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운주사 가는 길

'전라도에도 이런 외진 곳이 있구나' 의아스러울 정도로 운주사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들녘을 지나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것이 피안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나라에서 운주사처럼 신비스럽고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절이 또 있을까? 수많은 불상과 탑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어떠한 문헌도 찾아 낼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수 백년 동안 묻혀 있었던 앙코르와트처럼 신비 그 자체로 남아 있다. 널브러진 돌 조각을 보면서 수수께끼를 풀고 상상력만으로 이 절의 내력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긴 운주사에 와서 무엇인가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런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저 한적하게 거닐고 나름대로 감동 받으면 그만인 것을….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만 근래에 만들었음직한 육중한 일주문을 지나면 뱀이 요동치는 듯이 휘감아 도는 길이 나온다. 초입 왼편 한 구석에 나뒹구는 돌무더기가 바로 대웅전터란다.

운주사 탑

▲ 운주사에는 다양한 탑이 산재해 있다.
ⓒ 이종원
다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거대한 9층석탑이 버티고 서있다. 마을의 솟대나 당간지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민초들의 염원을 탑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높이가 무려 10.7m나 되고 운주사 석탑 중에 가장 높다. 자연 암반 위에 그대로 탑을 올린 것이 참 자연스럽다.

탑에서 엄숙한 절제와 정형은 도무지는 찾을 수 없다. 하얀 화선지에 자유롭게 붓을 휘갈겨 쓰는 자유분방함만이 살아있다. 지붕돌 밑에는 'V' 모양과 마름모꼴도 새겨져 있고, 심지어 트럼프에 나오는 꽃 문양도 새겨져 있어 그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몇 십년 전 만해도 탑과 불상 골짜기에 논밭으로 경작되어 있어 봄이면 쟁기소리며, 가을이면 누런 벼이삭이 물결치는 경이로운 세상이었다고 한다. 그 논밭 사이에 탑이 솟아올랐다고 상상해 보라.

▲ 보물 798호 원형다층석탑과 보물 797호 석불감 쌍배불좌상
ⓒ 이종원
문양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탑도 눈에 들어온다. 옥개석이 둥근 호떡처럼 생겼다는 떡탑도 보인다. 돌집 안에 모신 부처상도 보인다. 돌집은 팔작 지붕까지 갖추고 용마루, 치미까지 묘사되어 있다. 잘 다듬은 나무를 끼워 맞춘 것처럼 정교하게 돌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그 이음새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감실 내부에 불상 두 구가 모셔져 있다. 문을 여닫는 홈까지 패어져 있어 나무문이 놓여 있지 않았나 상상해본다.

▲ 인간미기 물씬 묻어나는 운주사 불상군
ⓒ 이종원
운주사 불상

이 곳에 모셔진 불상은 운주사의 다른 불상과 차이가 없다. 입체감은 없고 대다수가 납작하고 평범한 민초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만약 잘 생긴 부처가 이 곳에 모셔졌다면 얼마나 부자연스러울까?

형제와 이웃의 얼굴에서 부처의 얼굴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숭고하고 파격적인 생각인가? 옷 속에 두 손을 모으고 있어 어떤 수인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중생을 위한 지권인(智拳印)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못생긴 부처의 '매스게임'이라고 할까? 민초들이 부처가 되었고 그 부처는 간절히 하늘에 빌고 있다. 숭배 받는 부처가 아니라 숭배하는 부처다. 그만큼 운주사 부처는 겸손하다. 그런 부처는 화목한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소외 받는 집단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운주사 돌덩이들은 가르쳐 주고 있다.

폭풍우가 치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부처는 천년동안이나 이 곳을 지켜왔다. 비바람에 얼굴이 깎이고 코가 뭉그러졌어도 그 염원만은 생생히 살아 있다. 바라만 봐도 감동이 흘러나오는 심포니 같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운주사 불상을 사랑한다.

근래에 화려한 대웅전과 큼직한 요사채를 지어놓았다. 폐사지는 황량할 때 그 맛이 좋은데…. 이런 건물이 들어서면 맛이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에 눌려 천불천탑 중에 120여 기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것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천불천탑지기인 스님들께 감사들 드린다.

요사채는 뻥 뚫린 지붕담으로 둘러쳐 있어 참 보기 좋다. 언제든지 문을 두드리면 스님이 문을 열고 나와 고충을 들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남근석에 기댄 부처님 얼굴
ⓒ 이종원
약수터 옆에 5층석탑이 놓여 있는데, 지대석에 막돌로 얹어 놓았다. 그 가운데 호기심을 자극할 돌을 발견했다.

'부처님 얼굴과 남근석'

매번 올 때마다 풍성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운주사 옹이들이다. 밖에는 천불천탑이 놓여 있고 안에는 천독이 있으니 말이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공사바위

공사바위에 올라야만 운주사 골짜기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S자 모양의 굽이도는 계곡에 수많은 탑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천불천탑 공사를 했을 때 총감독이 이 곳에 앉아 내려다보며 공사감독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에 공사바위라고 불리운 것이다.

