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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5일 오전 9시.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베이징 인민대회당 중앙좌석안으로 장쩌민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 주룽지 국무원 총리 등이 차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 전인대에 출석하는 각지 대표들
ⓒ 박현숙
개막 선언이 있은 후 바로, 주룽지 총리가 발표단상에 올라 '정부공작보고'를 시작하자 장내는 취재진들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쉬 소리만이 요란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날, 보고를 마친 주룽지 총리는 무려 11번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정치 인생의 마지막 고별 무대를 장식했다. 더불어 중국 제3세대 지도자들의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들 중 마지막까지 활짝 웃는 포즈로 손을 흔들며 중앙 단상을 다시 점령한 사람은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된 장쩌민 전 국가주석뿐이었다.

지난 3월5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제 10기 전인대가 열렸다. 이번 전인대는 지난 5년간의 정부사업을 총괄, 평가하고 새로운 5년을 준비하는 대회라는 점 외에도 후진타오를 국가주석으로 하는 새로운 4세대 지도자들의 인선으로 인해 그 어느 해보다도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제 10기 전인대의 하이라이트는 개막 첫날, 주룽지 총리의 정부공작보고 외에도 국무원 기구개혁 방안과 전인대 상무위원회 내에 20명의 전문위원 제도 설치, 제 4세대 지도자들의 인선 작업 및 사유재산보호와 관련된 입법 등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이중에서도 새로운 지도자들에 대한 인선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 16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 대회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기 때문에 예측불허의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과연 누가 얼마만큼의 지지율을 얻을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특히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총구'를 건네주지 않은 장쩌민의 군사위원회 주석식 선출은 이번 대회 인선과정의 초미의 관심사였다고도 할수 있다.

이번 인선 투표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이변(?)은 장쩌민과 그 측근들에 대한 반대표가 유난히 많았다는 사실. 특히 장쩌민의 오른팔로 불리는 쩡찡훙 신임 국가 부주석과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직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투표결과는 이들에 대한 상대적인 불만의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 차기 지도부에 대한 인선 투표결과, 쩡찡훙등을 비롯해 장쩌민 계열 인물들에 대한 반대표가 많이 나왔다. 사진은 쩡찡훙 부주석 투표결과.
ⓒ 박현숙
쩡 부주석은 반대 177표 기권 190표를 얻어 가장 많은 반대표를 얻었으며, 장주석 역시 98표의 반대표와 122표의 기권표가 나와 반대 3표와 기권표 4표에 그친 후진타오 총서기의 투표결과와 대조를 이루었다.

한편, 전인대 개막 이틀전에 열린 제 10기 정치협상회의(정협) 역시 여느 대회때와는 다른 분위기와 얼굴들이 등장해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특히 지난해 당대회 당시, 사영기업가들의 합법적인 지위 보장을 약속한 후 적지 않은 수의 사영기업가들이 정협과 전인대 내로 진출해 이들의 정치적 지위 향상을 실감케 했다.

이들중, 충칭(重慶)시 정협 부주석으로 선출된 인명산(尹明善) 충칭리판(力帆)그룹 회장과 쩌지앙(浙江)성 정협 부주석에 선출된 쉬관쥐(徐冠巨) 촨화(傳化)화학그룹 회장 등은 사영기업가들이 고위직에 진출한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쪄지앙성의 경우 이번 전인대에 참가한 대표 중 14명이 사영기업 회장들이었고, 지난해 11월 전국공상연합회 제9기 위원회 선거에서는 사영기업인이 처음으로 반수를 넘었으며, 이밖에도 새로 당선된 22명의 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 중 사영기업가수는 지난 회기보다 7명이 더 늘어났다. 중국 정치무대에 '붉은 자본가'들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 대회기간중 인민대회당 주변으로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 박현숙
이들 붉은 자본가들의 등장은 이번 정협과 전인대 '양회' 기간 중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유재산 보호법에 관한 헌법수정 움직임과 관련하여 중국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았다. 비록 이번 양회 기간 중에는 사유재산 보호법과 관련된 헌법수정안이 상정되지 못했지만, 이 문제는 지난해 당대회 이후부터 전인대가 폐막된 지금까지도 중국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붉은 자본가들의 부상

2002년 11월 8일, 제 16대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 개막식 보고에서 "모든 합법적 노동 수입과 합법적 비노동 수입은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현 군사위 주석)의 선언이 있은후, 중국 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자본가들의 봄날은 왔다'라고 대서특필했다.

