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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이 날이 너무나 설레고 기다려지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저녁상을 후다닥 치우고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녁은 드셨는지, 여행준비는 잘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의 오랜만에 들뜬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기도 해서였습니다.

"어머니 저녁은 잘 드셨어요?"
"그랴∼ 니도 저녁 묵었지야? 오늘 바람이 솔찬히 불어서 춥다. 밤에 우리 딸내미 데꼬 어디 나가지 말고 방 뜨시게 하고 있어라."

"보일러 틀어놓고 있어서 안 추워요. 어머니 여행준비는 잘하셨어요?"
"아이고∼ 뭐 언제 여행을 가봤어야 뭘 가져가야 하고 놔두고 가야 하는지 알지∼ 그냥 느그아부지랑 내 내복 두 벌이랑, 갈아입을 속옷이랑 옷가지 몇 개 챙겨놨다. 글고 칫솔, 치약이랑 비누랑 샴푸도 그 쪼매만 한 통에 든 거 그거 넣고."

"어머니 호텔에서 묵으실 거라 칫솔, 치약이랑 비누, 샴푸 이런 건 안 챙겨 가셔도 돼요. 그냥 갈아입으실 속옷이랑 옷가지 몇 벌 넣으시고, 아버지 약 챙기시고 그러시면 돼요."
"그랴도 칫솔은 챙겨가야 하지 않겄냐?"

"호호호 호텔 가면 칫솔도 다 있어요. 걱정마시고 가세요."
"나가 언제 호텔에 자봤어야지. 이렁께 무식허믄 챙피를 당한 당께."


12월 30일은 저희 시부모님 결혼 35주년 기념일이십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19살 어린 나이에 두 고개 너머 마을 29살 노총각인 저희 시아버지께 얼굴 한 번 못 보시고 시집을 오셨다고 합니다.

@BRI@양가 모두 형편이 넉넉지가 못했던 때라 말 그대로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서로 맞절한 게 그게 고작 결혼식이었다고,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가끔 저희에게 넋두리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결혼식이 그러하였으니 언감생심 신혼여행은 꿈에도 못 꾸셨다고 말입니다.

시집온 다음 날부터 어머니께서는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셔서 밭일이며 시부모님과 줄줄이 딸린 시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셨다고 합니다.

무뚝뚝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저희 시아버지께서는 어린 신부에게 "고생한다" 말 한마디 없으셨다고, 그 때의 서러운 마음을 어머니께서 저희에게 늘어놓으실 때면 으레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애꿎은 그물만 끌어다가 손질하셨습니다.

결혼 2년차가 되던 해 딸아이를 임신하고, 몇 달이 지나 전 통장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10만원씩 2년 만기 통장이었습니다. 거한 결혼식은 못 올려드려도 두 분이 오붓하게 가는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2년 만기가 되기까지 해지해서 쓰고 싶은 숱한 유혹도 있었고, 집안 형편상 단돈 만 원이 아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한숨 섞인 저희 어머니가, 그런 어머니를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아버지가 떠올라서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2년이 흘렀습니다.

그 통장이 며칠 전에 만기가 되어 비로소 저희 시부모님의 신혼여행을 보내드리게 된 겁니다. 마음 같아선 해외여행을 보내드려 작은 기념품 하나라도 이게 저기 물 건너온 거라며 동네 분들에게 자랑이라도 실컷 하시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저희 형편상 제주도밖에 보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맘 같아선 해외여행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야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해외여행은 또 뭐시다냐. 가서 그넘들 말을 어찌 알아들으라고. 그 넘들이 우리 늙은이라고 우습게 알고 거기다가 버리뿌고 오믄 어쯔냐. 그라고 제주도도 느그 어메랑 동네에서 단체로 한 번밖에 안가 봤으야. 이번에 가서 실컷 구깅하고 올란다. 그 때는 배타고 갔응께 비행기도 처음이구만. 허허허."


요즘은 수학여행으로도 간다는 제주도를 저희 부모님은 지금까지 한 번밖에 안 가보셨다며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왜 진작 해드리지 못했는지….

이틀은 공기좋은 펜션에서 이틀은 신혼분위기 물씬 내시라고 시설 좋은 호텔에 예약을 해두고, 두 분 왕복 비행기표도 예약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사시는 이모님께도 도착하시는 날짜와 시간을 재차 알려드렸습니다.

"느그 아부지랑 살러 갈 때도 이리 가심이 두근두근 안혔는디 잠만 잘라고 누웠다 하믄 와 이리 웃음이 나고 가심이 두근두근허는지 모르겄다. 동네서 다들 며느리 잘들있다고 얼매나 부러버하느지 모르겄다. 느그들 제주도는 난중에 나가 꼭 보내줄란다. 고맙다."

고작 제주도 한 번 보내드리는 건데 시부모님들은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모릅니다. 나이가 드셔도 좋은 곳, 좋은 옷, 맛난 걸 드실 줄 아시는 분들인데…. 여행가기 전날 들뜬 기분에 소녀같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신 분들인데…. 그저 부모니까 우리들이 행복하게 잘살면 그것만이 기쁨이겠지 하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 시부모님의 35년만에 가시는 신혼여행. 지금이라도 이렇게 보내드리게 되어 저 역시도 부모님 못지 않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06년을 그래도 이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하게 되어서 너무나 뿌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나만의 특종'에 응모합니다.

웨딩포토도 찍어드리고 싶었으나 나이들어서 주책이라며 시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신혼여행만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40주년결혼기념일에는 웨딩포토뿐아니라 거하게 결혼식도 올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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