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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백수광부
2005년 문예진흥위원회가 뽑은 ‘올해의 예술상’ 연극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극단 ‘백수광부(백발의 미친 늙은이)’의 연극 <그린 벤치>가 다시 공연된다. 이 공연은 올해로 열 돌을 맞은 극단 백수광부의 10주년 기념 공연, 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린 벤치>는 서울연극제에서도 5개 부문(우수상 연출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무대예술상)에서 상을 받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린벤치>는 <가족시네마>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재일교포 유미리씨의 작품이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와 화류계에 몸담은 어머니, 엄청난 따돌림과 고교 중퇴 등, 유미리씨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자신의 젊은 날들을 이 연극에서도 적절히 풀어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희곡(연극)으로 풀어내며 하나하나 보듬어 안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린 벤치>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은 참 산뜻하고 날아갈 듯 가볍기까지 하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을 떠올리게도 한다. 빛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워 그늘이라곤 찾아 볼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 그러나 연극은 밝지 않다. <그린 벤치>가 주는 좋은 느낌 뒷편에, 충격적인 내용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 극단 백수광부
무대는 단순하다. 꽃들, 솜털같은 구름 한 점, 싱그런 나무와 그린 벤치가 무대의 전부이지만 부족함은 없다. 아픔, 상처 같은 말들은 숨어 있을 곳도 없는 이 작은 무대 위에서, 즉 어느 여학교의 테니스코트에서 연극은 시작된다.

딸과 아들은 테니스를 치고 있고, 엄마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가족의 즐거운 소풍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가족에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가 있다.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였다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과거를 안고 있다. 그러나 연극은 자극적인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과거가 불러온 현재의 모습에 더 관심을 둔다. 이 가족의 비정상적인 모습에, 그 속에 드러나는 상처들에, 아픔에 집중한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을 딸에게 뺏겼다 생각하고,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질투한다. 아들은 딸(누나)의 몸을 훔쳐보며, 학교에선 따돌림을 당한다. 딸은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아버지 또래의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비정상적인 가족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상처는 감히 상상조차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 극단 백수광부
이 연극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한 가족의 몸부림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도 말하는 것 같다. 당신네들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정상적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라고. 세상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는 가족도 있다고 말이다.

경쾌한 흰색으로 시작하여, 점차 점차 회색이 되어 가는 연극, 마지막엔 그 모든 것도 사라지고 핏빛이 되는 연극. 아니, 처음부터 회색이었던 연극을 흰색으로 감추고 있었던 연극, 그러나 이제는 그린색 벤치에 앉아 쉬고 싶다고 말할 것만 같은 연극이다.

덧붙이는 글 | 출 연 진
엄마 / 예수정  
딸 / 이지하
사내 / 정만식
아들 / 김도형 

공연기간 : 2006/02/23 ~ 2006/03/12 
공 연 장 :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시간 : 90 분
가격정보 : 일반 20,000원 / 대학생 15,000원 / 청소년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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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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