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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책걸상을 교체해준다는 이유로 구청장에게 감사 편지를 쓰게 한다더라."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소문이었다. 학교의 낡은 책걸상은 교체해주는 것이 정부 당국의 의무이며, 이에 드는 비용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기부금이 아닌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었다.

10일 성동구 A모 초등학교 어느 학급. 담임 교사는 4교시가 끝난 직후 점심시간에 앞서 학생들에게 '알림장'을 펼치게 했다. '가정연락부'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지기도 했던 알림장은 초등학생들이 교사가 불러주는 공지사항을 받아 적는 공책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성동구청장 이호조님께 책걸상 교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어올 것"을 1번 항목으로 불러주었다.

A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C군을 만나 그의 알림장을 통해 위의 사실을 확인했다. C군은 "담임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불러주시기만 했고, 아이들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말했다. C군은 또 "현재 쓰고 있는 책걸상은 많이는 아니고 조금 낡은 편이다”고 덧붙였다.

▲ A 초등학교 한 학생의 알림장
ⓒ 김수민
더 기가 막힌 것은 아직 책걸상이 교체되지도 않았다는 사실. 오지도 않은 새 책걸상을 두고 미리 구청장에게 감사편지를 쓰는 일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촌극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숙제는 다른 학급에서도 실시되었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구청장님께 쓰는 감사편지'는 적어도 학급단위를 뛰어넘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한 학부모는 "교회가 학교에 기부를 할 적에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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