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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로 장식한 학교 울타리
ⓒ 김훈욱

▲ 자발적으로 독립기념일 국기행진에 참가한 소녀
ⓒ 김훈욱
8월 31일은 말레이시아의 49주년 독립기념일이었다. 말레이시아도 우리와 같이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서 독립이 되었다. 햇수로 보면 61주년 독립기념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49주년 독립기념인 것이다. 이에 따른 사연을 알아보자.

1941년 일본에 점령된 말레이시아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독립이 되었다. 이에 따라 말레이 연방을 형성했으나 국정경험 부족에 의해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고, 영국과의 협정에 의거 군사·외교·재정 3권은 영국이 위탁관리 하도록 했다.

이런 부분 위탁 형태로 정부를 유지하다 1957년 나머지 부분을 인수하면서 영연방 내 독립국인 말레이 연방으로 탄생되었다. 당시 툰구 압둘 라흐만 말레이시아 초대 수상은 1957년 8월 31일 메르데카 광장에서 "메르데카!, 메르데카!, 메르데카!" 삼창을 하면서 공식적인 독립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국기를 사랑한다. 우리는 광복절 아침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해질 무렵에 국기를 내리는데 반해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독립기념일 한 달 전부터 국기를 달기 시작한다.

그런데 국기를 현관에만 다는 것이 아니라 벽·울타리에도 달고, 자동차의 상판 위와 함께 대부분의 전봇대에 국기로 장식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고속도로 톨게이트나 주유소에서도 국기를 나눠준다.

그러면 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국기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국기를 통해 인종·종교를 하나로

▲ 국기로 장식된 독립기념일의 수상청
ⓒ 김훈욱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독립되는 날부터 피부색은 물론 종교, 문화, 관습 등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말레이(Malay)계, 중국계, 인도계를 위시하여 여타 민족들의 힘을 모아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독립을 선언한지 12년 만인 1969년 5월 13일 유혈이 낭자한 인종 폭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폭동을 통해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국가라는 대명제 앞에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국가발전에 매진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공감대가 바로 국기였던 것이다.

다민족이 각자의 풍습을 지켜 가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로 뭉칠 계기가 필요했는데 그게 국기였다. 국기가 종교와 민족간의 판이한 풍습을 하나로 만드는 촉매작용을 한 것이다.

이후 말레이시아의 지도자들은 재임 중 업무가 분장되었다. 건국의 아버지 툰구 압둘 라흐만 초대수상이 나라의 기초를 닦았다면 제 2대 수상인 툰 압둘 라작은 농촌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워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툰 후세인 온 제 3대 수상은 인종간의 화합에 정치의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제4대 수상으로 취임한 툰 마하티르 모하메드 박사는 23년간 말레이시아를 이끌며 비젼 2020을 제시하고, 그 일환으로 우리 나라와 일본을 본받는 동방정책을 펴면서 말레이시아를 무슬림 정상국가에 올려놓았다. 현재의 다툭 세리 압둘라 바다위 수상은 말레이시아를 선진국의 반열로 올려놓기 위한 내실을 다지고 있다.

"Haiya, why you want to fight-fight. Make noise some more. Make the blood go up. C'mon lah, we malaysian what?!! C'mon lah, together-gether mah?"

말레이시아 유명 그룹 KRU가 불렀던 이 노래 가사처럼 말레이시아 인들은 오늘도 인종간의 평화와 화합, 존중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또한 독립기념일을 통해 평화롭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기에 대한 다짐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이다.

광복절 국기 게양율 45%... 단합된 모습이 아쉬운 지도자들

▲ 국기와 함께 장식된 역대 수상들의 사진
ⓒ 김훈욱

8월 15일은 우리의 61주년 광복절이었다. 뉴스에 의하면 정부기관에서 국기를 달자는 홍보를 했음에도 광복절 당일 국기를 게양한 가정이 45% 정도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복절을 선조들이 힘들게 싸워 얻은 소중한 날이라는 인식보다 휴일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것 같다. 일반사람들은 야외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광복의 의미와 소중함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알리기 보다 자신들의 불만을 한꺼번에 표출하는 일제 시위를 했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이 날만큼은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으련만 경축사의 작은 한 문장을 가지고 비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독립기념일 장식 중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역대 수상들이 국기를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인 국기장식이다.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통치 기간의 잘잘못을 떠나 국가의 어른으로서 화합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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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일반 관광으로 찾기 힘든 관광지, 현지의 풍습과 전통문화 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생활정보와 현지에서의 사업과 인.허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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