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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의식 없는 군대는 허깨비에 불과하다"
표명렬 육군 예비역 준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라크 파병, 군대 개혁 등에 대해 보통 예비역 장성과는 달리 진보적인 견해를 밝혀왔던 표명렬(예비역 육군 준장·육사 18기) 장군이 재향군인회 등 각종 군 관련 단체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했다.

이유는 이라크 추가 파병에 반대하고 한국군의 정통성을 부정했으며, 모교인 육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5일 <한국일보> 등에 따르면 육군 정훈감 출신인 표 장군이 지난해말 역대 육군 정훈병과장 모임과 정훈장교들의 단체인 '정훈동우회'에서 제명됐다. 또 육사 동기회에서도 자격박탈이 논의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향군인회 홍보실 관계자는 "육사 18기 동기회나 육사 총동창회,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 등에서 표 장군의 제명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향군인회도 이 단체들의 논의 결과를 봐서 제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표 장군의 그동안의 언행은 우리 재향군인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반한다"며 "제명되기 전에 본인이 자진탈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 장군은 지난해 10월 6일 <한국일보>에 '명분없는 그들만의 파병', 11월 3일 <경향신문>에 '군 출신 원로들도 '반 파병' 목소리 내자'는 글을 통해 추가 파병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또 지난해 8월 15일 <한겨레>에 기고한 '국군의 날과 광복군'이라는 글에서는 "국군의 날은 한국전쟁 때 육군 3사단이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이 아닌 광복군이 창설된 9월 17일로 해야한다"며 "이렇게 되지 않은 것은 친일세력들이 광복 뒤 군을 장악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 행적을 덮어버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펴낸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책에서 한국 군대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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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의식 없는 군대는 허깨비에 불과"

<오마이뉴스>는 6일 오후 표명렬 장군과 긴급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표 장군은 "나에 대한 제명 움직임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시대가 변했는데도 군 출신인사들이 과거 냉전·군사정권 시절의 사고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음이 공개적으로 드러나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군의 명예가 크게 실추될까봐 오히려 걱정"이라고 말했다.

표 장군은 "80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 양민을 학살해 국가반란죄로 처벌받았던 사람들은 육사동기회에서 제명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제명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의식 없는 군대는 허깨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군은 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은 왜 한국 군대가 개혁되어야만 하는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제2 건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표 장군은 지난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으며 1965년 맹호부대 소총중대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보병에서 정훈으로 병과를 바꿨으며 지난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육군 정훈감을 지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정훈동호회 등에서 제명됐다고 들었다.
"직접 통보받지는 못했고 다른 사람한테 얘기를 들어 알게됐다. 그동안 한국군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줄곳 해오면서 사실상 서로 교류가 끊어진 상태였다."

-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할 텐데.
"오늘 아침 신문에 나의 제명 소식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혹시 잘못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해줬다. 그러나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 출신 인사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 제명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내가 제명당하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군 출신 인사들이 얼마나 과거 군사정권·냉전 시절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지게 됐다.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부끄러워서라도 군 내부에서 고쳐야 할 것을 이렇게까지 까발려지면서 국민들은 왜 군 개혁이 필요한지 더 느끼게 될 것이다."

-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육사동기회 등에서도 제명될 것으로 보인다.
"육사 출신 가운데 각종 부조리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왔거나 국가반란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동기회에서 제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제명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장군 출신이라면 군 엘리트들인데 정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이렇게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는가? 한마디로 진정한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 왜 육사동기회 제명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육사 출신 인사들이 이런 식으로 엄포를 놓아서 후배들이 나와같은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국내 군 관련단체들, 하나같이 극우세력 행동대원 활동"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육사출신 가운데 이전에도 제명당한 사례가 있나?
"내 육사동기 중에 박흥주 대령이 있다. 그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전속 부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가담해 나중에 사형당했다. 박 대령이 나중에 육사 동기회에서 제명당했다고 하던데 그 이후 내가 처음인 것 같다."

- 군 관련 단체들과 관계가 상당히 껄끄러울 텐데.
"문제는 국내 군 관련단체들이 하나같이 극우 세력의 맨 앞에 서서 행동대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재향군인회의 회원이 된다. 그러나 군대 같다온 사람들이 모두 파병 찬성하고 극우파들인가? 그런데 그런 단체의 간부들이 군복 입고 성조기 휘날리면서 마음대로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고…."

- 장군 출신으로 파병반대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이는데.
"전투를 경험한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안다. 세계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가운데는 전쟁을 경험한 군 출신 인사들이 많다. 군대를 잘 아는 장성출신들이 파병 반대의견을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낼 수 있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안에서도 4성장군 출신인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이 가장 온건파다."

