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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다. 주 5일제 근무라서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학교에 갔다. 아내도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한문 공부한다며 도립도서관에 갔다. 아내가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쉬고 싶었다.

나 홀로 집에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일까. 나는 아늑함에 빠져들었다. 굳이 옷을 갖춰 입을 필요도 없다. 밤새 입었던 속옷이면 어떠랴. 아무도 보는 이가 없지 않은가. 나는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레 리모콘에 손이 간다. 나는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별로 볼만한 프로가 없다. 나는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역시 볼만한 게 없다.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신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찍부터 나만의 프로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MBC의 <제5공화국>이 그것이다.

나는 어제 밤늦게 <제5공화국>을 보았다. 물론 재방송이었다. 전두환으로 나오는 이덕화가 연기를 제법 잘한다. 전두환은 하나회의 리더로 박정희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다. 최규하가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김영삼도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그런데 갑자기 색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이다. 내가 그 인물에 주목하는 건 그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보안사령관으로서 그는 박정희의 특명으로 '윤필용 사건'을 조사한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하나회의 실체를 밝혀내고 전두환을 조사하게 된다. 그게 악연이 되어 훗날 그는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가게 된다.

바로 이 대목이다. 내가 삼청교육대에 주목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1980년이었다. 나는 그때 의정부 근처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아마 8월쯤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버스로 왔는지 군용트럭으로 왔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민간인이 부대 내로 들어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우리 막사를 다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낮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도 깎았다. 그날부터 곧바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주로 P.T 체조를 했다. P.T 체조는 유격훈련 받을 때 주로 하는 운동이다. 그만큼 힘든 체조였다.

물론 P.T 체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봉 체조도 많이 했다. 봉 체조를 할 때는 곧잘 웃옷을 벗었다. 그들은 대부분 몸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다. 10대에서 7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훈련은 우리 부대에서 맡았다. 조교도 우리 부대원이었다. 우리 소대에서도 선임하사와 몇몇 병사들이 조교로 차출되었다. 나는 군대생활이 짧다는 이유로 조교에서 배제되었다.

첫날부터 훈련은 가혹했다. 그들 중에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키가 작고 왜소했다. 그가 배낭을 메고 연병장을 돌았다. 뛰는 게 아니라 걸었다. 그런데도 몹시 힘들어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한여름이라서 얼마나 더웠겠는가.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배낭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고 했다. 밤에도 그는 연병장을 돌았다.

그날부터 그들은 군인이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했다. 얼마 후 그들만을 위해 새로운 막사가 지어졌다. 그들은 매일 군가를 불렀다. 이따금씩 조교로 차출되었던 고참 선배들이 부대를 찾았다. 그때마다 고참들은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표정은 어두웠다. 부대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곤 했다.

나는 멀찍한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내면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화장실에서나 소각장에서 그들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몸을 푸르르 떨곤 했다. 그들로서는 군인이 그렇게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는 인간이 아니었다. 단지 짐승일 뿐이었다.

벌써 25년이 흘렀다. 나는 어제 <제5공화국>를 보며 삼청교육대를 떠올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이러할진대 당사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사회악 일소'라는 미명하에 그들의 인권은 그렇게 짓밟혔다.

나는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러나 <제5공화국>을 재방송하는 곳은 없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독서나 할까보다. 나는 책장에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란 책을 꺼낸다. 정약용의 눈물이 그 책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나는 왜 아픈 역사만 찾고 있을까? 삼청교육대도 그렇고, 정약용도 그렇고. 내 눈에 물기가 촉촉이 배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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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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