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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협상 비준동의안'을 놓고 정부와 민주노동당, 농민단체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21일 민주노동당은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통외통위 회의실을 점거하는 등 마찰을 빚었다. 비준동의안의 연내 처리를 앞세운 정부와 여당의 문제점에 대해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보내온 긴급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주>
▲ 21일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관들이 국회 통외통위의 쌀협상 비준동의안 상정 처리를 반대하며 회의실을 점거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책 마련을 위해 모여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두식 한동대 교수의 책 <헌법의 풍경>의 부제는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이다. 지금 쓴 이 글도 헌법을 위한 변론이다. 그렇지만 김 교수의 책처럼 읽기 좋게 잘 쓴 글은 못된다.

지난 6월 대통령은 정부를 대표해 국회에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다. 물론 그것은 헌법에 따른 절차였다.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 등을 외국에 비준하려면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제60조 제1항).

헌법학은 이 조항을 "헌법이 열거한 중요 조약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라고 해석한다(김철수 교수 <헌법학 원론>). 대통령이 중요 조약에 대하여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는 것은 그의 재량 사항이 아니라 헌법적 의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번 쌀 협상 결과로 작성한 세 종류의 문서 중 한 가지만 비준동의안으로 제출하였다. 이는 위헌소지가 있는 비준동의안 제출이라고 보며 위헌소지가 없는 비준동의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할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 비준동의안 문서 3개 중 하나만 제출

쌀 협상 결과로 작성한 문서 종류 세 가지는 어떤 것인가. 우선 세계무역기구(WTO) 148개국에게 약속하려는 쌀 양허표가 있다('C/S'). 여기에는 대한민국이 2014년까지 쌀 수입을 계속 제한하는 대가로 10년간 모두 2200여만석의 외국쌀을 의무 수입하겠다는 약속도 들어있다.

다음으로 의무 수입한 쌀을 '어떻게 시중에 유통시킬 것인가'라는 방법을 놓고 미국과 중국 등 개별 나라와 체결한 합의문이 있다(이행 합의문). 마지막으로 쌀과 관계없는 사과, 배, 오렌지, 쇠고기, 닭고기, 활돔, 콩 등의 품목을 양보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맺은 합의문이 있다(부가 합의문).

이 세 종류의 합의문(C/S와 이행 합의문, 부가 합의문)은 법률적 운명을 같이 하고 밀접히 연계돼 있어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지난 5월 '국회 의사록'을 보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외교통상부 예비조사에서 양허표 비준 동의가 안 되었을 경우는 이행 합의문과 부가 합의문도 함께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국제적으로 아주 보편적으로 인정된 법적인 관행이고 법적인 해석"이라고 답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세 문서는) 1개의 패키지이기 때문에 주 내용이 날아가 버리면 부가합의 내용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들 문서를 비준동의안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렸다. 지금 상황이라면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이행 합의문과 부가 합의문 문항조차 직접 보지 못한 채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야만 한다. 이런 비준동의안은 국회 비준동의권의 본질적 내용인 심의권을 명백히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이번 비준동의안은 또 어느 조약이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국회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 별도 이행 합의문과 부가 합의문이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권이 국회에 있을까, 아니면 대통령에게 있을까.

나는 정부만 그 판단권을 배타적으로 갖고 있다고 헌법에 새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의권 행사의 주체가 국회이기 때문에 적어도 국회로 하여금 (이행 합의문과 부가합의문이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별도 이행 합의문과 부가 합의문을 국가정보원법 제3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로 분류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조차 자유로운 열람을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이 합의문을 비준동의안에서도 아예 제외했다. 비준동의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국회의 판단권을 침해한 셈이다.

별도 합의문이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 쌀협상비준 관련 3개안 가운데 2개안은 국회에서 심의조차하지 못할 지경에 놓였다. 지난 9월 10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이경해 열사 정신계승 및 쌀협상 비준반대, 서비스 사유화저지 민중결의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쌀 협상 국회 비준 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할 배타적 재량권을 정부에게만 부여했다고 헌법을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위헌소지가 있다. 정부는 미국과의 이행 합의문이 비준동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비준동의안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미국과 수입쌀 공매를 합의한 것은 양곡관리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사항으로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다.

정부가 발표한 '미국과의 이행을 위한 별도합의서'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은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수입쌀 시판과 관련된 공매 기관을 지정"하도록 했고, "공매 계획을 사전에 공표하고 공매 계획에 공매일자, 공매물량, 품질, 원산지 및 인수도 조건" 등을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당해 연도 내 공매 완료를 위하여 정기적인 공매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공매'의 의미는 한글과 영문 문항 자체가 국가기밀이어서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다만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10월 18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공청회에서 '공매'의 영문이 'auction'이라고 진술했다. 이명수 농림부 차관도 지난 5월 국회 청문회에서 "경매에서 유찰이 돼버린 것 가지고 10%나 30% 시판을 이행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런 점에서 '공매'는 '공개입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 양곡관리법은 수입쌀에 대한 공개입찰을 원칙적으로는 불허하고 있다. 양곡관리법에 따르면 정부 수입쌀은 '정부관리 양곡' 중 하나다(제2조 제2호). 양곡관리법은 정부관리양곡의 판매 용도를 관수용, 구호용, 곡가조절용, 가공용, 수출용 등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다(제9조 제1항).

아울러 정부관리 양곡의 '판매가격'은 농림부 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조 제2항), 정부관리 양곡에 대해 '공개입찰'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곡가 조절용'으로 판매하는 때만 제한하고 있다(같은 조 제3항). 따라서 시중 유통용 수입쌀에 대한 '공개입찰'을 미국과 합의한 것은 양곡관리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물론 정부가 입찰에서 수입쌀에 수입부과금(Mark-up)을 붙여 낙찰 예정가를 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낙찰 예정가는 양곡관리법의 '판매가격'과는 엄연히 다르다. 결국 미국과의 별도 이행 합의서는 입법사항에 관한 합의로서 헌법에 따라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도·이집트 쌀수입 예산 533억원... 왜 비준동의 안 받나

문제는 또 있다. 정부는 인도·이집트와의 쌀 구매 합의문이 비준 동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비준동의에서 제외했지만 이 역시 위헌 소지가 있다. 대한민국은 쌀 수입 제한을 계속할 경우 인도에서 10년간 9만1210톤, 이집트에서 2만톤의 쌀을 구매하기로 서면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식량 원조용 쌀에 대한 국제 구매가 있을 경우, 인도 및 이집트 쌀을 우선 구매한다"는 내용이라고 최종 발표했다.

그러나 국정조사 결과로는 해당 국가(인도와 이집트)의 쌀을 의무적으로 구입하되 그 용도를 '대외 원조용'으로 돌릴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쌀협상 국정조사에서 이재길 외교통상부 대사는 "식량원조를 해줄 일이 없을 때 (인도와 이집트 쌀을) 구매 안해도 되느냐"라는 특위 위원의 질문에 "저희들이 구매를 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 송기호 변호사.
ⓒ 오마이뉴스
의무 구입량 11만1210톤을 농림부가 2005년 수입 양곡대 예산편성시 사용한 수입쌀 톤당가격(460달러)으로 환산하면 533억500만원(환율 1042원 기준)에 달한다. 이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주는 조약으로 볼 수 있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농업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헌법은 농업인에게도 같은 헌법이다. 농업인에게도 헌법은 고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가 위헌성 소지가 없는 쌀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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