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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년단축 반대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교원정년 단축을 추진할 때, 한교총이 주최하는 대규모 정년 단축반대 집회가 열렸었다. 집회가 토요일 오후에 열렸는데 많은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교사들을 참석시키려고 점심이란 '당근'과 참석자 확인이란 '채찍'을 사용했다. 내가 일하는 학교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년단축에 찬성하는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교장선생님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교사들의 사유를 조사했다. 토요일 오후의 사생활을 교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 나와 자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는 교장선생님 사이에 논쟁이 일었다.

나는 임의단체(任意團體)인 한교총이 주최하는 집회에 교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며 불참사유 조사는 교사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교장선생님은 교총은 합법단체이며 교총 회원은 교총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또, '교장은...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라는 초중등교육법 20조 1항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기관장은 자신이 '거느리는' 직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조사는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그 교장선생님은 평소에 도덕성의 흠결이 잘 안 보이는 분이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교장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한교총의 집회를 밀어주는데 쓰면 안 된다는 사실도, 토요일 오후의 사적인 시간에는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많은 교장들이 그 교장 선생님처럼 자격증을 특권으로 이해한다.


2. 자격증과 전문성

교장선출 보직제를 다룬 MBC <100분 토론>에서 서울교육행정연수원장 윤정일 교수는 교장 자격증제를 옹호하면서 교장의 전문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장역할에는 교육법, 리더십, 인사행정, 교내장학,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며, 자격연수를 통해 그런 전문성을 갖춰 준다. 또, 교장은 엄연히 그 학교를 지휘·통솔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므로 교장의 합법적 또는 전문적인 권위를 절대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나는 교장의 직무수행에 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교장의 합법적 전문적 권위를 절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자격증만 있고 전문성은 없는 교장의 비합법적 또는 비전문적 지휘·통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먼저 인사행정의 사례이다. 서울에는 초등학교 교사전보에 '인사보강'제도가 있다. 컴퓨터로 교사를 배정하므로 특수업무를 담당할 교사가 어떤 학교는 없고 어떤 학교에는 여럿이 몰리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장이 학교 업무에 필요한 교사를 데려올 수 있게 한 좋은 제도다.

그러나 일부 교장들은 학교에 필요한 교사가 아니라 교장 자신에게 필요한 교사를 데려갔다. 교육청은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자 제도를 고쳤다. 그들은 '자격증'은 있어도 '자격'은 없는 교장들이었다.

나는 소년신문 구독·폐품수합·도서기증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학년부장에서 밀려난 경험이 있다. 소년신문 단체구독은 많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는 신문 대금의 20%를 발전기금 명목으로 학교가 쓰는 모양새가 구저분하고, 폐품을 낼 수 없는 보육원 아이 앞에서 어머니가 승용차로 수십 킬로그램을 실어다 내준 아이에게 상을 줄 수 없었으며, 도서 기증도 요구할만한 명분이 부족했다. 교육자의 양심으로 아이들에게 소년신문 구독·폐품수합·도서기증을 강요할 수 없었다.

소년신문 구독실적과 폐품수합·도서기증 실적 등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이유로 학년부장 교사를 보직에서 밀어낸 교장선생님은 인사행정의 전문성을 갖춘 것일까? 그 교장선생님의 말대로 교내인사는 '교장의 절대권한'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교장이 소년신문 구독 부수로 교사를 평가하면 그 권위에 굴복하여 아이들에게 소년신문 구독을 종용해야 하는가?

KBS TV 토론에서 초등교장단 대표가 '인사는 인사자문위원회에서 한다'며 교장의 권한이 매우 축소된 듯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다. 나는 교장이 임명한 부장들만으로 '인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봤고, 각 학년에서 부장을 포함한 2인을 인사자문위원 후보로 복수 추천 받아 그 중 1인을 교장이 지명하는 복잡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교장이 원하는 사람만으로 구성하는 것도 봤다. 그나마 인사자문위원회에서 만든 기준도 지키지 않는 교장들도 있다. 이런 행위도 지휘·통솔의 합법적 권위로 존중해야 하는가?

교장 자격연수에서 지역사회와의 관계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도 갖춰준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자식 결혼 청첩장을 교내 여러 학부모단체 임원들에게 우송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인가?

교장자격연수에서 리더십도 갖춰준다고 했다. 짧은 기간 연수로 리더십이 갖춰지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나는 현행 교장자격증 제도는 민주적 리더십을 죽이는 제도라고 본다. 교감승진을 앞둔 교사가 근무성적 평정권(評定權)을 가진 교장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장의 외재적 권위에 대하여 자기비하(自己卑下)로 절대 복종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승진하기 쉽다.

교장 자격증제의 문제점을 열거하다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교장선생님들의 예를 많이 들었지만 그분들도 다른 면에서는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 학교 현장에는 존경할만한 교장선생님들도 많다.

그러나, 존경할만 한 교장선생님들이 교장 자격증 때문에 직무수행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잊혀질만하면 터지는 뇌물수수 사건이나 성희롱 사건이 교장 자격증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교장 개인의 인성문제인 것처럼, 좋은 교장의 훌륭한 직무수행도 교장 자격증제도 덕이 아니라 교장 개인의 자질 때문이다.


3. 전교조 규탄대회

전국 초중고 교장단은 ㅂ초등학교 교장 자살을 '참교육을 위한 순교'로 규정하고,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의 절묘한 일자에 서아무개 교장을 추모하고 전교조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기간제 여교사에 대한 '과도한 업무분장과 상호간의 공감대를 갖지 못한 교내장학'에서 비롯된 사태로 자살한 교장을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거나 말거나 그들의 정서는 존중한다. 자신들의 '순교자'를 애도하는 '집회의 자유'도 존중한다.

그러나 전교조를 공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몰아 규탄하려는 집회는 반대한다. 전교조 교사와 교장 중 비교육적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어느 쪽이 많은가? 백 보 물러서서 그 수가 비슷하다고 치자. 전교조 조합원과 전국 초중고교장 중 어느 쪽이 많은가? 비교가 안 된다. 교장단이 문제 구성원의 비율을 알았다면 전교조 규탄에 나설 때가 아니다.

교장 자격증 제도를 옹호하는 서울교육행정연수원장 윤정일 교수가 말한 교장 역할의 중요성을 정리하였다.

'교장이 흔들리면 학교가 흔들리고 학교가 흔들리면 국가미래도 흔들린다. 교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교장에 그 학교다. 교장이 잘 하는 학교에 가면 잘 돌아가고 있다. 전교조하고 아무 문제도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맞는 말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비전교조 교사들과는 밥도 같이 안 먹는다며 전교조를 교단 갈등의 주범으로 왜곡하는 세력이 있지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대부분 교장·교감과 교사(전교조든 아니든) 사이의 문제다.

일부 언론이 전교조 때리기에 이용한 최근의 D여고 사태는 재단과 교사들의 갈등이었고, M초교 사건도 전교조와 관계없는 단순히 술로 인한 사고로 밝혀지고 있다. 교장단은 구성원들의 자질부족에서 생기는 학내 갈등을 전교조 교사들에게 덮어씌우려 하면 안 된다. 교장이 권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학교는 '전교조하고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교장단은 한 구성원의 자살을 기회로 전교조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전국의 교장들이 권력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제대로 사용했으면 전교조가 안 생겼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한계를 지키고, 전문성을 발휘했으면 교장선출 보직제 주장이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 5월 11일, 교장단은 당신들의 '순교자'를 추모하며 자질부족 구성원들에 대한 자기성찰을 결의하고 조용히 흩어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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