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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학교 교장 선생님은 2003학년도에 6학년 담임을 지망한 교사가 한 명도 없다며 담임 배정을 걱정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6학년 생활지도가 어렵고, 수업 시간수가 많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내 청소 구역을 많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저학년이야 제 교실이나 담당하지만 고학년은 학교 전체를 '특별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청소한다. 운동장에 스탠드가 넓은 학교는 정말 고역이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비로 쓸어야 한다. 낙엽이 많거나 날씨가 추우면 아이들이 정말 가엽다.

나는 아이들이 왜 자신들이 쓰지도 않는 교무실, 교장실, 서무실까지 청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교무실은 교무실 보조원이 맡고, 서무실도 서무실 직원이 맡으면 된다. 교장실은 학교에서 가장 한가한 교장이 직접 하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서무실 직원이 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등학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은 봉사활동이라는 미명으로 방학 중에도 하루나 이틀 청소하러 학교에 나와야 한다. 화분에 물도 주고 교무실·복도·현관 청소도 한다. 교사들도 나오지 않는 방학에 아이들을 불러 청소를 시키는 일이 옳은가? 이런 것을 '교육'이나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도 될까? 한 겨울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청소'를 이유로 아이들을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죄짓는 일이 아닐까?

'봉사활동 일지' 따위로 출석체크도 하지만 결과처리는 거의 없다. 개학 후 담임교사에게 통보되기도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학교 청소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오래 전에 내가 일하던 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교장이 순시 중 교사(校舍) 현관이 더러운 것을 발견하고 담당학급에 연락했다. 아침에 청소를 했으나 운동장이 질어 또 흙이 묻은 것이었다. 수업 중이던 해당학급 담임은 아이들 몇 명을 보내 청소하도록 했다.

현장을 지키던 교장은 사람을 시켜 담임교사를 불렀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중단하고 내려오는 여교사에게 교장이 삿대질을 하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고 여교사는 쓰러졌다. 수업 팽개치고 내려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들 앞에서 교장에게 야단맞고 의식을 잃은 것이다. 그 선생님은 병원치료 후에도 후유증으로 상당 기간 출근을 못했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 날 내 차로 병원에 데려갔고, 그 선생님도 아직 현직에 있다. 교장 자격증 제도를 폄훼하자는 것 아니다. 이 사건은 수뢰 혐의로 정직까지 당했던, 진작 퇴임한 그 교장 개인의 인격장애에서 오는 극단적 사례일 뿐이고 대부분의 교장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초·중등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이 청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참으로 크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저학년을 담임하면 학부모의 도움을 사양하고 혼자 청소한다.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한다. 그런데 저녁 잠자리에 들 때 가끔 감기 기운도 없이 목이 따끔거려 구강소독제로 목구멍을 씻어내고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교실이나 복도를 빗자루로 쓴 날은 꼭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교실은 기름 대걸레로, 복도는 물 대걸레로 청소해야 하는데 빗자루로 꾀를 부린 대가로 먼지를 마셔 목이 아픈 거였다.

학교운동장이 흙이니 계단이나 복도에 흙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도시는 대부분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였지만 학교운동장은 맨땅이라서 교사엔 다른 건물에 비해 흙먼지가 많다. 더구나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나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두는 편인데, 그 때문에 아이들이 먼지를 더 많이 마시는 것 아닌가 염려할 정도이다.

아이들 짐을 덜기 위해 신주머니를 없앤 학교의 실내 먼지 오염은 더욱 심각하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돌아다니면 복도 이 끝에서 저 끝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이고 안경에 먼지가 앉아 뿌예진다. 아이들이 먼지 마시며 이 걸 쓸어내는 생각을 하면 가슴 아프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 혹은 모르는 체하며 '청소도 교육'이라고 말하지 말자.

이렇게 먹는 먼지가 아이들이 감기 걸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학교 청소로 인한 어린이 감기환자의 의료비를 모으면 청소용역비로 충분하지 않을까?

80년대였을 것이다. 학교 유리창을 닦던 교사가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유리창은 아이들은 물론 교사도 학부모도 닦지 말라고 했고, 얼마 동안 예산이 배정되어 용역회사에 맡겼다. 그 즈음 내가 근무하던 서울의 ㄱ초등학교에서 유리창을 닦던 용역 회사직원이 추락사했다. 젊은 내외가 함께 일하다 남자가 떨어졌다.

교육을 받고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들도 이런 사고를 당한다. 유리창 청소는 이렇게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 후 얼마 동안 사고가 없으니 또 흐지부지되었다. 유리창 청소를 학교가 해주지도 않고, 하란 말도 하지 말란 말도 없다. 그냥 적당히 알아서 한다. 또 한번 사고가 나면 나라 전체가 호들갑을 부릴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 청소를 하지 않았다. 동문회가 청소용역비용을 대줬기 때문이다. 청소가 교육이라면 내 모교의 동문회는 후배들의 학습 기회를 뺏는 몹쓸 짓을 한 것이 된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너희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라는 동문회의 배려'라고 했다. 이 일로 내 모교의 동문선배들을 욕할 사람 있을까?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좀 나은 나라의 대부분은 교사나 학생에게 청소를 일절 시키지 않는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용역회사의 전문가들이 첨단장비를 이용해 빠르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청소한다. 그들에겐 교육이 아닌 청소가 우리에겐 왜 교육인가?

우리는 틀렸고 그들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자는 말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는 없다. 이제는 청소도 당당한 직업이다. 청소도 전문가가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제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 없다. 옷 수선도 가게에 맡긴다. 웬만하면 이사도 남의 손에 맡긴다. 세상 모든 일이 전문화 세분화되어간다. 학교 청소를 청소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이상한가?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도, 효율성을 생각해도, 안전을 생각해도, 교사의 업무를 생각해도 학교 청소는 교사와 아이들이 할 일은 아니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청소도 교육'이란 소린 이제 그만 하자. 어쩔 수 없어 시키는 '힘들고 수고로운 노동'이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나라가 가난해서(어른들이 못나서) 어린 너희들에게 못할 짓을 한다'라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먼저 걸레를 들자.

내가 일하는 학교는 화장실 청소 용역을 준다. 우리 학교만 학교 예산 더 받는 것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방법을 찾는다면 길은 있다. 학교 규모가 작으면 두세 학교가 한 사람을 고용하면 될 것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아무거나 '교육'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자. 이제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자. 청소가 교육이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청소활동의 대부분은 노역(勞役)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석환 기자의 '교사·학생을 청소에서 해방시켜라'와 같은 주장이다. 학교 청소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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