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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라, 어떻게 그를 이해해야 할까. 그정도 되는 뮤지션이 음반 한장 한장 내는 것 조차 힘들 정도로 삶 자체가 평탄하지 않았다. 이해와 오해속에서 그는 6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시대의 증인이고 퍼포머, 사진작가, 음악인 등을 넘나드는 다중 예술인이었다. 난 그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혁명가였는지 그저 시대에 순응해 온 일개 음악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음악만을 놓고 보면 단언하건대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 최대의 천재 중 하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대수 간단 연대기

60년대 중후반 미국생활, 청년문화 체험
1968년 포크 공연, 청년문화 폭발의 효시
1974년 멀고 먼-길 발표, 한국 포크사의 이정표
1975년 고무신 발표, 전위적 포크음반, 반정부 인물로 낙인, 도미
1977년 미국에서 그룹 징기스칸 결성, 음반제작 좌절
1989년 무한대 발표, 한국 락 녹음의 혁신을 이룸, 다시 도미
1990년 기억상실 발표, 실험적 재즈 도입, 미국에서 녹음
19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비구상적인 음악 시도, 미국에서 녹음
1997년 후쿠오카 라이브 공연(1999년 고무신 앨범과 함께 발매)
1999년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발표, 미국에서만 발매
2000년 Eternal Sorrow 발표, 실험적인 곡과 정통적인 면이 섞인 락앨범
2002년 고민 발표, 싱어송라이터쪽으로 회귀한 느낌의 앨범
/ 정철
그는 음악 활동이 무척 들쭉날쭉하다. 역시 그의 순탄치 않았던 삶과 우리의 암울했던 시대 때문이지만 간단하게나마 짚어보자.
연대기를 보면 그는 군대,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도미, 국내 환경의 미성숙 등으로 국내에서 제대로 활동한 것은 68-69년, 74-75년, 89-91년, 99-02년 정도의 간헐적인 시기밖에 없었다. 그나마 90년대 중후반에 걸쳐 재평가 작업이 일어났기에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는 오히려 지금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의 음반 한장 한장은 국내 대중음악의 선을 한참 넘은 것이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선상에 있었던 것이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인물이 바로 전작을 낼 때까지도 앨범 녹음하기조차 힘들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그중 철저하게 소외받았던 앨범 '기억상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나 역시 이 앨범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90년대 후반 그의 음반들이 소개되면서 예전 음반들이 하나씩 재발매 되었는데 그중에 이 앨범과 '천사들의 담화'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상업성 부족으로 두장이 합본으로 발매되어 한장값에 팔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것을 구입해서 이 앨범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이 앨범들이 처음 LP로 나왔던 90년대 초반은 댄스뮤직이 가요계를 평정하고 있었으며 지금처럼 우리 음악에 대한 재발견 움직임은 없었다. 한대수의 새 음반들은 시장에 제대로 깔리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파격적인 음반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한대수는 그때까지의 그를 진정으로 이해해주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인 부인과 이혼하여 정서적 공황상태에 놓여있었다. 그의 전기를 보면 그녀도 한대수처럼 파격적인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가 얼마나 그녀에게 많이 기대고 있었는지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는 스스로를 홈리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앨범 재킷을 보면 그는 홈리스처럼 누워있지만 그나마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황량한 바닷가에 세워져있다. 그는 마음의 홈리스였던지라 편하게 누울 수도 없었던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당시 미국에 유학하고 있던 잭 리와 만난 한대수는 재즈를 열심히 공부하던 잭 리와 함께 재즈 앨범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잭 리는 친구인 에드 맥과이어(Ed McGuire)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셋이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앨범은 상처속에서 여무는 진주처럼 커나갔다.

▲ 한대수 4집, 기억상실(1990)
ⓒ 한대수
A면은 한대수의 구상을 에드 맥과이어와 잭 리가 작곡하여 만든 곡들로 이루어져있다.

