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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에 납치된 김선일씨가 살아있을 것으로 추측보도한 23일자 초판 일간지들. 이중 일부는 인쇄시간을 늦춰가며 기사를 수정했으나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은 수정하지 못한채 집으로 배달됐다.
ⓒ 오마이뉴스
수정...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은 서울지역에 배달되는 마지막 판에 「피랍 김선일씨 끝내 피살」, 「김선일씨 끝내 피살」, 「김선일씨 피살... 시신확인」, 「김선일씨 처형됐다」 등의 제목으로 김씨의 피살 소식을 23일자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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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무장 저항세력의 김선일씨 살해사건과 관련해 언론들이 정부의 정보부재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가운데, 언론 역시 확인되지 않은 무분별한 보도로 국민의 혼선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국민들은 23일 새벽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에 의해 끝내 살해되자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대부분 언론은 김씨가 피살된 시간에도 ▲협상시한 연장 ▲생존확인 ▲석방협상 진전 ▲곧 석방 가능성 등으로 보도하며 낙관을 점쳤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살아있다"가 1시간만에 "살해당했다"로 돌변

그러나 국내 주요언론들은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가 김씨 시신이 발견됐다는 속보를 내보낸 사실이 국내에 알려진 23일 새벽 1시45분(한국 시간) 직전까지도 "살아있다" "석방협상 급진전" 등을 되풀이했을 뿐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미군 군의관의 추정에 따르면 김씨는 22일 오전 8시~9시께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전날 저녁 메인뉴스는 물론, 김씨 피살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1시간 전인 마감뉴스에서조차 김씨 생존이 확인됐다는 보도를 대거 내보냈다.

일례로 22일자 SBS 마감뉴스 <나이트라인>의 경우 총 19개 꼭지 중 김씨 피랍이나 이라크 관련 꼭지가 11개를 차지했다. 그중 김씨 석방활동과 관련한 꼭지만 해도 10개에 달한다. 대부분을 김씨 관련 소식에 할애한 셈이다. 하지만 이중 김씨가 살아 있다거나 곧 풀려날 것이며 정부가 인질범과 물밑접촉에 들어갔다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돼버렸다.

그 제목을 보면 ▲알-아라비야 TV "납치법 협상시한 연장" ▲정부, 인질범과 물밑접촉 시작 ▲경호업체 "김선일 씨 생존 확인" ▲이슬람 '울라마'도 석방 호소 ▲김천호 사장 "인질 풀려날 것" ▲정부, 석방외교 총력전 ▲김선일씨 석방 전망은? ▲김선일씨 가족들, 초조 속 안도 ▲미국 "이라크 인질 즉각 석방하라" ▲ 요르단 정부, 김씨 석방 지원 약속 등으로 김씨 석방을 예고하는 듯한 모습이다.

▲ 방송3사 22일 마감뉴스의 톱기사. 김씨가 이미 피살된 시간이지만 방송사들은 김씨 생존을 강조하고 있다. 왼쪽부터 KBS, MBC, SBS 마감뉴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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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마찬가지다. 22일 오후 6시30분께 발행된 다음 날짜 초판 각 1면 톱 제목은 거의 비슷하다. 모든 신문이 톱으로 김씨 생존 소식을 다루며 석방협상이 전전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목을 보면 「김선일씨 살아있는 듯」(조선일보), 「"김선일씨 신변 안전한 듯"」(동아일보), 「"김선일씨 생존" 주장」(한겨레), 「"김선일씨 살아있다"」(경향신문), 「김선일씨 석방협상 급진전」(서울신문) 등으로 대부분 김씨 생존을 확신하는 보도태도를 취했다.

이런 혼선은 아랍에미레이트연방공화국 두바이에 위치한 아랍 위성채널 <알 아라비야> 방송이 22일 오전 7시(한국 시간)에 방영한 '협상연장' 오보 때문에 가중됐다. 이 방송은 이날 자막을 통해 "한국인을 억류중인 납치범들이 요구시한을 연장했다"고 보도했다.

<알 아라비야>는 김씨 석방노력을 전개중인 중재자의 말을 인용, "납치범들이 요구시한을 연장했으며 인질 처형도 미루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방송은 그 중재자의 구체적인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신문 가판 대거 오보... 방송 특보체제로 만회

그러나 김씨 피살 사실이 확인되면서 신문과 방송은 급변했다. 23일 새벽 1시44분 <연합뉴스>가 「<긴급> 이라크 저항단체, 김선일씨 처형 <알자지라>」란 긴급뉴스를 타전하면서 신문·방송사들은 보도방향을 긴급 선회했다.

신문은 새벽 2시께부터 급히 자사 인터넷사이트에 김씨 살해 소식을 톱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방송은 새벽 2시께 '특집뉴스'를 긴급 편성했다. 인터넷한겨레는 새벽 1시49분께 관련 소식을 빠르게 올렸다.

방송3사와 YTN, MBN 등은 긴급 자막과 함께 23일 오전까지 특보체제를 가동했다. 이들 방송사들은 김씨 살해 소식과 배경, 정부 입장, 가족의 오열, 국민들 반응 등을 전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SBS는 23일 새벽 1시45분께 「알자지라 "김선일씨 피살된 듯"」이란 자막을 가장 먼저 내보냈다. 이어 새벽 1시54분께 신우선 앵커의 진행으로 특보체제에 들어갔고 오전 9시45분까지 뉴스특보를 방송했다.

KBS는 자막은 SBS보다 다소 늦었지만 새벽 1시53분 가장 먼저 특보체제에 돌입, 오전 10시까지 8시간 이상 특집뉴스를 내보냈다. MBC도 자막특보와 함께 새벽 2시2분부터 신동진 앵커 진행으로 오전 8시까지 뉴스특보를 전했다. 23일에는 오전 9시부터 10시15분까지 다시 특집뉴스를 편성하기도 했다.

일간지들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조간 신문의 경우 이미 23일자 가판에 '살아있다'고 일제히 보도한 상태에서 배달판 오보를 최소화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일부 신문사는 서울지역 배달판 마감시간인 새벽2시에 임박해 살해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사교체를 아예 하지 못한 곳도 있다. 제작인력이나 인쇄시설이 갖춰진 신문사들은 마지막 기사교체 시간을 기다렸다가 1∼2시간 인쇄시간을 늦춰 새벽 3시가 넘어서 최종 배달판을 찍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과 스포츠신문은 서울지역에 배달되는 마지막 판에 「피랍 김선일씨 끝내 피살」, 「김선일씨 끝내 피살」, 「김선일씨 피살... 시신확인」, 「김선일씨 처형됐다」 등의 제목으로 김씨의 피살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사설도 긴급 교체했다.

조선일보 판매지원국측은 "서울과 인천 등 일부 수도권 지역은 제대로 배달됐는데 나머지 지역은 여건상 '살아 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은 마지막 배달판까지 「"김선일씨 살아 있다"」, 「"김씨 곧 석방 가능성"」 등의 제목의 오보가 그대로 나갔다. 인쇄시설 등 제작여건과 배달체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이들 신문은 가정용 배달판에 오보를 실은 채 새벽 2시 이후 바뀐 상황을 인터넷 등을 통해 반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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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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