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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을 하거나 업무적으로 자주 중국에 들어가는 한국기업체의 임직원들도 목단강(牧丹江)에서 동쪽으로 비포장이 섞여있는 도로를 155km나 가야 만나는 수분하시(綏芬河市)를 가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가장 동북쪽에 치우쳐 있는 흑룡강성에서도 동쪽 끝 러시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변변한 명승지나 유적도 없는 곳이니 굳이 갈 일도 없다.

▲ 목재를 실은 열차들
ⓒ 이웅래
중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작은 수분하시는 목재의 산지다. 중국 화북지방의 목재수요 대부분을 공급한다고 하니 인구나 면적은 작아도 시로 승격시켰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중국에서는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주로 러시아 쪽에서 원목을 들여온다. 수분하시가 그 통로가 되고 있고 다른 일상용품들도 러시아와 활발히 오고간다고.

원목을 실은 러시아열차가 수분하시 역에까지 들어와 중국 쪽 열차에 옮겨 싣는 광경은 이곳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매우 이색적으로 보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 열차가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신기한 느낌이 든다.

수분하시 역에 정차되어 있는 열차는 까만색과 회색으로 중국열차와 러시아 열차를 구분해 놓았다. 목재를 실은 열차는 수분하시 외곽에 있는 많은 제재공장으로 운반하기도 하고 화물차 등에 옮겨 실어 동북쪽 제재공장으로 가기도 한다.

옆 동네 가듯 수시로 드나드는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

▲ 수분하시 외곽에 쌓여 있는 원목들... 여러 제재공장의 굴뚝이 멀리 보인다.
ⓒ 이웅래
승용차를 타고 외곽 쪽으로 나가보면 그리 좋지 않은 포장도로와 길 곳곳에 노면이 얼어붙어 있음에도 적정중량을 훨씬 초과해 원목을 실은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지나치거나 추월을 하려다보면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위태롭다.

▲ 흐르는 천도 모두 얼어 붙었다. 정말 추운 곳이다.
ⓒ 이웅래
이 곳 11월 초순의 날씨가 벌써 섭씨 영하 7~8도를 넘나든다. 말이 그저 영하 7~8도지 정말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면 살이 갈라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내복을 보통 2~3벌씩 입고 있는 그쪽 사람들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홑바지에 얇은 외투 차림인 나는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몸이 떨려 사진기가 고정되지 않을 정도다. 체감온도 영하 15도 정도는 너끈하지 않을까 싶다.

▲ 썰렁한 광장-주위 뿐 아니라 지하에도 상점들이 빼곡하다.
ⓒ 이웅래
번화한 광장에 나가 보아도 매서운 바람과 추위는 여전하다. 또 다시 신기한 것은 접경지역이라 그런지 주위에 러시아 인들이 많다는 것. 대부분 러시아 보따리 상들이다. 상점들도 한결같이 러시아어를 병용하여 간판을 달아놓았고, 도로 이정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러시아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란 의미다.

마치 옆 동네를 오고 가듯 수시로 드나들며 장사를 하는 러시아인들 모습이 변방무역이나 내륙을 통한 무역이 없는 한국이방인의 눈에는 이채롭게 보인다. 각 상점에 진열된 의류는 러시아 보따리상을 유혹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주로 모피나 버섯 등을 가지고나오고, 희귀하지만 호랑이 가죽도 나온 적이 있다고 안내를 해준 최홍선(교포)씨가 귀띔 한다.

'수분하시'보다 변경무역이 더 활발해 질 것이란 '동녕현'

▲ 조선족 자치관청- 한글도 병용되어 이다.
ⓒ 이웅래
수분하시에서 러시아와의 경계를 타고 남쪽으로 약 40km를 달리면 동녕현(東寧懸)이 나온다. 가는 차 안에서 둘러싸인 산을 보니 눈이 내린 듯 하얀색이다. 군데군데 소나무들도 섞여 있지만 하얀색의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10여m 이상 쭉쭉 뻗은 소나무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10여년만 더 자라면 훌륭한 목재가 될 것 같다. 가다보니 어느 새 주위가 어둑어둑 해 온다. 시계를 보니 겨우 오후 3시 40분(북경시간). 동녕현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같은 중국 땅이라도 북경과 두 시간 정도 차이가 있다.

동녕현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가면 두만강이란다. 그래서인지 동녕현은 중국교포(조선족)들이 많이 산다. 자치구도 있고 조선족 학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을 잘 모르지만 한국에 일하러 나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더러 있어서인지 동녕현의 조선족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산이 많아서 인지 자연산 송이버섯이나 목이버섯이 특산품이라고 한다. 자작나무에서 자란다는 차가버섯도 있다고 하지만 보지는 못했다. 송이버섯이야 제 철이 지나 구경하지 못했지만 재배도 한다는 목이버섯은 흔해서인지 음식점마다 빠지지 않는 주요메뉴다.

동녕현은 수분하시보다 번화하지 않아서인지 의외로 러시아인들이 드물다. 안내해 준 최씨에게 물어보니 동녕현 동쪽 삼차구(三岔口)라는 곳에 자유무역구가 만들어져 앞으로는 수분하시 보다 변경무역이 더 활발해 질 것이라 한다.

다음날 오전에 삼차구로 가다보니 중국인민정부조선족자치구의 건물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면사무소나 읍사무소 정도 되는 이곳은 조선족 뿐 아니라 이 지방 한족들까지 모든 행정처리를 하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니 바로 눈앞이 러시아다.

가슴 답답하게 한 남과 북의 현실

▲ 중국변벙세관
ⓒ 이웅래
중국 세관 건물이 보이고 러시아를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입을 벌리고 있다. 열차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이 들어오는 입출구가 모두 다르다. 관심을 끄는 곳이 얼마 전부터 공사를 시작해 완성했다는 일종의 자유무역지대. 준공은 되었지만 아직 개장은 하지 않고 건물분양을 하고 있는데 사방으로 철책을 쳐 놓았다.

러시아 인들이 정식 비자를 받지 않고 단지 지방공안국의 입국도장만 받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란다. 국가가 아닌 중국 기업가가 투자해 만든 이 지역은 러시아 보따리상이 중국 물품을 사서 자유롭게 러시아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곳이다. 러시아 쪽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내년이면 이와 비슷한 건물을 지어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한단다.

남쪽 운남성에서도 미얀마와의 국경지대에 이런 비슷한 곳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 보따리상은 한번에 1인당 물품 30kg까지는 마약 등이 아닌 한 허용된다고 하니, 중·러 양측정부가 소규모 무역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그 개방의 폭을 넓혀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 자유무역구역-사방으로 철책을 쳐 놓았다.
ⓒ 이웅래
수분하시와 동녕현의 삼차구를 가보면서 마음 한 쪽에서 씁쓸하고 착잡한 마음이 밀려왔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도 저렇게 자유롭게 오가며 소규모 무역을 하는데 같은 땅에 사는 같은 민족인 남북은 오가지도 못하는 현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소규모 거래라도 하려 하면 기껏 뱃길이오, 중국으로 우회해야 한다. 이제 우리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비무장지대 어느 한곳만이라도, 대기업만이 아닌 남북 보따리 상들이 서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장터를 만들면 안 될까?

말린 고사리면 어떻고 보잘것없는 산채면 어떠랴? 남북을 오고 갈 수는 없어도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옛날 시골 장터라도 상관없을 듯싶다. 이런 것이 남북관계개선에도 조그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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