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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 간단한 반찬거리나 생활필수품 빼고는 거의 인터넷으로 쇼핑해요"라고 하면 여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신세대주부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무거운 거 들고 이리저리 다니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컴퓨터로 모든 걸 사더라고" 또는 "잠깐요 앞 나가서 장보는 건데 그것도 귀찮아서?"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 와보시면 아마 다들 "아~ "하실 겁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조그마한 슈퍼와 농협에서 운영하는 그리 크지 않은 마트 한 군데, 할머니들이 집에서 직접 키운 농작물을 파는 노점이 고작입니다.

그러니 조금 덩치가 큰 아이의 장난감이라든지 겨울이 다가오면서 필요한 매트나 침구류 그리고 옷이나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든지, 1시간 거리에 있는 시내로 가야만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웬만한 물건들은 거의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는데, 이번에 제가 구매하려고 했던 건 흑미와 현미였습니다.

같은 판매자가 파는 물건을 구매하면 배송료도 절약되기 때문에 더 필요한 물품이 없나 뒤져보는 찰나, 미숫가루가 너무 싸게 팔기에 같이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을 받고 보니 같이 구매한 미숫가루는 오지 않고 보리가 온 겁니다. 판매자의 제품정보에 미숫가루보리라고 적혀 있기에 보리로 만든 미숫가루인 줄 알고 구매한 것이었습니다.

조금 황당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판매자가 남긴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 인터넷으로 현미랑 흑미랑 미숫가루 구매한 구매자인데요."

"아~ 그분요. 예. 그런데 무슨일이세요?"
"저기 제가 현미랑 흑미랑 미숫가루를 신청했는데, 미숫가루 대신 보리가 왔더라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요."

"저희도 물품선택하신 거 보고 좀 의아했었는데요. 저흰 미숫가루가 아니고 미숫가루 만들 때 쓰이는 보리를 올려놓은 건데 착각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보내드린 보리가 묵은 보리가 아니라 햇보리거든요. 이게 더 비싼 건데 저희가 손해보고 보내드린 거예요."

손해를 보고 보냈다는 판매자분의 말에 전 더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필요한 건 보리가 아니라 미숫가루인데, 내가 손해를 보고서라도 더 비싼 걸 보냈으니 암말 말고 먹어라 이런 식으로 들렸으니까요.

"아주머니. 손해 보면서까지 보내주신 건 감사한데요. 제가 필요했던 건 보리가 아니라 미숫가루거든요. 아무리 손해보고 보내셨다고 해도 저한테 필요 없는 거니 무용지물 아닌가요?"
"저기요, 어떻게 미숫가루를 그 가격에 팔겠어요. 그 가격에 파는 미숫가루가 어디 있겠어요."

"저도 싸다 싶어서 산 거예요. 그러시면 제가 게시판에 글을 남겨놨었는데 답글이라도 좀 달아주시면 제가 빼든지 다른 물건으로 대체했을 텐데, 답글도 안 남겨주시고, 아니면 연락이라도 한 통 해주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그리고 제품설명에 그렇게 쓰시면 아마 저같이 착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솔직히 잘못 보낸 물품에 대해서 따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힘들게 농사지으셔서 파시는 것일 텐데, 나 처럼 오해해서 잘못 받으면 기분이 상해 구매자도 줄어들 것이고 파는 분의 신용도 떨어질 것이 염려가 되어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미숫가루가 그 가격이 아니라 9천원인 걸 다 알아요."
"아주머니. 다른 물품에 미숫가루가 올라와 있던 것도 아닌데, 미숫가루가 9천원인 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요."

조금 화가 나신 듯 아주머니는 제 말은 끝까지 들어보시지도 않고 말을 끊으시더니, "그래도 다른 분들은 다들 9천원인 줄 알고 사세요. 어디서 그렇게 싸게 팔겠어요. 그리고 보내드린 보리가 햇보리라 더 비싸다고요."

"예. 아주머니 더 비싼 걸 알겠는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문의를 드려도 답변도 안 해주시니까, 전 당연히 제가 물어본 말이 맞는 줄 알았고요. 그리고 제품정보를 그렇게 애매하게 적어놓으시면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제품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해 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전 이 보리를 어떻게 해먹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렇다고 버리지는 마세요."

전 아주머니의 말씀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버리다니요? 피땀 흘려 지으신 걸 텐데, 이걸 어떻게 버려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한숨을 푹 쉬시더니 조금 수그러진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저희가 농사를 애쓰고는 지었는데 판매가 원활하지 않다보니 인터넷으로 싸게 파는 건데, 싼 맛에 샀다가 원하던 제품이 아니면 몇 천 원 되지도 않는 물건이라고 다르게 해서 드셔보실 생각도 안 하고 버리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래도 어떻게… 힘들게 농사지은 걸 아실 텐데… 버리다니요."

"애기엄마처럼 힘들게 농사지은 걸 아시고 잘못 가도 잘 먹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우리가 피땀 흘려서 지은 거라고 해 드시는 방법을 알려드려도 대뜸 화만 내고 버리겠다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분들도 계세요. 그럴 땐 다시 보내라고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니…."

"……."

할.말이 없었습니다. 간혹 우리가 먹는 쌀 한 톨 과일 한 알을 농사꾼의 피땀이 아닌 고작 몇 천 원 몇 백 원으로 가치를 매겨서 쉽게 버리는 분들이 계시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보리는요,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지 말고 볶아서 보리차로 끓여 드시면 좋아요. 못 하시겠으면 방앗간에 돈 주고 해달라면 해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물 끓여 드시면 고소하고 좋아요. 중국산 아니고 국산에다 이번에 수확한 햇보리라서 묵은 보리로 보리차 해 드시는 것보다 훨씬 고소할 거예요. 그렇게 해드셔 보세요."
"예. 그렇게 해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요. 제가 죄송하지요. 그리고 제품정보는 저희가 다시 오해 없게 고쳐놓을게요. 죄송해요."
"예. 손해 보시고 보내셔서 어떻게 해요."
"그냥 맛있게만 먹어주세요."

가끔 쓰레기를 버리러 쓰레기장엘 가보면 많이 사뒀다가 다 먹지 못해 썩힌 야채나 과일 등이 눈에 띕니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다른 때보다 더하지요. 자부심을 갖고 힘들게 농사지은 결과물들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실까요.

오해로 잘못배달 된 보리로 인해서 다시 한 번 농사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음식을 소중히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싸다고 한 번에 많이 사서 버리지 말고 조금씩 먹을 만큼만 사서 힘들게 키우신 농사꾼들의 피땀을 하찮게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분들에게는 그것들이 피땀이고 자식들일 테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sbs "손숙.김승현 편지쇼"게시판에 기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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