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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6월, 서울의 초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민들의 함성. '호헌철폐·독재타도' 6년 동안의 군사독재에 억눌렸던 분노와 울분이 넥타이를 맨 회사원과, 남대문 시장상인들의 입에서 한 목소리로 터져 나올 때, 우리는 "승리"라는 두 글자를 가슴 벅차게 새겨 넣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15년 전 시민들의 물결로 가득 찼던 서울 시내를 지금은 "Be The Reds"라는 구호를 가슴에 새긴 붉은 악마들이 메우고 있다.

두 무리의 군중들. 15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애국가를 또 한쪽은 '대∼한민국'을 소리높이 외치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나는 지금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젊은이들을 향해 너희들은 모를 거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15년 전 넥타이를 맨 채 회사 간부의 눈치를 보며, 사무실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와야 했던 그 시절은 다만 그 시절일 뿐이다. 최루탄 가루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심장이 터져라 아스팔트 위를 쫓고 쫓기며 뛰어다녔던 그 때의 절실함은 단지 15년 전으로 묻혀버린 그 시절의 역사일 뿐이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옷의 군중들에겐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을 소리쳐 외쳐야만 하는 절실함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이 20대인만큼 단지 젊음의 분출이라고 해도 좋고, 일종의 광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들의 구호가 다름아닌 '대∼한민국'인 만큼 15년 전의 구태의연한 표현을 빌어 '애국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지 모른다. 시대는 다르지만, 적어도 연령은 같다는 점에서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공통점을 찾자면 말이다.

그러나 15년 전이 억눌렸던 울분의 직접적인 과시이자 표출이었다면, 15년이 흐른 지금은 고차원적인 담론과 도발이라는 점에서 훨씬 진보적이다. "To Be Reds"! 지금의 붉은 악마는 적어도 수 십 년 간, 이 땅에서는 금기로 작용해 온 레드 콤플렉스를 월드컵이라는 새로운 문화 컨셉으로 일거에 뒤집는데 성공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들은 불과 2년 전 게릴라식 문화 컨셉을 통해 '바꿔' 열풍을 일으켰고, 또 불과 한달 전까지는 '노풍'이라는 새로운 정치현상까지 불러 온 장본인이 아니던가.

15년 전의 6월 주역들이 과도하게 무겁고 또 가라앉은 세대였다면, 적어도 지금의 6월 주역들은 가볍고 경쾌하다. 15년 전이 정치투쟁이라는 무겁고 경직된 주제에 매몰된 세대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문화컨셉을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창의력을 지닌 세대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이 더욱 희망적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게 다 희망적일까?

'축구는 시원해서 좋은데, 정치는 답답해서 싫다'는 그들의 정치혐오조차 지금 세대의 논리와 취향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을까? 그들이 지금 열광하고 있는 월드컵 축구, 한국팀의 16강 아니 8강 진출 이후 그들의 희망은 또 뭐가 될 수 있을까?

15년 전, 6월의 거리를 가득 메웠던 군중들이 불과 몇 달만에 목표점을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져야했던 것처럼, 지금의 붉은 악마 역시 다시 흔들리는 20-30대 개인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까?

그렇게 역사가 퇴보하고 정체한다면, 지금 전국을 가득 메운 붉은 청년들의 무리는 또 다시 1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먼 훗날, 후배들에게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필이면 월드컵의 한 가운데에 지방선거가 끼어있는 미묘한 순간. "재미가 있어 축구를 택하고, 그 안에서 짜릿한 감동을 느끼는" 붉은 악마들에게 적어도 6월 13일이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고, 투표도 곧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애국이라고 강조한다는 게, 15년 전의 무겁고도 가라앉았던 구세대의 경직성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 어쩐지 미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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