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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이면 동구릉을 꼭 가세요. 조용한 능원을 한적하게 거니는 것만 해도 좋습니다. 저는 3살난 제 아들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두꺼운 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오솔길을 거닐었습니다.

하얀 눈을 보자마자 아이는 눈 속에 파묻힙니다. 손과 발이 얼어붙고 추워 얼굴이 빠알갛게 변했어도 아이는 마냥 신이 납니다.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기 때문이지요.

▲ 눈 내린 동구릉의 오솔길을 거니는 것은 행복하다.
ⓒ 이종원
겨울에 산책하기 좋은 곳을 뽑으라면 저는 왕릉을 권한답니다. 특히 흰 눈이 덮힌 오솔길을 거닌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진답니다.

동구릉은 55만평이 넘을 정도로 크지만 만난 사람은 고작 10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지요.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천국입니다. 그 넓은 공간에서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큼직한 눈사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동구릉 가는길

1. 입장시간 : 9시-5시30분. 월요일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2. 입장료: 개인 5백원/주차비 2천원

3. 자가용

1) 서울시내에서 망우리 고개를 넘으면 교문사거리가 나옵니다. 좌회전해서 퇴계원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동구릉 주차장이 나옵니다.
2) 중부고속도로 구리IC에서 구리시로 들어와 인창동으로 빠져나가도 됩니다.
3) 서울 시내 - 망우리 고개 - 교문사거리 - 퇴계원 방향으로 진입해도
됩니다.

4. 대중수단

1) 강변역에서 1-1번 버스가 운행됩니다.
2) 1호선 청량리역(35분 소요), 7호선 상봉역(20분 소요)에서 5번, 22번 좌석버스가 있습니다.
동구릉에 몇 군데 아름다운 길이 있답니다. 현릉에서 목릉가는 길과 휘릉에서 원릉 그리고 경릉 가는 오솔길이 참 좋습니다. 500년 동안 이어왔기 때문에 숲이 무성하거든요. 나무를 조금 흔들어 대면 눈가루가 휘날린답니다. 그 사이를 뚫고 걸어 보십시요. 왕이 된 느낌이 들겁니다.

동구릉은 풍수지리상 절묘한 곳이랍니다. 왕이 묻혔으니 당대 내로라하는 풍수학자들이 능을 잡았겠지요. 특히 영조의 '원릉'이나 헌종의 '경릉'에 올라가서 주변 산세를 둘러보세요. 이곳이 완벽한 풍수지리의 교과서임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저 멀리 검단산도 희미하게 보이고 왕숙천도 변함없이 흘러갑니다. 오죽했으면 명나라 사신도 천작지구(天作地區) 즉, '하늘이 만든 땅덩이'라고 극찬했겠습니까?

태조가 능지를 정하고 근심을 버렸다고 하여 '망우리(忘憂里)'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지금도 망우리 고개를 넘으면 '근심을 버리자'라고 결심을 해봅니다. 잊는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일깨워 줍니다.

▲ 태조의 신도비. 왕릉의 신도비는 태조와 태종의 신도비 밖에 없다.
ⓒ 이종원
역시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능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지요. 이곳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입니다. 저 앞 아파트촌이 눈에 거슬리지만 정말 아늑한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태조의 건원릉은 북한정맥의 정혈에 해당한답니다. 건원릉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측에 후손들이 자리잡고 있지요. 이를 보면 이씨 왕조가 500년 동안 줄줄이 후손을 거느린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건원릉
ⓒ 이종원
맨 앞에 보이는 붉은 문이 홍살문이지요. 신성함을 알리는 표시랍니다. 홍살문 우측에 네모난 곳이 바로 '배위(拜位)'랍니다. 배위는 왕이 제사를 지내러 왔을 때 이곳에서 조상께 절을 하고 들어가는 곳이지요.

홍살문을 벗어나면 박석길이 보이지요. 그걸 '참도(參道)'라고 한답니다. 자세히 보면 두 단으로 되어 있어요. 오른쪽 높은 길은 귀신의 길이고, 낮은 길은 왕이 걷는 길이지요. 그리고 그 뒤를 신하가 따르지요.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정자각(丁字閣)'이랍니다. '정(丁)'자 형태의 건물이지요. 이곳은 제례의식이 거행되는 곳이랍니다. 사실 정자각은 알고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답니다. 중국의 황제능은 위패를 모시는 건물이 일장형의 지붕을 하고 있거든요. 조선은 중국과 달리하려고 '정(丁)'자 형태 건물을 지은 것이죠. 중국의 압력을 받은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 지난 번 갔던 고종, 순종황제의 '홍유릉'은 황제 능이랍니다. 따라서 그곳은 정자각이 아니라 일반 궁궐 건물 모양을 하고 있는 '침전'이라고 부른답니다. 황제의 권한은 미약하지만 죽어서는 황제의 능제를 따른 것이지요.

▲ 태조 이성계의 봉분. 12각의 화강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다.
ⓒ 이종원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입니다. 조선왕조 중 유일하게 떼가 아니라 억새풀을 심었지요. 고향 함흥의 억새풀로 마지막 옷을 해드렸다는 전설이 있지요. 억새풀은 일렬로 릴레이를 해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 귀면과 호석들
ⓒ 이종원
석호는 능을 수호하는 수호신이랍니다. 석양은 사악한 것을 피한다는 의미와 함께 명복을 비는 뜻을 담고 있지요. 각각 4기가 밖을 향해 능을 수호하고 있답니다.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민화풍에 나오는 해학적인 얼굴을 하고 있네요.

▲ 혼유석
ⓒ 이종원
봉분 앞엔 상처럼 생긴 것을 '혼유석(魂遊石)'이라 합니다. 즉, 임금의 혼이 노는 곳이지요. 일반인들은 봉분 앞에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지만, 혼유석에는 제물을 차리지 않고 아래 정자각에서 상을 차리지요.

즉, 죽은 임금은 혼유석 위에 앉아 저 밑의 제사를 지켜보는 겁니다. 혼유석 아래 귀면 모양의 고석이 혼유석을 바치고 있지요. 험상궂은 얼굴의 귀면은 사악한 것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새겨놓은 것입니다. 건원릉은 5개인데 세종의 영릉부터는 4개랍니다.

▲ 건원릉의 문인석과 무인석
ⓒ 이종원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재미는 바로 이 문인석과 무인석을 보는 재미지요. 왕의 일생을 반영하듯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성계가 무인임을 반영하듯 무인석을 씩씩하게 만들었더군요. 이때만 해도 고려 석공의 맥이 이어졌나 봅니다. 웅장한 맛을 느끼거든요. 후반기로 넘어갈수록 석물들은 조잡스럽게 변한답니다.

▲ 건원릉의 석물들
ⓒ 이종원
어떤 것은 비장한 표정을 하고, 어떤 것은 입이 찢어져라 울고 있으며, 어떤 것은 슬피 울고 있답니다. 심지어 경릉의 무인석은 총탄 자국까지 있어 슬프게 만들지요.

▲ 제 아들 성수가 눈 속에서 자고 있어요
ⓒ 이종원
오래 걷고 눈 속에서 실컷 놀아서 그런지 아이가 피곤한가봐요. 졸려서 짜증을 내더군요. 그 무거운 아이를 안고 걸었습니다. 하도 힘들어서 벤치에 누이고 잠깐 쉬었답니다.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가 제 가슴에 전해집니다.

눈이 오면 동구릉을 거니십시오.
빈 겨울들녘에서 텅 빈 충만을 얻어올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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