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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에취, 에취…."
"에취, 에취, 에취…."


박자라도 맞춘 듯 벽 이쪽저쪽에서 들리는 친정어머니와 나의 재채기 소리는 듣기에 따라 정겹기까지 하다. 내 재채기 소리가 멈추고도 서너 번 더 친정어머니의 재채기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어머니의 승리다.

벽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두 집, 친정집과 우리 집이다. 두 집의 아침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 어머니와 딸의 재채기.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주거니 받거니 시원하게 쏟아내는 모녀의 재채기가 졸린 아침을 후다닥 깨운다.

아침마다 나를 깨웠던 어머니 재채기

▲ 시원한 강바람도 때론 재채기의 적. 재채기 일보 직전의 어머니 모습
ⓒ 김정혜
25년 전. 어머니께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그 아침은 딱 지금처럼 이른 봄이었다. 따스한 봄 햇살을 심술 내는 꽃샘바람 탓에 가벼운 감기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걸신들린 듯 멈출 줄 모르는 재채기는 열 번을 넘기고도 좀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코가 산산조각 나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열댓 번 재채기를 연발한 내 코는 멀쩡하건만 대책 없는 현기증에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뭐 물려줄 게 없어 그놈의 모자란 코를 물려줄까."
"무슨 소리예요?"

"그 재채기 말이다. 너 새벽마다 엄마 재채기 소리 지긋지긋하다 그랬지? 이제 너도 달고 살게 생겼단 말이다."
"그럼 나도 엄마처럼 새벽마다 그렇게 재채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럴 거야. 엄마도 꼭 네 나이 때 외할머니로부터 그걸 물려받았으니까."
"재채기가 무슨 큰 보물이라고 대를 이어 물려받아요?"

학창시절. 내 아침잠을 깨운 건 새벽 미명을 가르는 호들갑스런 자명종도 아니고, 두부 아저씨의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도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였다. 밤늦도록 향학열을 불태우느라 식구들 잠든 밤을 홀로 지새운 것도 아니건만, 그때는 왜 그리 새벽잠이 달았을까.

꿀맛 같은 새벽 단잠에 바야흐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재채기는 분명 불청객이었다. 첫 번째 재채기는 눈을 뜨라는 소리요, 다섯 번째 재채기는 몸을 일으키라는 소리요, 열 번째 재채기는 이불 개키라는 소리였다.

꽃다운 18살은 재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철이 들면서인가 싶다. 이른 새벽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에 눈을 뜰 때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저렇게 아침마다 재채기를 해대는 어머니는 과연 얼마나 괴로우실까 하는. 하지만 워낙에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어머닌들 왜 고달프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어디 찢어져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고, 뼈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가 무슨 대수일까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재채기가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보다 뼈가 부러진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내가 재채기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절감할 수 있었다. 콧속에 개미라도 들어간 것 마냥 늘 기분 나쁘게 코가 간질거렸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은 또 어떠하며 열댓 번씩 재채기를 해대고 나면 하늘까지 노래질 지경이었다.

내 나이 18살 때이다.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재채기를 나 역시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때가. 무슨 큰 보물이라서 대를 이어 물려받느냐고 콧방귀를 끼었건만, 꽃다운 내 18살은 재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딸이어서 그렇듯 난 내 어머니 딸이었기에 이유 불문하고 그래야 했다. 도저히 비켜 갈 수 없는 알레르기의 유전인자는 결국 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어 그렇게 나를 찾아들었던 것이다.

▲ 어머니(맨 오른쪽)와 나(가운데)
ⓒ 김정혜
굼벵이 달인 물을 마시다

"이거 마셔라."
"으이그… 냄새! 이거 뭐예요?"

"묻지 말고 약이거니 하고 마셔둬."
"그러게 아무리 약이라도 뭔지 알고는 마셔야 할 거 아니에요?"

악문 어머니의 입은 대체 열릴 줄을 모르고,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는 두 눈에 기가 질려 약사발을 들이켰다. 쓰기는 이루 말할 수 없거니와 삼키고 한참 동안을 기분 나쁜 욕지기에 시달려야 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굼벵이와 약초를 함께 넣어 달인 물이었다.