그 뒤 "재산이 있고 없고와 재산의 정도에 따라 간단하게 사람의 정치적인 선진성과 낙후성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주요하게는 그들의 정치사상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표현을 봐야 할 것"이라는 장주석의 보고내용이 잇따르면서 중국 자본가들은 당당하게 붉은 모자를 쓰고 정치무대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자본가들의 봄날'은 머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2003년 3월3일, 제 10기 전국 정치협상회의 1차 회의가 개막되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불과 4개월만에 현실로 나타난 붉은 자본가들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중에서도 총칭 리판그룹의 인밍샨은 사영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총칭시 정협 부주석(부시장급에 해당)이라는 고위직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중국 자본가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나섰다.

인밍샨을 필두로 정협위원과 전인대 대표로 진출한 이들 붉은 자본가들은 당장 '사유재산 보호 조항을 헌법에 보장하라'는 공식 의안을 제출했다. 사영기업가들의 연합회인 전국공상연합회 명의로 '헌법개정과 사유재산보호 법률제도 완비에 관한 건의안'을 제 10기 정협 1차회의에 공식적으로 제출하고 나선 것.

물론, 사유재산 보호법과 관련된 공상연합회의 건의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8년과 2002년도에도 같은 의안이 제출되기는 했지만, 올해로 세 번째인 '헌법개정' 요구안은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16대 당대회 이후 사영기업가들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장의 수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선진 생산력 발전요구를 대표'하는 중국 공산당의 주력군으로 부상했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논쟁

지난해 12월 말,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조용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중국내 내로라 하는 지식인들의 사이버 논쟁공간에서 벌어진 이 전쟁의 주요한 이슈는 이른바 헌법수호 운동(護法運動).

자유주의 진영과 (신)좌파 진영으로 나누어져 진행된 이번 사이버 전투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의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프라인상의 전쟁은 '헌법을 고치라'는 것.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헌법 전쟁'일까.

▲ 제 10기 전인대가 열리고 있는 인민대회당 안.
ⓒ 박현숙
3월5일, 제 10기 전인대 개막을 전후하여 중국 내외의 관심은 새로운 4세대 지도자들의 등장과 더불어 중국의 또 다른 '신계급'으로 부상한 이들 붉은 자본가들의 '헌법수정안'에 모아져 있었다.

4세대 지도자들의 인선은 지난 16대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바, 별다른 이변을 기대하지 않았던 반면 이들 신계급들의 등장과 사유재산 보호법과 관련된 헌법 수정요구안은 사영기업가들의 합법적 지위를 약속한 '16대 당대회 정신'의 관철이란 측면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3월 3일 정협 개막 직전까지 그리고 전인대 개막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어느 대표들도 헌법 개정과 관련된 의제를 받아보지 못했다. 정협 개막 직전에 만난 모 위원의 말에 따르자면 "당 내부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했으며 보수파들의 치열한 반대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이번 제 10기 정협과 전인대 1차회의에서는 '헌법개정을 위한 충분한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어 논의를 보류했다. 결국 공상연의 세 번째 건의도 좌절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논의의 보류일 뿐 헌법개정을 안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16대 당대회 폐막 이후 '자본가들의 봄날은 왔다'라고 대서특필을 했던 중국 언론들이 이번에도, 헌법개정은 눈앞에 다가왔으며 내년 전인대 2차 회의에서는 드디어 "공민 사유재산의 법률적 지위는 신성불가침"이라는 내용이 헌법에 삽입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