▲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골짜기
ⓒ 이종원
실제 바위엔 엉덩이가 하나 들어갈 정도로 홈이 움푹 파여 있다. 공사바위에 올라갔더니 이 곳에 앉아 참선을 하는 대학생이 보인다. 현대판 감독을 만나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마음속의 탑은 오늘날에도 계속 세워지고 있다.

운주사 창건설화

운주사의 창건에 대한 여러 설이 있다.

첫째가 이곳 운주사 땅이 여자의 음부형국으로 장차 임금이 나올 군왕지여서 그 혈을 끊어 놓기 위해 명당을 누르는 탑을 세우고 도술을 부려 근처 30리 안팎의 돌을 불러모아 하룻밤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둘째가 우리나라 지형이 배 모양인데 동서가 평평하지 못하고 또 태백산맥이 있어 동쪽으로 기울어져 국토의 정기가 일본으로 새어 나가기 때문에 나라가 망할 위험이 있어 국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다.

셋째가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루밤 사이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이 난 동자승이 거짓으로 닭이 울었다고 하여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전설이든지 운주사는 국운을 위해 세워졌음이 분명하다.

▲ 공기돌을 얹진 모양의 탑과 불상군
ⓒ 이종원
공사바위 아래 암벽에도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운주사에서 유일한 마애불이다. 다시 내려오면 바위 밑에 불상이 숨어져 있고 억새 위에 공깃돌을 얹어 놓은 듯한 이형탑이 세워져 있다. 이렇게 발길 내 닿는 곳마다 신비한 탑과 불상이 놓여 있어 불국토에 발을 디딘 느낌이 든다.

▲ 와불
ⓒ 이종원
와불

운주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진 절이 아니다. 황석영의 '장길산'에 소개되고부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문학의 힘이 이렇게 크다. 이 곳 천불산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용화세계가 열린다는 운주사 설화를 삽입하여 대미를 장식하였다.

바로 소설 속에 나오는 와불이 바로 이것이다. 이 와불이 일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것이다. 불상 아래를 보면 일으켜 세우려고 움푹 들어간 홈이 보이고 쐐기를 박아 떼어놓으려는 흔적도 보인다.

두 와불 중에 아래 와불은 머리에 붙어 있어야할 육계가 떨어져 옆에 서있다. 누군가 훼손하려고 한 것일까?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를 보듬어 보았다.

"저도 머리 좋게 해주세요."

▲ 신비스린 칠성바위
ⓒ 이종원
칠성바위

와불이 누워있는 산마루에서 절 입구쪽으로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듬성듬성한 소나무 숲에 일곱개의 바윗돌이 놓여 있는데 이를 '칠성바위'라고 부른다. 칠성이란 북극성을 축으로 하여 그 주위를 하루에 한번씩 회전하는 북두칠성 별자리를 말한다.

전남대 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 이 돌들은 실제 북두칠성의 위치에 따라 놓여 있으며 밝기에 따라 돌의 크기도 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더구나 운주사 탑들도 역시 일등성의 배치와 일치한다고 하니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혹시 천불천탑은 우주인이 만든 것이 아닐까?

▲ 칠성바위에서 내려다 본 탑과 불상
ⓒ 이종원
이런 칠성신앙 때문에 민초들은 이곳에 와서 장수와 구복 그리고 득남을 빌어 왔다. 오늘날 칠성신앙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민초들의 얼굴
ⓒ 이종원
운주사의 동화

운주사는 내게 아련한 동화같은 기억과 함께 떠오른다. 몇 년 전 운주사를 찾았을 때다. 절 입구에 할머니가 먹음직스런 홍시를 팔았던 것이다. 4개를 샀는데 한 개는 그 자리에서 먹고 나머지는 할머니께 맡겼다.

"할머니 감이 정말 맛있네요. 나머지는 나올 때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일주문을 지나 신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워낙 운주사에 진한 감동을 받았기에 그만 시간을 지체하고 만 것이다. 벌써 시간은 지나 해가 막 넘어 가려고 하고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할머니께 맡겨둔 감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이다. 터벅터벅 매표소를 걸어 나오니 다른 행상할머니는 다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할머니만 혼자 주차장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을매나 기다렸는지 몰러요. 아저씨에게 감을 전해 주어야 했기에 집에도 못 가고…."

그리고 맡겨둔 감 3개에 팔다 남은 감 하나까지 덤으로 주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간다. 석양에 비쳐진 할머니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조금 전 절에서 보았던 천불 중에 한 분이 바로 저 할머니구나.'

세월이 지나면서 운주사 천불 천탑은 120여 기만 남지 않았지만 부처 같은 민초들이 남아 천불천탑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부처는 돌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의 얼굴이 아닐까?

운주사 교통정보

1)승용차

서울-호남고속도로- 북광주ic - 화순 -(10km)- 능주-(5.1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서울- 호남고속도로- 광주- 광주대학교 -(11km)- 도곡온천 -(4.4km)- 평리사거리 -(2.4km)- 클럽900 -(2.8km)
- 도장리 -(8km)- 도암삼거리 -(3km)- 운주사


2) 대중교통

1) 광주-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34회 운행/1시간 20분 소요(38km)
2) 화순읍-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40분 간격(34회)/40분 간격(26km)
3) 나주-운주사행(중장터행) 군내버스 이용/1시간 간격(11회)/30분 소요(19km)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