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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는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이런 무더위 속에는 집에서 선풍기 틀어놓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 제격. 하지만 나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아이스 박스 하나를 걸치고 더위 속으로 들어갔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일일체험으로 '아이스케키'를 팔기 위해서였다.

'아이스케키'를 판다고 맘 먹은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보가 없을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검색창에 '아이스케키'를 쳤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수의 관련 정보가 나왔다.

'아이스케키' 수배에 나섰으나...

'완전감동'을 외치며 지화자를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클릭해보니 내가 원했던 정보는 없었다. 허무하게도 그 많은 정보들은 모두 곧 개봉 예정인 신애라 주연의 영화 <아이스케키>였던 것이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결국 인터넷에서 소매점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동네 인근 빵집에 갔다. 아이스케키 소매점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보안상'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무슨 아이스케키 제조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거래하는 곳 연락처만 알려 달라는데, 그것이 무슨 보안이랑 연관이 있나. 치사하게…. 참내.,'

시작도 하기 전에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빵집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의 눈빛은 나를 경쟁업체에서 온 스파이처럼 보고 있었다.

'하긴 내가 경쟁업체이긴 하지, 나도 오늘은 아이스케키를 팔테니깐. 내가 많이 팔아 매상 팍팍 내려주마'라고 생각하며 빵집을 나왔다.

소매점 물색 실패, 결국 할인점으로

난 소매점을 찾을 방법과 시간이 부족해 결국 대형 할인점에서 개당 233원 하는 아이스케키를 샀다. 몇 개 살까 고민하다 '그래도 하루 일당은 벌어야 하지 않겠어?' 하는 생각에 덥석 40개를 사버렸다. 커피맛, 딸기맛, 단팥맛, 메론맛 등 종류도 다양하게 했다.

▲ 잔돈과 돈주머니도 챙겼고, 아이스박스엔 아이스케키가 가득. 목적지인 월드컵 공원으로 출발.
ⓒ 박종선
할인점을 나오니 아이스박스에 가득차 있는 케키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이 아이스케키가 팔리고 난 후 무거워질 주머니를 생각하니 다리가 가벼워졌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이 날은 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져 아지랑이 피어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준비 완료. 잔돈도 넉넉히 준비했고 아이스박스에 아이스케키도 가득. 이제 팔기만 하면 된다. 목적지인 월드컵 공원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갔었는데 이 곳은 매점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이스크림을 사려면 굉장히 번거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케키'를 팔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노점상들도 없었기에 나의 경쟁 상대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선정한 환상적인 판매장소. 크~~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한 개 당 233원 아이스케키, 천원에 팔기

233원에 사온 아이스케키를 '개 당 천원'에 팔기로 맘 먹었다. '너무 비싼 게 파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아이스케키 값에 얼음 값, 인건비 빼면 얼마 남겠어'라는 마음이 더 컸다.

▲ 날은 덥고, 께끼는 안 팔리고... 세수나 하고 팔자?
ⓒ 박종선
거의 뛰다시피 하며 달려온 월드컵 공원. 몇몇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근데 왜 이러지? '아이스~~케키 팔아요~'라는 말이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무관심으로 바라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은연 중에 들었다. 에잇, 내가 이렇게 소심했다니. 결국 난 아이스박스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할 뿐 어느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못했다.

땀은 비오듯 하고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던 찰나, 한 꼬마 아이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아이스크림 팔아요?"

야호! 그 아이에게 아이스케키를 팔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신기하게도 적극적으로 팔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붙잡고, 앉아있는 사람에게도 가서 시원한 아이스케키 먹으라고 말했다.

결국 월드컵공원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월드컵공원을 떠나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매점이 없다. 그곳에 가면 거의 나의 독무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이스케키' 따라 내 마음도 녹아 내리고

하지만 내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사람은 고사하고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생고생하면서 계단을 올라 왔건만.

▲ "에라 모르겠다" 아이스케키를 꺼내 먹고 있는 케키 장수.
ⓒ 박종선
'에라 모르겠다' 아이스박스를 열어 케키 하나 꺼내 먹었다. 벌써 4개째였다. '팔지도 못하는 주제에 먹기만 잘 먹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공원을 터벅터벅 내려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반도 못 팔았는데 이러다 본전은 뽑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멀리를 쳐다보다는데 순간 쾌재가 나왔다. 잔디밭에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야호.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축구하는 사람들에게 아이스케키를 팔기 위해 다가갔다.

"아~이~스~케~키~."

예상은 적중했다. 축구를 마친 사람들이 마침 잘 됐다며 15개만 달라고 한다. '아이고 좋은 거' 기쁜 마음에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아 그러나 이게 왠걸, 아이스케키가 모두 흐물흐물 거렸다. 날씨가 너무 더워 다 녹아내린 것이다.

남은 케키 26개, 결국 적자 1600원

자괴감과 아쉬움, 낭패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다 녹아버린 아이스케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손익이 얼마인지 공원 그늘에 앉아 계산을 해보았다.

▲ 망연자실. 케키가 도무지 팔리지 않자 아이스박스를 깔고 앉았다.
ⓒ 박종선
얼음값 2000원, 아이스케키 구입값 9600원 등 총 지출 1만1600원. 판매금액 1만원(10개), 내가 먹은 케키 4개, 녹아서 버린 케키 26개, 따져보니 결국 마이너스 1600원. 허무했다. 이 고생을 하고서 결국 적자라니….

대낮이라 공원에 사람들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많이 팔릴 것이라는 지나친 기대심 때문에 너무 많은 아이스케키를 샀다. 그리고 너무 비싼 가격에 팔았다. 이것이 나의 적자 원인이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난 햇볕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4시쯤 다시 대형할인마트에 가서 아이스케키 20개를 샀다. 그것도 잘 녹지 않는 단팥맛이랑 딸기맛으로.

▲ 아이스케키는 역시 아이들 눈에 금방 띄었다.
ⓒ 박종선
▲ '제발 사주세요, 네?' 관심을 보이고 있는 행인. 반갑다.
ⓒ 박종선
다시 하늘공원을 찾았을 때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무그늘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아~이~스~케~키 500원~"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든다. '날 원하는 사람이 이리 많았던 적이 있었던가', 완전 감동이었다.

장사 '필' 받았는데, "잡상인 나가요"

한참 신나게 팔고 있는데 "잡상인 나가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했더니 공원 관리자였다. 이곳에서는 함부로 물건을 팔면 안 된다고 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너무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서러워도 물러날 수밖에.

하늘공원을 내려오는 길. 낮에 내려오던 길과는 사뭇 달랐다. 아이스박스가 거의 다 비워진 것 때문인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발걸음이 가벼웠다.

▲ 결산해 본 결과, 역시나 적자였다.
ⓒ 박종선
총 20개 중 16개를 팔고 4개를 남겼다. 16개를 500원에 팔았으니 8000원 매출에 원가 4600원을 제하면 대략 4000원을 벌었다. 관리인 아저씨만 아니었어도 다 팔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2시간 넘게 돌아다닌거 치곤 그다지 많이 팔진 못했지만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시행착오 뒤 성공을 거뒀을 때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 와서 차비, 음료수값, 아이스케키 원가 등 총지출과 총수입을 계산해보니 결국 마이너스 2500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렇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생겼다. 그리고 한 번만 더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주에는 좀 더 준비를 해서 한강공원에서 팔아 볼까나.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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