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릴 적 만화영화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다. 만화 속 세상에서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했고, 악의 무리는 처절하게 응징을 당했다. 우리의 영웅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심판했다.

항상 약자의 편에서 지구를 지키는 만화 영웅들은 어린 우리의 가슴 속에 지구 수호와 악의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아로새겨졌다. 그들은 정의의 사자였고, 우리는 그들의 팬클럽 회원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자, 세상의 일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지구영웅전설>
ⓒ 문학동네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은 새롭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바로 만화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슈퍼맨, 배트맨과 로빈, 아쿠아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헐크…. 아메리카 히어로들이 총 출동한다.

저자는 만화세계와 현실세계를 믹서기에 넣고 함께 돌린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단순한 만화적 상상력과 재미로, 어떤 순간에는 현실의 상징과 비유로 <지구영웅전설>의 공간과 인물들은 다가온다.

그의 재기 발랄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왜 만화 영웅들을 등장시키고, WTO와 IMF를 등장시켰는지,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나나맨 인지 깨닫게 된다.

그는 만화 영웅들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의도와 전략,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이 만들어낸 영웅의 허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과연 슈퍼맨이 아메리카의 영웅인 동시에, 우리의 영웅이 될 수 있는지. 미국의 국익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대통령이 과연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며, 친구일 수 있는지 말이다.

만화 영웅들의 탄생에 감춰진 음모

소설 뒤에 실린 인터뷰에서 박민규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린다. ‘그냥 만들어진 영웅은 없다'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만화 영웅은 영웅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고, 영웅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움직인다.

걸프전 때는 배트맨이, 이라크전 때는 스파이더맨과 헐크가 제작되었다. 만화가 발달한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원폭과 패전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을 이용한 아톰이 탄생했고, 대기업의 구성원들에게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있다는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로봇과 도킹하는 시스템의 마징가 제트를 만들어냈다.

프로레슬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걸프전 당시, 미국의 인기 프로레슬러인 헐크 호건은 사담 후세인을 상징하는 서전 슬래터와 챔피언 벨트를 놓고 격돌한다. 호건이 그를 때려눕힌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쇼'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영웅은 힘을 가진 자들의 논리를 대변하는 꼭두각시였고, 그들의 욕망을 실어 나르는 운반책(運搬責)이었다.

왜 하필 바나나맨인가

<지구영웅전설>의 주인공은 한국의 평범한 소년이다. 그는 희망 없는 자신의 삶에 낙담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 한국의 상공을 비행 중이던 슈퍼맨이 극적으로 소년을 구해준다.

소년은 워싱턴에 위치한 정의의 본부로 옮겨지고, 그 곳에서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조국은 아메리카가 아니었고, 그의 피부색 역시 황색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바나나맨’이다.

”너무 작아, 마치 한국의 땅덩이처럼 작구나”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곤란해 하는 슈퍼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컨셉을 ‘친근한 영웅’ 쪽으로 맞춰 보는 건 어떨까?”
로빈의 힘찬 목소리가 부메랑처럼 날아 돌아왔다.
“이를테면 바나나맨(Banana-man) 같은 것 말이지!”
“겉은 노랗다. 그러나 속은 희다. 그거야말로 우리의 컨셉에 딱 맞는 이름이군. 좋아, 다들 어때?”
모두가 동의를 뜻하는 박수를 쳤기 때문에, 그 순간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바나나맨’이란 이름은 이 소설의 주제를 알 수 있는 결정적 힌트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쩌면 작은 한반도에서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을 꿈꾸는, 겉은 노랗고, 속은 흰 바나나맨들이 아닐까.

아메리카 히어로들을 좋아하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코크를 마시고,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휘스턴을 들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목을 매면서, 메이저리그와 NBA에 열광하면서, 이라크의 자살 폭탄테러에 흥분하는 바나나맨말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바나나맨이어야 하는가

소설 속 바나나맨은 그 효용가치를 다하자, 결국 제거 대상 1호가 돼, 고국으로 돌아와 영어강사를 하면서 지낸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아메리카 히어로에게 적대감을 품을 만큼 현명하지(!) 못하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을 보러 온 슈퍼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할 뿐이다.

슈퍼맨은 이제 더이상 정의의 사자가 아니다. 슈퍼맨은 오히려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 되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권과 권리를 지키며 그의 망토를 벗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이 땅의 바나나맨들이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마지막으로 슈퍼맨이 바나나맨에게 했던 말을 전하고자 한다.

”넌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슈퍼맨이 얘기했다.
“그럼 미국인이 될 테야” 내가 소리쳤다.
“소용없어” 다시 슈퍼맨이 말을 이었다.
“그런다 해도 넌 백인이 아니니까”

덧붙이는 글 | - 문학동네/ 7500원/ 박민규 지음
-김태우 기자의 다양한 글을 싸이월드 클럽 '태우의 글상자(writinglife-woo.cyworld.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문학동네(200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