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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게임에도 능하고 운동도 잘 하는 프로기사에게 '무엇이 제일 재미있는가' 물었습니다. 세상 모든 '재미'의 고수인 그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하면 뭐든 재미있고, 싫은 사람과 하면 뭐든 재미없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맞는 동료와 협력하면 힘든 일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맞는 정도를 넘어 배울 점이 많은 동료와 함께 일한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2003년에 담임을 맡지 않고 한 교과를 전담했습니다. 서울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그렇듯이 내가 일하는 학교에도 교과전담 교사들의 교무실(교담실)이 따로 있습니다. 교과를 전담하는 교사는 담임교사와 달리 교실이 없으므로 수업 후 교무실에서 온 종일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1년을 한 방에서 같이 지낼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은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지난 학년 초에 박 선생님과 1년을 함께 지내게 된 사실을 알고 내심 뜨악했습니다. 2003년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시는 대선배이시라 어려운데다가 워낙 말씀이 없고 우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서 까다롭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박상연 선생
예상대로 말씀이 적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데는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피곤할 때 좀 편한 자세로 쉬고 싶어도 자세가 항상 반듯한 대선배님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 선생님과 한 방에서 지낸 일년이 큰 행운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선생님이 앞의 프로기사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그분에게 배운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봉사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의 봉사하는 삶을 안 후부터 박 선생님은 제 가슴속에 선배를 넘어 스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어느 날, 박 선생님이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습니다. 박노자는 러시아인으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고 유려한 문장으로 소수자 인권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권의 책을 낸 사람입니다. 박노자 교수를 좋아하는 내가 관심을 보이자 선생님은 박 교수와의 관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96년부터 2000년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박 교수와 함께 운영했다고 합니다. 일부 악덕 기업인들의 외국인 노동자 착취는 우리사회의 치부 중 하나입니다. 96년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가 지금처럼 사회 의제로 떠오르기 전이었는데 선생님은 이미 그들을 찾아가 가르치고 돕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무런 보수도 없이 5년 동안이나 그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손수 만드신 교재들을 집에 가져다 식구들에게도 보여주었고 사진으로도 담아놓았습니다. 그런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TV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그런 분이었습니다.

기왕 박노자 교수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하겠습니다.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로 가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 빈국출신 유학생으로서 어려움을 겪는 그를 선생님께서 돕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박노자 교수를 '친구'라고 하시지만, 제가 볼 때 박 교수는 선생님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박 교수의 청으로 그의 아이들 이름을 지어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박 교수가 선생님께 보낸 편지 덕에, 그가 우리말을 우리나라의 어떤 문장가보다 잘 구사해서 우리를 주눅들게 하는 천재이지만 글씨는 초등학생 수준이란 유쾌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배운 것은 선생님의 성실함입니다.

지난 학년 초, 시간표를 짤 때 선생님은 젊은 우리보다 한 시간도 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정년 마지막 해에 법정 주당 최대 수업시간을 떠 안긴 것은 학교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수업량이 많다고 하시기는커녕 안 해도 되는 영어 특활까지 자청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든 한 시간이라도 수업부담을 덜 지고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정일텐데 선생님은 남다르셨습니다. 공인의 복무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는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해외 근무도 하셨고, 88올림픽에는 자원봉사로 훈장도 받으셨으며, 웬만한 원서는 사전 없이 읽는 분이지만 환갑을 넘기신 나이에도 영어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양서를 읽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후배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세 번째 배운 것은 겸손하신 삶입니다.

작년 3월 초 '교담실' 청소는 아이들을 시키지 않고 우리 손으로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교사들끼리 쓰는 방을 아이들에게 청소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청소할 때마다 젊은 우리보다 더 하려 하시고, 가장 구저분한 쓰레기 버리기는 꼭 선생님께서 맡으려 하셨습니다. 선배로서 혹은 원로교사로 대접받기를 절대 거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나가거나 들어갈 때 언제나 먼저 문을 열고 비켜서서 남을 먼저 들고나게 하여 후배들이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겸손한 자세가 몸에 배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특히 내가 깊이 느낀 것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겸손한 자세에 대하여 나만 아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탁구 실력이 비슷해서 선생님과 탁구를 친 적이 있는데 공이 튀어나가면 공이 어디로 가던지 선생님이 주우려고 하셨습니다. 탁구를 치는 사람은 공 줍기가 얼마나 귀찮은지 압니다. 바로 제 앞에 떨어진 공도 선생님이 주우려고 다가오셨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떨어진 공의 2/3는 선생님이 줍고 저는 1/3만 주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들은 저 자신을 비춰보고 성찰하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10년 후의 내 모습도 선생님 같아야 할텐데'하는 걱정과 동시에 교장을 안 하고 평교사로 정년퇴직을 맞아도 선생님처럼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 손자와 한때를 보내고 있는 박상연 선생
네 번째는 공과 사를 어디까지 가려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지난 12월 선생님 병가(끊임없이 말을 해야하는 영어교과를 맡으셨는데, 그 때문인지 성대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셨습니다) 중에 학교에 나오신 적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안 보이셨습니다. 점심을 나가서 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교직원들은 아이들과 같은 급식을 받고 같은 급식비를 내는데 선생님은 병가 중이라서 급식비를 안 내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하실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 급식비 납부여부를 따져보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나도 공과 사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박 선생님처럼 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공무원들이 선생님의 반만 따라 갔어도 우리 나라의 부패지수는 많이 낮아졌을 것입니다. 특히, 정치인 중에 선생님처럼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으면 오늘의 정치권이 이런 비참한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른 지방에도 있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강원도에는 '밤에 봐도 선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의 이 말을 들으면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겠거니 어렴풋이 이해했습니다. 이제 내 나이 50이 넘어 그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바로 그 선비이셨습니다.

선비는 학문과 덕행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선비'에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란 뜻도 있습니다. 교장이 벼슬이라 한다면 그런 벼슬마저 하지 않으셨으니 틀림없는 선비이십니다.

누가 있거나 없거나 언제나 어디서나 푸른 대나무 같이 곧은 선생님의 삶의 자세는 바로 그 '밤에 봐도 선비'이십니다.

어떤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가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내 교직 30여 년 동안 그들의 노래가 옳다고 느끼게 해준 선배는 많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그들의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 선배님입니다.

선생님은 평생 교단에 서기로 작정한 후배들에게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년을 맞을 수 있다면 평생을 교단교사로 서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평교사의 아름다운 모습,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선생님을 아는 평교사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2004년 2월 26일 평생을 교단에 서신 공으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을 끝으로 교단을 떠나십니다. 존경받는 원로가 귀한 교육계입니다. 교장이나 교육감을 지냈다고 다 원로는 아닙니다. 선생님처럼 뒷모습이 아름다운 분이 진정한 원로입니다. 교육계 원로이신 선생님에게 저희 후배들이 배울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통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40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때문에 지난 1년이 행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달 말 서울 사당초등학교 재임을 끝으로 정년퇴임하시는 박상연(64) 선생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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