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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털없는 원숭이>는, 인간이라는 종도 지구상에서 멸종해간 여타의 수많은 생물들처럼 순식간 없어질지 모른다는 걸 말해주었다. 6천5백만 년 전 지구를 주름잡던 공룡과 익룡이 거대한 뼈와 발자국들을 남긴 채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시대가 계속될 것처럼 기고만장에다 안하무인격인 인간들의 작금의 행태는 참으로 꼴사납고 어리석지 않는가.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은 인간의 탐험, 발견, 개발, 파괴, 폐허로 얼룩진 자연에 대한 미안함과 가슴아픈 반성을 담은 매우 뜻깊은 동화다. 삽화가에서 출발했던 작가는 매 장마다 멋진 그림들을 함께 넣어 독자에게 읽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

지리학자인 주인공 루트모어는, 어느 날 부둣가를 산책하다가 이상한 그림이 조각된 아주 커다란 치아를 비싼 값에 사들인다. 그런데 이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말았다. 루트모어는 호기심에 이끌려 이 커다란 이(齒牙)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이 치아가 전설 속에서나 살았다고 전해질 법한 흑해부근 거인족 나라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된다.

그는 즉각 짐을 꾸려서 험난한 탐험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거인족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처음 그가 다다른 곳은 거인족들의 공동묘지였는데, 사진기가 없던 당시라 그는 자신이 본 거인들의 뼈들을 열심히 그림으로 그렸다. 거의 탈진상태여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실신하고 말았을 때에야, 그는 드디어 온 몸이 문신투성이인 거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거인들이 사라졌고 유일하게 생존한 거인의 전부가 겨우 아홉 명뿐이었다.

거인들은 줄곧 루트모어를 아이같이 잘 돌봐 주었다. 원기를 회복한 루트모어는 거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전에 없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끝없는 밤을 지새며 우리가 나누었던 진실한 교류는....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밤새도록 별들을 차례대로 불러대는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뒤섞이고는 했습니다. 그것은 유려하면서도 복잡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가냘픈 변주, 순수한 떨림, 맑고 투명한 비약으로 장식된 낮고 심오한 음조로 짜여 있었지요. 무심한 사람의 귀에나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내 영혼을 오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루트모어는 거인들과 작별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진기한 거인족에 관한 책을 무려 9권이나 써서 세상에 발표하였다. 반응은 "협잡꾼!"과 "세기의 발견자!"라는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평가로 나타났다. "세상 소인배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진리의 의무요 학문의 도의"라고 판단한 루트모어는, 많은 비난과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게 만들었다. 순회강연을 할 때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두 번째 원정단을 꾸릴 만큼의 기금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정단을 이끌고 거인족이 사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거인들이 "작살을 맞은 고래의 몸뚱어리처럼" 터무니없는 시체로 변한 다음이었다. 그가 써낸 책이 "포병의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을 살육하고 만 것"이다. 거인들의 시체 주변에 몰려든 사이비 학자, 도적, 온갖 종류의 협잡꾼들 앞에서 루트모어는 아연실색한다. 그리고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밑바닥으로부터 한 익숙한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하는 걸 그는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이후, 루트모어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자신의 집과 재산을 모두 처분한 다음 고기잡이 배의 선원이 되어 은둔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에 나오는 거인은 자연일 수도, 인간 자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신비를 끊임없이 들추고 캐는 인간들이 그 결과 자연을 망치고, 마침내는 스스로 파멸하는 길을 걷고 있음을 경고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감춰야할 것이 있다는 것,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너무 깝죽대지 말자는 것, 나아가 자연과 교감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이 이 책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조용한 메시지일 것이다.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디자인하우스(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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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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