엄마를 그 길에 초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장소를 찾아 여행한 것은 아니다. "엄마, 집 앞이야, 나와요"라는 말로 시작될 수 있는 여행의 장소는 고향집 근처와 이웃 동네다.

그게 무슨 여행인가 싶어 타박이라도 하고 싶지만 모자의 걸음걸이를 뒤쫓아보며 타박은커녕 가슴이 뜨거워져 숨을 골라야 한다. 집 근처를 산책하는 여행일지라도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기껏 엄마와 여행하겠다고 불러낸 아들이 언제나 그렇듯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엄마는 엄마답게 아들을 챙겨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운전 못하는 아들 대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한다. 책 속의 '엄마'가 유별나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다. 책 속의 엄마는 세상 모든 '엄마'와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리라. 엄마들은 아들과 함께 집 밖으로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그렇게 즐거워하고 있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모자의 여행은 엄마만 그렇게 즐거워하는 일일까? <엄마, 우리 여행 가자>를 보건데 그 여행은 '아들'에게도 소중해 보인다. 엄마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기에, 엄마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소녀 같은 그리고 처녀 같은 모습들을 만날 수 있기에 그 여행은 그렇게도 소중하게 남겨지는 것이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에서 말하는 것들은 요즘 들어 더욱 화려해지는 여행책들에 비하면 대단히 평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 담긴 길들 하나하나가 더 곱고 아름다워 보이는 건 왜인가. 용기를 내 엄마와 함께 걸은 아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겼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도 이 길에 동참하도록 용기를 주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뜨끔'했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거나 기어코 '따끔'거리게 만든 <엄마, 우리 여행 가자>, 누구나 알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 아들,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서다

박상준 지음, 앨리스(2010)


#엄마#여행#박상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