-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한국군에 민족의식과 민족 자존심이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광주사태 때 한국군이 비무장 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 있었다. 만일 사관학교에서 제주 4·3사건이나 여순반란사건, 또는 거창 양민학살 사건 때 발생한 억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제대로 교육시켰다면 역사가 두려워서라도 학살을 저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군의 효시는 광복군, 육사의 전신은 신흥무관학교"

- 모교인 육사의 교육방식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데.
"제일 큰 문제는 사관학교에서 민족의식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헌법상 법통은 상해 임시정부에 있고, 따라서 한국군의 효시는 당연히 광복군이다. 그러나 일제의 앞잡이들이 광복 뒤 군을 장악했고, 이는 사관학교 교육에서 민족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은 당연히 신흥무관학교가 되어야 한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350명 간부들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 평소 사고방식이 다른 군인들과 달랐나? 그리고 그 계기가 있다면.
"나는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1961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사회 분위기가 좀 자유로울 때 <민족일보>를 보다가 퇴교당할 뻔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난 뒤 병과를 정훈으로 바꿨다. 한국군을 진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육사교육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프랑코 총통의 독재를 경험했던 스페인의 경우 프랑코가 죽자마자 제일먼저 육사 교육부터 바꿔버렸다. 이는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군도 이와같이 해야한다.

군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부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이는 다시 육사를 비롯한 사관학교 교육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4년동안 제대로 된 인격과 진정한 역사의식을 갖는 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한국군에 아직도 일제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나?
"한국군은 간부위주, 생명경시, 사병인권무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간부 위주, 그것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간부들의 자존심만 높이는 게 한국 군대다. 이는 바로 일본 제국주의 군대 문화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자존심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위에서 시키면 해야한다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정보화 민주화 시대에 한국군의 이런 문화로는 제대로 된 군대가 될 수 없다."

- 군대의 자율성과 규율은 모순되는 것 아닌가.
"민주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월드컵 때 '붉은악마'들은 자율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신나게 거뒀나? 정보화 시대에는 개개 전투원들의 판단력과 창의력, 자발성이 중요하다."

- 군 개혁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보통 군 개혁하면 하드웨어적인 개혁만 얘기한다. 병력 구성을 바꾸고 최신 무기를 사고 과학화·정보화 하는 것은 모두 군사작전과 관계된다. 이는 국가 예산만 허용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군대 안의 문화와 의식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다. 소프트웨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예비역 장성의 외로운 외침 "명분없는 그들만의 파병"

다음은 지난해 10월 6일 <한국일보>에 실린 표 장군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주


최근 정부 내 분위기가 '이라크파병'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반대로 일반 국민들의 의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급해진 수구 세력들은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민들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 세력들끼리 모여 쏙닥쏙닥 결정한 후 언론을 동원해 북 치고 장구 치기만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지겠지만, 세상이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 속일 수도 윽박지를 수도 없는 세상이 됐다.

파병론자들은 '맹방'과 '국익'의 논리를 내세워 열을 올린다. 그러나 '맹방'의 명분은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준 과거의 크고 작은 실증적 사례들에 의해서 빛이 바랜 지 이미 오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우리를 진정한 맹방으로 여겼다면 그런 참담한 대학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들어선 독재정권의 탄생을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아쉬움을 가슴 깊이 간직한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맹방'이 국민들에게 기대만큼 잘 먹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수구세력과 보수언론들은 '국익' 쪽으로 초점을 돌려 거품을 내뿜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국익을 들먹이며 조심스럽게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국익'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가 가난하여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경제적 혜택'이라는 것을 내세워 이게 마치 국익의 전부인양 호도한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는, 당장의 눈앞의 작은 이익을 과연 진정한 국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금세기 경영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의 본질은 고객의 가치창출에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간에 경쟁력은 어느 쪽이 보다 많은 고객을 감동시키고 만족시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의 마음을 더 많이 사로잡는 쪽이 이긴다는 말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및 국가간 경쟁력도 이와 마찬가지다. 세계인의 마음을 얼마나 더 사로잡느냐가 곧 국제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세계인의 분노와 우려를 자아낸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큰 실책이다. 폭력, 더욱이 정의에 바탕하지 않은 폭력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 인류 역사가 보여준 정률(定律)이다.

미국내의 양심 세력을 비롯하여 세계인의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가 국익을 내세워 뛰어든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방에 확산시킴으로써 우리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인류의 손가락질을 받는, 엄청난 역사적 손실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맹호부대 소총중대의 일원으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지금도 가끔 노도처럼 밀려오는 적을 향해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적이 쓰러지지 않고 꾸역꾸역 다가오는 악몽을 꾸며 식은 땀을 흘릴 때가 많다.

살점이 튀고 피를 토하며 발버둥치는 전장의 아비규환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런 전장에 우리 젊은이를 내모는 일에 결코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무기상과 석유재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전쟁에 사랑하는 내 자식들을 내몰자는 주장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고루 돌아가는 국익, 시간이 갈수록 더 확실하게 자랄 진정한 국익을 생각해,"미국의 절대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이 취할 행동은 뻔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를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자. 그런 자존심과 도덕적 용기가 더 큰 국익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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