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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최북단에 위치한 예덕의용소방대(대장 이재율, 이하 예덕소방대)가 산불진화에 효과적인 소방 장비를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 지난달 27일 자체시연을 마친뒤 예덕 소방대원들과 방문한 의용소방대 연합회, 소방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장선애
소문을 듣고 찾아간 예덕소방대 차고에는 머리에 10마력짜리 경운기 엔진을 얹고 8자형으로 가지런히 감긴 농약용 호스가 측면을 장식한 소방차가 있었다.

“3년 전이었던가요? 오추리에 산불이 났는데, 농경지라 소방차 접근이 어려워 갈퀴로 끄다 경운기 약줄을 이용하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대원들끼리 모여 아이디어 회의하고 몇차례 실험을 거쳐 장비를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김정호 대원은 소방서를 비롯해 효율적이고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인정받은 산불진화용 소방장비 탄생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산불소방장비를 만드는데 가장 큰 문제는 ‘수압’이다. 농촌에서는 이른바 ‘약줄’로 불리는 호스가 500m길이로 물길을 내주면서도 15m의 수압을 낼 수 있는 비결은 간단했다. 300m까지는 13㎜관으로 가다가 나머지 200m는 10㎜관을 연결해 떨어지는 수압을 보완해 낸 것.

기존의 소방장비 호스로는 100m이상 가면 수압이 딸려 산불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히 획기적인 개발품인 셈이다. 또 이 호스들은 모두 50m단위로 끊어져 메고 뛸 수 있게 해 놓았다. 산에 오른 뒤 연결하는 방식을 택하는 등 효율성을 높이는데,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놓았다.

예덕소방대의 아이디어 뱅크인 김 대원은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농사를 짓는 대원들이라 농기계 원리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게 큰 힘이 됐다”고 설명한다. “회의를 하다보면 기술적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곤 했다”고.

대원들이 모여 생각을 모으고 미리 예상되는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 16절지에 연필로 여러 번 지웠다 다시 그린 설계도는 장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오류를 줄여줬다. 거기다가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하고 있는 일들의 전문성이 큰 도움이 됐다.

▲ 이상운 기술지원반장이 장비제작에 참여해 용접을 하고 있다
ⓒ 장선애
특히 농기계센터를 운영해 기술지원에 가장 힘을 많이 보탠 이상운(기술지원반장) 대원이 제작과정에서 큰 몫을 차지했다. 제품개발에 발동이 걸린 대원들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굵기가 가는 호스를 엉키지 않게 ‘8자형’으로 감기 위한 보조 장비도 만들었다. 흔히 관창이라고 부르는 분사 노즐도 두 개로 나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절단기 등 화재 진압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소방차에 가지런히 실려 있다.

언제 어디서든 출동할 수 있는 정비체제다. 이런 준비성 덕분에 지금까지 예덕소방대관할 마을인 몽곡, 상몽, 오추, 호음리는 작은 불을 신속히 꺼 대형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은 사례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완전한 준비를 해 놓고도 두 달 전 상몽리 주택화재가 났을 때 소방서 차가 출동해서야 꺼야했던 사건은 지금도 대원들의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있다. 빈약한 재정 때문에 나오는 문제였다.

동파위험 때문에 물을 담아놓지 못하고 있다보니 화재 발생을 알고 대원들이 다 모였는데 출동을 못해 발만 굴러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벼 발아기를 이용한 동파방지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한겨울에도 소방차 탱크 가득 물을 늘 담아놓을 수 있게 된 것. 이 차량은 전염병 발생시 방역초소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장비를 개발하는데 들어간 돈은 모두 320만원. 그동안 대원들의 출동수당 적립금으로도 부족해 각자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머리를 짜내 장비를 만드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인데다 경제부담까지 스스로 떠안으니 그 사명감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던 기자는 바로 머쓱해지고 말았다.

“의용소방대는 사명감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이웃집에, 우리 마을에 불이 났는데 끄는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걸 좀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해 보자는 것이지요. 사명감에 앞서는 공동체의식이 의용소방대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대원들의 바람은 인근 소방대도 이런 시설을 함께해 산불이 났을 때 여러 소방대가 모여 효과적으로 화재진압을 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제작비는 원시적인 산불진화방법으로 발생하는 인건비 지출을 생각하면 오히려 경제적인 것이라고.

▲ 소방차 한대에 이렇게 많은 소방장비들이 들어갈 수 있다니. 이 가운데는 대원들이 직접 제작한 물품들이 상당수 있다
ⓒ 장선애
30대부터 50대까지, 22명의 대원들로 이뤄진 예덕소방대

한겨울에도 5일에 한번은 모든 장비를 반드시 점검하고 자체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각 분반활동을 해내는 사람들. 심지어는 윷놀이를 하자고 모인 날에도 훈련을 먼저 하고 놀 정도다.

예덕소방대는 현재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제작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의용소방대가 대단한 홍보를 한다거나 해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구요, 그저 기록을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도 소방대 사무실에 가면 우리 아버지가 활동하신 기록이 있어요. 그런 기록들을 이어나가는데 우리세대에 맞는 방식인 홈페이지로 하려는 것뿐입니다”

농사일에 소방대 활동까지 고단한 일상에 무슨 홈페이지 제작인가 하는 의구심에 대한 응답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런 답변이었다.

김정호 대원은 인터뷰 내내 이재율(56) 대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원들이 의견을 내고 성가신 주문을 해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받쳐주는 대장의 개방적인 성향이 예덕소방대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라고.

소방대 초창기인 1981년부터 20년이 넘게 활동을 해온 이 대장은 지난 2000년부터 예덕소방대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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