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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 축하해~"
"응~ 고마워~ "
"기집애~ 시집 제일 늦게 간다더니만 이렇게 빨리 가냐?"
"호호호. 원래 늦게 간다는 얘들이 시집하나는 진짜 빨리 가잖아. 뭐가 그리 급한지~ 호호호."

친구들과 가족들 친지들에게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2002년 4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여러 친구들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저의 싱글 퇴임식은 이루어졌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저보다 더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몇몇 있었기에 부케며 신부 선물이며 이런 거는 아무 문제없이 준비했지만, 문제는 신랑 친구들이었습니다.

스물 다섯 살 신랑은 남자치고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는 터라 신랑쪽 친구들 가운데 첫 번째로 탄생하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 경험이 없던 신랑 쪽 친구들은 우왕좌왕하며 정신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신랑이 껴야 할 흰 장갑이며 양가 부모님과 신랑 가슴에 꽂혀져 있어야 할 꽃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식이 시작되기 바로 몇 분 전에 허겁지겁 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볼 친구도 즉석에서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어이없음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자로 뽑힌 친구는 저도 잘 아는 신랑의 고향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를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구요. 솔직히 그 친구는 사회를 보기에는 성격이 좀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식은 시작되었고, 신부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부입장~"이라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맞춰 전 친정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한 서너 발자국을 떼었을까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속만 썩이던 큰 딸을 얼른 보내버리고 싶으셨을까요? 친정 아버지의 발걸음이 점점 빨리지는 거였습니다.

"아빠… 조금만 천천히 가요. 아빠~ 아빠~"

친정아버지도 너무 긴장을 하셨는지 제가 속삭이는 말이 들리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거의 경보하다시피 해 아버지는 저를 신랑에게 인계를 하셨고, 양가 부모님의 촛불점화식을 끝낸 뒤 주례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주례사를 시작한 순간 제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반지!'

반지를 챙겨오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사회 순서 중간에 반지 교환식이 있는데, 정작 중요한 반지가 없으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저는 재빨리 신랑에게,

"자기야! 반지 안가져왔어. 어떡하지?"
"뭐? 그냥 넘어가자."
"사회자가 반지 교환하라고 말할텐데 그땐 뭐라고 해?"
"어떡하지. 잠깐만 내가 그럼 반지 없다고 사인을 보낼게. 그럼 지가 알아듣겠지."
"그래…. 그렇게라도 해."

지금 생각해보면 주례 선생님도 좀 어이가 없으셨을 겁니다. 한참 잘살아라 행복해라 주옥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정작 경건하게 들어야 할 두 신랑 신부가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리며 딴짓을 하니 말입니다.

남편은 주례 선생님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사회를 보는 친구를 보고 반지가 없으니 그 순서는 빼라고 나름대로의 사인을 열심히 보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사회자가 알아차렸는지 알았다고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지어보이더군요.

저희는 그래도 알아들어서 다행이다라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그 친구가 이번에는 주례선생님께 입을 벙긋벙긋 거리며 손을 옆으로 '휘휘~' 젓더군요. 주례선생님은 주례 말씀을 하시면서 눈을 사회자에게로 흘깃흘깃 거리더니,

"사회자가 주례를 빨리 끝내라는 사인을 보내는군요. 뭔가 급한 일이 있나 봅니다. 그럼 여기서 주례사는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신랑신부 앞으로 행복하게 사세요."

라며 주례를 끝내버리셨습니다. 그렇게 신랑과 사회자와 주례선생님의 서로 어긋난 사인으로 인해 저희들의 결혼식은 그 결혼식장 설립후 최초로 7분만에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회본 친구는 저희 신랑이 반지를 안 가지고 왔다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손을 흔들자 그걸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라는 신호로 알아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결혼식이 끝난 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주례사는 딱 2분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다른 결혼식처럼 주례사가 길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고 좋더라~"

사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몇몇 결혼식에 가보면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가 조금 길어 지루할 때가 있긴 했었거든요.

"끝으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당부를 드리자면…."

이렇게 끝낼 것 같으면서 끝내지 않은 주례사. 다른 분들도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아무튼 그 신랑 친구 덕분에 7분만에 끝난 결혼식으로 업적에 길이 남을(?) 만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결혼에피소드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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