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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에 매달린 은행들의 모습! 마치 포도송이처럼 많이 열렸습니다.
ⓒ 이규현
모처럼 연휴인데 편히 누워 상념에나 잠겨 볼까 했더니 집안정리를 도와달라는 아내의 말에 아침부터 몸을 움직입니다. 이것저것 치우고 정리하다 보니 마당에 은행이 가득합니다. 올해는 은행이 풍년이네요. 작년에 은행나무에 매달려 있던 은행들은 별로였는데 지금 보니 절로 떨어진 은행도 엄청난데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은행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떻든 저 일도 놔 둬봐야 좋을 일도 아니고 이왕 묻힌 김에 정리하고 가자는 마음이 앞섭니다. 하여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두 아들을 불러 세웁니다. "가자! 은행 털러!"

"아들들아, 가자! 은행 털러!"

아이들도 공부에서 해방되어 모처럼 즐거운 게임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은행을 털자니 어리벙하다가 하는 수 없이 장갑을 끼고 나섭니다. 비닐봉지에 정신없이 주워 담기 시작하는데 벌써부터 구린내가 난다고 작은 녀석은 구시렁댑니다. 바닥엔 풀도 많아 그 사이로 온통 은행천지인데 은행을 줍는 건지 뭐하는 건지 그저 다 짓밟아 놓고 다니기만 합니다.

그래도 큰 애는 조금 더 컸다고 그런지 제법 어른스럽게 "이 바닥에 있는 은행 다 주우려면 30분이면 될 거다"하면서 투정을 부리는 작은 애를 나무랍니다.

짓이겨진 은행들로 인해 구린내는 진동하는데 왜 이리 냄새가 나느냐며 다시금 질문하는 작은 애에게 은행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나무라고 이야기 하니 못 알아 듣습니다.

▲ 잠간 동안 은행을 주워 모으니 이렇게 큰 대야에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구린내 난다며 피하지만 저는 풍성한 가을을 수확한 기쁨에 오지기만 합니다.
ⓒ 이규현
큰 애가 그래도 고등학생이라고 은행이 화석식물이라며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이 먹은 나무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용문사의 은행나무라고 합니다. 수령이 무려 1100년이나 된다는 이 나무는 나무라기보다는 이미 신입니다. 그 많은 세월들을 살아오면서 지켜보았던 많은 일들을 나무는 알고 있겠죠. 한번쯤 그 나무에게 찾아가 두 팔 벌려 안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은행나무는 우리의 역사를 나에게 말해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우리 집의 은행나무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은행나무는 할아버지께서 원래 다른 곳에 심으셨던 것인데 아빠가 고향으로 들어와 살겠다고 하니까 고향에 들어온 기념으로 여기에 아빠랑 같이 옮겨 심은 거란다. 그러니 이 나무의 수령이 몇 년이나 될까?" 큰 애는 30년 정도 될 거 같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정도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아버님과 함께 심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저렇게 세월 흘러 30년이 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아빠가 어렸을 때..."

그렇게 제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다시 옮겨진 은행나무는 매년 풍성한 결실을 맺어주었고 몇해 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생전에 가끔 저희 집으로 오셔서 같이 은행을 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단지 은행을 털었던 것만이 아니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이제야 늙은 애비 심정 이해하는 철없는 아들 녀석과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는데 저에게 이렇게 늘 바라볼 수 있는 나무를 심어준 아버님의 마음에 지금도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의 은행나무는 마을에 일이 있을때마다 나무에서 피를 흘려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신령스런 존재입니다.
ⓒ 이규현
이야기는 어느 덧 공자의 행단에 관한 고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기에 향교에 가면 꼭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나무 하나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우리 선조들은 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보니 대를 이어 은행을 털고 있는 내 자신이 보입니다. 이렇게 내가 보인다는 게 벌써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되는데 수염까지 흰털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아빠 흰수염있다"고 놀려대는 아들들의 목소리가 정신차리고 살아라는 듯 귀청을 울립니다.

그러다가도 바람결에 절로 떨어지는 은행이 머리통을 맞추자 누가 자기 머리를 때리냐며 난리입니다. 햇살 가득한 가을날의 정겨운 풍경을 아들들에게 선물하니 이제 애들도 나처럼 크면 이렇듯 아버지 생각하면서 향수에 젖을런지요.

"이런, 그러고보니 대를 이어 은행을 털고 있군"

▲ 저 은행나무가 바로 아버님이 제게 물려주신 나무입니다. 어느 덧 훌쩍 자라 제가 전에 살던 아래집의 스레트지붕을 훨씬 넘어 푸른 창공을 겨룹니다
ⓒ 이규현
작은 애는 잘 벌어져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석류를 보면서 입맛을 다십니다. 그런 아들 녀석의 의중을 일부러 모른 척 하면서 저는 계속하여 은행은 암수가 따로 있다고 이야기 해주면서 그래서 서로 바라만 보는 사랑을 은행나무 사랑이라 한다고 말했더니 이미 은행나무 침대 등의 영화를 통해 알고 있어 시시하다는 눈치입니다.

그래도 아빠는 너희들과 이렇게 일하고 대화 나누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늘 함께 하는 관계이고 싶다는 것을 표정으로 말해봅니다. 다들 애들 나름의 느낌들로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면서.

아직은 은행의 단풍이 물들지 않았지만 늦가을 청명한 푸른 하늘에 다 떨어지고 몇 개의 이파리만 남아 있는 은행나무의 모습이 고요한 적막 속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비가 잦은데 앞으로 날씨가 맑기만 하다면 샛노란 은행잎과 대비되는 쪽빛하늘 볼 수 있지 않을런지요.

▲ 완전히 벌어진 석류가 아들들의 구미를 자극하여 기어이 맛을 보게 합니다
ⓒ 이규현
<노오란 은행잎 하나>

쪽빛 하늘 다가 와
솜털처럼 하얀 손 내미니
수줍은 마음 붉게 물들어 단풍되어 나오네

미칠듯 푸른 하늘에
손짓하는 저 가녀린 노오란
은행잎 하나

바람도 돌아누워 숨소리조차 없는
햇빛 따사로운 한순간
모두 다 숨죽이는 그
적막의 장엄이여!


몇 년 전에 그런 풍경을 보고 슬쩍 써보았던 것입니다. 가을은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들을 늘 되새김질하도록 해주면서 살랑이는 바람결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담양저널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살맛나는 지역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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