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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초년생 때 읽었던 <철학 에세이>는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특징을 말해 주었다. 아마 이 명제를 가장 실감나게 설명해 주는 책이 바로 <문화의 수수께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저자 마빈 해리스 자신이 문화유물론적, 문화생태학적 입장에서 문화인류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이 책도 그러한 저자의 입장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도 힌두교도들의 암소 숭배, 유대인들의 돼지 혐오, 원시부족의 남성우월주의, 포트래취(토인들의 선물 나누기), 유령화물신화, 메시아 신앙, 마녀사냥 등의 문화들이 각각 독립성을 띠면서도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밝혀주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뉴기니아의 마당부족에는 "유령화물 신화"에 대한 믿음이 전해 내려온다. 유령화물에 대한 신앙이란 자신들의 조상들이 현대 산업사회의 생산물들인 신발, 통조림, 총, 자동차, 라디오, 컴퓨터 등등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말한다.

이것을 단순히 미신이라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1970년 인터뷰한 어느 추장의 말을 한번 들어 볼 일이다.
"사람들은 거의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유령화물을 기다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그렇다. 그들 부족들이 유령화물 신화를 갖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들을 단순히 어리석다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순진한 마당부족을 속이고 괴롭힌 것은 제국주의자들이었다. 유럽인들 중 맨 먼저 그들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 19세기 러시아의 탐험가 맥클레이를 들 수 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원주민들에게 귀중품들을 나눠주며 원주민들이 믿는 대로 자신들이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원주민들의 조상인 것처럼 자기들의 이미지를 조작했다.

이때부터 독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식민지 생활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마당부족들은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는 선교사들의 말과 제국주의자들의 약속이 계산된 기만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유령화물" 신화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과 미국인들이 향유하는 부와, 원주민들의 노동력과의 관련성을 해명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설명 방식이라고 본다.

즉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착취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부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며, 원주민들은 산업국가의 생산물들을 살 돈이 현재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산물들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유대인들의 전투적 메시아 신앙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서 유대인들만큼 무모하게 제국에 저항한 민족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관대한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로마에 항거했다.

처음에는 제롯당 같은 게릴라로, 그 다음 기회만 주어지면 폭동과 반란을 일으켜 전면적인 항거를 일삼는다. A.D.70년 티투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들의 성전이 불에 탔으며 100만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살아남은 자들은 맛사다 요새에서 모조리 죽기까지 저항하였다.

그 뿐이 아니다. A.D. 132년에는 바르 코흐바가 20만 군대를 조직하여 유대 독립국가를 세웠는데, 이들은 로마군과 싸워 1개 로마군단을 완전히 궤멸시킨 뒤에야 겨우 진압되었다. 이들이 이토록 지독히 저항했던 것은 다윗 왕국의 회복이라는 메시아 신앙에 근거한 것이었다.

요컨대 마당부족의 화물숭배와 마찬가지로 원한에 찬 유대인들의 메시아 숭배가 생긴 것도 위급한 식민지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혁명이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압제자들을 타도하고 강적과 투쟁하기 위해 필사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마당부족의 화물숭배와 유대인들의 메시아 신앙은 같은 이야기를 하나는 과격한 정면 대응으로, 하나는 비교적 유약한 방식으로 에둘러서 대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이 책은 문화인류학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고전이 되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문화현상들이 사실상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마저 안겨준다. 그것은 굳게 잠겼던 비밀의 자물통이 스르르 풀리는 기묘한 경험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적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문화들의 진기한 면들을 소개해주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힌두교도들의 암소 숭배나 원시 부족들의 문화들을 통하여 서구 기독교 문명 자체를 뿌리 채 뒤흔들어 놓으려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 문화의 생활양식 자체도 과학적 객관성에 입각해 있다기 보다는 많은 경우 "마녀사냥의 복귀"와 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우리 삶을 왜곡시키는 많은 문화적 실체를 정신을 차리고 통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병진 기자는 현재 여수에서 솔샘교회(http://solsam.wo.to) 담임 교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교회 내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설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개정판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한길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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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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