부릅뜬 어머니의 두 눈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이킨 게 어디 그뿐이던가. 벌집 달인 물, 캐나다에 계신 이모가 부쳐주신 알로에 원액, 살구 씨에 수세미 달인 물,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껍질 달인 물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어머니의 정성은 실로 눈물겨웠다. 기왕지사 달고 살았으니 굳이 어머니는 몸 달게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이 딸자식은 그 지긋지긋한 재채기에서 꼭 해방시켜 줄 것이라 늘 호언장담 하셨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병원 문턱 높은 건 어머니나 딸자식이나 매한가지. 애끓는 모정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민간요법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어머니의 민간요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내 재채기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대물림 재채기의 정체는 알레르기성 비염

▲ 황사가 불어올 때 쯤이면 재채기가 더 기승을 부린다. 알레르기 환자에게 마스크는 필수.(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내 재채기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싶어 병원을 찾은 건 사회인이 되고서도 한참 뒤였다. 어머니 혼자 꾸리던 살림에 그나마 내 월급봉투가 우리 집 살림을 숨통 트이게 할 즈음이었다.

내 재채기의 정확한 병명은 알레르기성 비염이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란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법 또한 특별히 없다는 것도, 유전성 질환이라는 것도 그때 함께 알게 됐다.

나는 만성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즉, 내 재채기는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그 강도가 다소 심한 편이다. 또 재채기의 요인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바로 급격한 체온변화와 먼지이다.

이른 아침에 재채기를 해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침에 따스한 방에서 서늘한 밖으로 나오니 민감한 내 코가 잠자코 있을 리 만무할 터. 아침 재채기는 당연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원인을 철저히 차단하라

25년 세월.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채기에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나름대로 재채기를 방어할 해법 또한 터득할 수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무슨 뜻인가. 먼저 적을 알아야 했다. 내 적은 급격한 체온 변화와 먼지이다. 그렇다면 급격한 체온변화를 피하고 가급적 내 코를 먼지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해법은 바로 내의와 마스크와 청소이다.

▲ 서랍장의 환기는 필수. 구석구석 숨어 있는 묵은 공기를 제거하라.
ⓒ 김정혜
▲ 장농의 환기 역시 필수. 늘 상쾌한 공기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 김정혜
나는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우선 7부로 시작하는 얇은 내의를 입기 시작한다. 내의의 장점이야 구구절절 읊어대면 입 아플 터. 항상 적정한 체온유지에 내의는 크나큰 효자 노릇을 한다. 다음으로는 청소인데 바로 먼지 퇴치작전이다.

▲ 늘 닫혀 있는 싱크대 찬장. 한 점의 먼지도 용서해선 안된다.
ⓒ 김정혜
▲ 수시로 새 신문지로 갈아 주어 늘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 김정혜
구석구석 먼지부터 털어내면서 시작되는 집안 청소는 하루도 거를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하루에 서너 번씩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켜줘야 함은 세 끼 밥 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장롱이며 싱크대, 또 신발장까지 먼지 한 점 티끌 하나라도 다 적이기에 나는 늘 그들과 전쟁을 벌인다.

▲ 재채기를 피할 수 있는 쉽고도 간편한 예방책 중 하나가 바로 마스크이다.
ⓒ 김정혜
마지막으로 마스크이다. 유독 민감하고 유독 예민한 내 코. 하지만 민감하고 예민하기에 가끔 '복코' 소리도 듣는다. 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봄에 이르기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내 코는 마스크의 따스한 보호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마스크 속의 내 코를 어떤 이들은 복코라고 놀려댄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가 비바람에 한없이 약하듯 내 코 또한 마스크의 품을 떠났을 땐, 온 사방에서 침투하는 적들의 공격에 엄청난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시중에는 알레르기성 비염에 관한 약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자면, 그 약들은 잠깐 비를 가려주는 우산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치밀한 방어이다. 그 방어에 유익함을 더하려 애쓴다. 늘 깨끗한 집안, 늘 상쾌한 집안, 즉, 내 생활환경의 쾌적함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알레르기성 비염,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내 재채기는 분명 병이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내 일상을 휘저어 놓을 만큼 고약한 병이 아니어서 또한 다행이다.

또 하나 내 재채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어머니의 딸이란 분명한 증거이다. 어머니의 딸이어서 좋다. 더불어 아침이면 벽 너머에서 들리는 어김없는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가 반갑다. 십 년 뒤에도 아니 더 오래 뒤에도 이른 아침을 깨우는 건 바로 어머니와 내 재채기 소리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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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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