첫곡 '기억상실'은 팻 메스니(Pat Metheny)를 연상시키는 기타연주와 신서사이저 연주, 그리고 물소리나 종소리 같은, 한대수가 즉흥적으로 집어넣은 소리들이 뒤섞인 곡이다. 소제목들이 달린 조곡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간적 순서대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처음은 비교적 단정한 연주로 시작하지만 두번째 파트인 혼돈에서는 이것저것이 깨지는 음들이 담겨있고 네번째 파트인 혼란에는 프리 임프로비제이션 음악인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연주가 실려있다. 연주 자체는 나름대로 실험적이지만 곡 진행 자체가 단순하고 실험적인 연주라는 면에서는 그다지 높게 평가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곡은 한대수 개인으로서건 아니면 우리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으로서건 하나의 살풀이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곡 '지하철'은 여러가지 효과음과 훵키한 퓨전 재즈가 담긴 곡인데 한대수보다는 잭 리와 에드 맥과이어의 감성이 짙게 느껴지는 곡이다. 중간중간에 계속 바뀌는 곡 변화가 재미있다.

역시 한대수의 진가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에 나타나있으며 그것은 모두 뒷면에 담겨있다. 첫 두 곡은 영어다.

첫곡인 'White Woman'은 백인 여성에 대한 욕망을 묘사하고 있다. 백인 여성이라는 대상은 우리를 내려다보는 거만한 미국문화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천박하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자본의 매력.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서양남자들에게 동양여자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서양여자들에게 동양남자는 하등동물일 뿐이야." 이것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가지는 근본적 이중성을 드러내는 말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브라스 연주때문에 무척이나 흥겹고 시니컬하게 들린다.

두번째 곡 'Headless Man'은 당시 방황하던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는 곡으로 이번에는 자신을 집없는 남자에서 머리없는 남자라고 부르고있다. 이 곡에서 한대수는 위악적인 목소리로 신나게 '헤드리스 맨~~!'을 외치면서 스스로를 비웃고 있다. 무척이나 자조적이다.

세번째 곡 '해가 서쪽에 뜬다'는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곡이다. 콩가같은 아프리카 느낌이 드는 타악 연주위에 한대수의 즉흥 보컬 퍼포먼스가 실린 곡인데 한대수는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하나의 무당같다. 중간에 잠시 잭 리의 기타 신서사이저 연주가 나오고 곧 이어 그는 이 곡의 핵심가사인 '노력하여 부자되자'라는 부분을 부르기 시작한다. '노력하여 부자되'는 일은 '해가 서쪽에 뜨는'것처럼 택도없는 일인 것이다. 이후 외국인 여성 보컬의 '노래카여 부자대자'라는 코러스가 흘러나온다. 우리말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어눌해진 가사는 마치 러시아 무희가 우리나라에 와서 착취당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양 처량하게 들린다. 나는 한대수가 이것까지 의도하고 만들었다고 보진 않는다. 단지 그는 예술가로서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한 것일게다. 좋은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마지막 곡 '아무리 봐도 안보여'는 양희은이 노래를 해주었다. 계속 '안보여'라는 가사와 양희은, 한대수의 스캣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당시 한대수의 막막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암투병중이던 양희은의 심경을 담고있는 곡이기도 하다. 서정적이고 쓸쓸한 마무리이다.

아 솔직히 이 앨범을 듣고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간의 평처럼 이 앨범이 전위적이어서 일반인이 듣기 부적합한 음반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앨범의 앞면은 조금 이색적인 연주를 담고있지만 쉽게 구성되어 있으며 뒷면은 약간 독특한 싱어송라이터의 곡이 담겨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전체적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있기 때문에 한국인인 우리만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일까?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일본의 친구에게 이 음반을 보내주었으며 그는 이 음반에 대한 여러 숨은 얘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을 듣고 내가 보내주었던 음반중 최고 수준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적인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인지라 어어부 밴드나 김대환같은 음악인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이 앨범에 담긴 정서가 어느정도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음반을 국내에서 찾긴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더욱 이 앨범에 애착이 간다.

한대수는 4월 25일, 26일에 공연을 한다고 한다. 늘 현역같은 그의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령에도 직접 모든 것을 해야하는 그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트리뷰트 음반도 헌정받고 후배들이 그의 음악활동을 받드는 모습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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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서재 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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