이번 제 10기 정협과 전인대 '양회'기간 중 사유재산 보호와 관련된 헌법수정안이 의안으로 상정되지 못한 데에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내부 조건뿐만 아니라 기층에서 올라오는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도 들려오고 있다. 즉 '합법적인 수입'의 기준이 무엇이며 도대체 보호받아야 할 사유재산의 합법성은 어떻게 얻어지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 전인대 기간중인 3월12일. 헤이롱장 출신의 한 노동자가 사제폭탄을 들고 베이징 로이터 통신 사무실로 침입해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사건발생후 2시간여만에 잡힌 '범인'은 중국 부패의 실상을 폭로하고 싶었다는 진술을 한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언론에서는 정신병자의 난동으로 보도했다.
ⓒ 박현숙
지난해 말,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 중국 지식인들의 '전쟁'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과정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쾅신녠(矌新年)과 라오톈(老田)등 중국 내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들이 불러일으킨 '헌법수호 운동'의 파문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본질과 마오주의에 대한 재평가 등 근원적인 해석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쾅신녠은 "왜 우리에게는 '헌법수호운동'이 필요한가"라는 글을 통해 현재 중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유재산 보호와 관련된 헌법수정 움직임은 헌정과 법치를 빙자하여 노동자 농민의 공유재산을 착복해 '사유화'한 강도같은 자본가들과 그들의 이론적 대변인인 자유주의자들의 음모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아직까지 대다수의 일반 인민들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이며 사회주의 헌법의 근본적인 목표는 사회의 최대 다수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3월 전인대 개막을 전후해 벌이고 있는 자산계급의 '헌법개정' 움직임은 강도자본주의의 명분에 다름 아니며, 현재 중국은 두 가지 선택과 두 가지 종류의 운명 앞에 놓여 있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사회주의냐, 파시스트 자본주의의 길이냐.

무엇이 '보호받아야 할' 사유재산인가

▲ 이번 제 10기 전인대와 정협위원으로 사영기업가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중국에 후 홍색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 박현숙
자유주의 지식인들이나 공상연을 필두로 한 사영기업가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번 제 10기 정협 1차회의에 공상연이 제출한 사유재산보호와 관련한 헌법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개인재산이 효과적이고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경제와 사회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일부 자본의 해외도피와 민간투자의 활력이 부족한 것 등의 현상은 일정 정도 개인재산보호법률이 불완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성을 헌법에 명시하라는 얘기다. 그래야만 자본이 안심을 하고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유주의 지식인들 역시 모든 사유재산을 일단 합법화하고 그 재산권을 헌법에서 보호하라고 주장한다.

사영기업가로서 최초로 총칭시 정협부주석으로 당선된 총칭 리판그룹 인밍샨 회장은 이렇게 응수를 하고 있다.

"16대 당대회 정신을 살려서 민영기업에 대한 문호를 더욱 개방하고 그것의 합법적 권리를 법률을 통해 보장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사영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양회 기간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 역시 사영기업의 권리 확대와 사유재산 보호법이다. 자본이 사회발전에 공헌한다는 사실을 인정할때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유재산 보호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사유재산을 보호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사회발전에 공헌한다는 사실을 인정 못해서가 아니라 자본 즉 부자들의 사유재산 축적과정이 합법적인 과정이었나에 대한 의문이다.

'Far Eastern Economic Review' 최근호 기사를 인용하면,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행한 설문조사 결과 신흥 부자계층들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부를 축적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응답자의 5.3%에 불과했다고 한다.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신이 크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쾅신녠같은 좌파 지식인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비합법적인 사유재산까지도 보호하게 되는 헌법개정 움직임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새로운 함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말, 인터넷 상에서 사유재산 보호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할 무렵. 중국의 지식인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던진 바 있다.

"사유재산 보호조항이 헌법에 명시되는 것은 원래 민주사회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그것을 실행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관료계급과 부자계급이 정식으로 손을 잡고 동침을 선언하는 것과 그들 두 계급이 정식으로 중국 정치무대의 유일한 지도계급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 그리고 후(后)홍색시대의 노동자 농민등 기층 대중들과 좌익 지식인들은 한밤중에 자신들의 죽음을 선언하는 종소리를 듣는다는 것..."

바야흐로 중국의 후(后)홍색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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