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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찬바람이 일렁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생각뿐이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도 좋고, 향기로운 커피도 좋다. 찻잔의 온기를 느끼면서 음미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순간에 우리는 짧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성숙한 사랑은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늦어도 11월에는>의 주인공 마리안네는 처음 만난 베르톨트와 성숙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첫눈에 빠져도 성숙한 사랑일 수 있다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첫눈에 반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마리안네는 남편 회사가 주관하는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자인 베르톨트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그를 본 순간 대부분의 연인이 그렇듯 마리안네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베르톨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주위는 캄캄해지고 상대가 자리하고 있는 곳만이 오직 환하게 빛나는 기이한 경험을 이들도 하게 된다.

베르톨트는 마리안네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이 가져온 파장이 그리 클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어찌 그런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 짧은 순간에 한 사람을 얼마나 알게 되었다고 그러는 걸까. 베르톨트의 행동은 일견 너무 성급하고 앞뒤 구분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마리안네의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겨 떠난다. 물론 마음속에 동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벌 마나님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귀부인이 자식과 남편을 두고 유랑자와도 같은 작가와 떠날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오늘 오후에 처음 본 남자와 그럴 것이라고는 자신도 이전에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이 모든 것을 그들은 필연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내가 떠나는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처럼 그럭저럭 지낼 수도 있었다. 나를 이곳 대합실까지 데려온 것은 그의 말 한마디였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게 되면 아마 사람들은 어이 없어하며 웃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한마디 때문에 나는 이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 순간 그는 분명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다. 그런 말 때문에 집을 나오는 사람은 없다.(120쪽)

기다리는 사랑, 그 기다림의 끝은

그렇게 베르톨트를 따라나선 마리안네는 그와 두 달간을 함께 보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왔는데 정작 잘한 일인지 회의가 드는 건 왜일까. 베르톨트는 무엇이든 혼자서 해결하는 쪽이었다. 마리안네의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베르톨트는 창작의 산고를 겪고 있었고, 마리안네는 그의 고통을 덜어줄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으며 스스로를 그의 짐으로 여기게 되었다. 생각 끝에 마리안네는 마침 이곳으로 여행을 온 시아버지를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베르톨트를 위해서였다.

이목을 중시하던 남편은 마리안네를 군소리 없이 맞아들였고, 시아버지 역시 마리안네를 따뜻하게 대해준다. 현실에서는 참 일어나기 힘든 일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은 예정대로 흘러갔고 베르톨트가 쓰고 있던 희곡이 초연되는 11월이 되었다.

11월이 되자 마리안네는 시나브로 베르톨트의 전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11월 이후에 그들은 폭스바겐을 타고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일까. 마리안네는 하필이면 마리안네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베르톨트의 희곡이 초연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베르톨트이기를 기대했고, 번번이 다른 사람의 전화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있었다.

마침내 공연 첫날, 베르톨트는 마리안네를 찾아왔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은 기다리고 한 사람은 찾아왔다. 마리안네는 당연하다는 듯 베르톨트가 몰고 온 폭스바겐을 타고 떠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폭스바겐은 다리교각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소설도 막을 내린다. 베르톨트는 마리안네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허밍으로 부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리안네가 정돈된 일상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안정된 생활이 주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마리안네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렸다.

죽음, 영원한 사랑의 시작

소설의 결말을 보자 익숙한 장면하나가 떠올랐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서 죽음으로 완성한 두 사람, 영화 <엘비라마디간>의 식스틴 중위와 엘비라처럼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도 죽음으로 그들의 사랑을 완성했다.

다른 어떤 소설보다 화자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일기에 담긴 글을 보듯, 마음 속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다.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은 찰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영원한 사랑을 위해 떠난 이들의 이야기다.

역자는 이 책을 읽고 '연애소설도 이쯤 되면 이건 예술이구나'하는 감탄을 했다고 한다. 아마 독자들도 비슷한 기분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문학동네(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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