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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 사전 점검’이라는 행사가 있다. 아파트를 다 지은 후 준공 검사를 하기 전에 입주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살 아파트도 둘러보고 하자가 있는지 점검하는 행사다. ‘입주자 사전 점검 행사’에서 안내 일을 몇 번 했었는데, 그 때 보았던 사람들에 대해 짧게 적어보려고 한다.

직장인들이 내 집 장만을 하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보다 더 걸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서울이어서 그런지, 이 일을 하다 보면 집 두세 채 가진 사람들을 예사로 본다.

얼마 전에 있었던 행사에서 만난 부부는 그 아파트 단지에서만 세 채의 집을 분양 받았다. 한 채는 살림집으로 쓰고, 한 채는 사무실로 쓰고, 한 채는 생각중이란다.

또 다른 부부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올 수 없단다. 그 어머니는 분양받은 새 아파트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전세로 내어놓고, 자신은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만 산다고 불평을 한다. “우리가 집이 세 채가 있는데”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부모님은 50평대 큰 집을 분양받고, 아들은 다른 동의 30평대 집을 분양받은 경우도 보았다. 형제들끼리, 서로 다른 동으로 분양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들에게 주려고 미리 집을 장만해 놓는 경우도 있다. 젊은 아들과 함께 점검을 나온 어머니는 아들에게 주려고 집을 샀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 당분간은 전세를 주고, 아들이 결혼하면 그 집으로 들어올 거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이 더 유심히 집을 살핀다.

아들은 없이 예비며느리와 함께 온 시부모님을 본 적도 있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와 함께 오는 부모님들도 가끔 있다. 자식에게 분양받은 집 한 채를 안겨 주시는 능력 좋으신 부모님들, 부럽다고 해야 하나.

▲ 텅 빈 아파트 내부
ⓒ 이갑순
하지만, 이런 돈 많은 집만 있는 건 아니다. 아끼고 아껴서 집을 장만한 경우라면, 그래서 그 의미가 큰 경우에는 집안 식구들이 다 함께 온다.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들과 그 가족들까지 총 출동하여 그렇게 크지도 않은 아파트를 샅샅이 살핀다. “어머니, 여기가 세탁기 놓는 자리고요, 이건 식기세척기고요.”, “당신, 이젠 설거지 안 해도 되고 좋겠네”, “엄마, 어느 게 내 방이야?”, “아빠, 화장실이 두 개야.”, “형님, 발코니가 정말 넓어요.”, 이런 경우엔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흥분과 기쁨이 텅 빈 아파트 안을 가득 메운다.

지난 여름에 만났던 가족도 생각난다. 작은 꼬마가 있는 그 가족 역시 자신들이 마련한 첫 아파트가 드디어 다 지어졌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사실 ‘입주자 사전 점검’을 할 때쯤엔, 거실과 방바닥엔 보양지가 깔려 있고, 청소도 덜 된 상황이라 앉을 데가 없다. 새집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가족은 김밥이랑, 먹을 것을 잔뜩 싸가지고 와서는 거실에 돗자리를 펴 놓고, 하루 종일 있다가 갔다.

▲ 아파트는 이렇게도 많은데.
ⓒ 이갑순
그리고 집을 장만하고도 전세를 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30대 중반의 남자분이 생각나는데, 작은 딸이랑 함께 점검을 왔다. 이 집은 맨 위층으로 천장이 높고 다락방이 있는 집이었다. 이 젊은 아빠는 높은 천장을 보면서 거실에 누워 있으면 꼭 별장에 온 거 같을 거라고, 맨 위층이라 전망이 좋은데, 내가 보기엔 어떠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서도 그 별장 같은 집을 전세로 내어놓아야만 하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돈이 없어 전세를 놓을 수밖에 없다고. “전세 들어오는 사람들이 집을 깨끗하게 써줘야 할 텐데”라고 했다. 점검을 마치고 나오며, 자동으로 잠기는 문을 보고는 “닫으면 그냥 문이 잠기는 거예요? 저는 오래 된 빌라에만 살아서 처음 봤어요”라고 말하는데 내 마음이 괜히 짠해졌다. 그 젊은 아빠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하루빨리 자신의 첫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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